하얀 여름
이정은 지음 / 청어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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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모른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무섬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환한 낮이 더욱 그랬다. 그런 나에게 어머니는 '벌건 대낮에 뭐가 무서워!' 하는 핀잔을 주었다. 그러면 나는 '대낮이니까 무섭지!' 하고 속으로 되뇌었다. 어른들은 내가 왜 하얀 대낮에 무서워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의 말뜻은 환하면 무서움하고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무섭다는 말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캄캄하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기찻길 옆에 살았던 나는 터널 속에서 놀기를 좋아했다. 누가 먼저 터널 속을 통과하는가 하는 내기를 하곤 했다. 대부분 다른 아이들은 터널에서 나오면 땀범벅이 되곤 했다. 무섭다는 거였다. 그런데 나는 그 속에서 마음이 편안해졌고, 어떤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밖으로 나온 순간 노출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터널 입구에 들어서면 반대쪽 출구가 하얀 점으로 보였다. 그곳을 향해 뛰면, 점은 반달처럼 변하고, 그 반달은 점점 커져서 커다란 원통형으로 변했다. 이윽고 하얀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되돌아서서 가고 싶었다. 반대편의 하얀 점을 향해 걸어가 다시 한번 아늑한 곳에서 안정을 즐기고 싶어서였다. 나는 반대편으로 가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고 밖으로 나오곤 했다. 일단 밖으로 나오면 처음 빛을 받을 때 두려움보다는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고, 곧 두려움도 희박해지는 것이었다.-하얀여름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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