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현자 기자]
 
수일이와 수일이
ⓒ2006 우리교육
"이제 며칠 후면 개학인데… 방학동안 게임 한번 실컷 해보지도 못했잖아! 으으, 이럴 때는 진짜 내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하나는 학원에 가고 하나는 마음껏 놀 수 있지."

수일이는 속상하다. 엄마 욕심대로 방학 내내 하루 몇 군데씩 학원을 다녀야 했다. 단 하루만이라도 학원에 가지 않고 실컷 놀 순 없을까? 퉁명스럽게 던진 말 한 마디. 그런데 가짜 수일이가 생겼다. 수일이의 푸념을 들은 덕실이의 제안대로 손톱을 잘라 쥐에게 주었더니 전래동화로 읽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 버린 것. 수일이는 여간 신나는 게 아니다.

<수일이와 수일이>는 어렸을 때 누구나 한번쯤 품어봤을 법한 터무니없는 소망, 즉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 줄 또 다른 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투명인간이 되어 못된 사람들을 골탕 먹이고 싶다' 같은 소망에 착안한 장편동화다. 수일이와 수일이, 진짜 수일이와 가짜 수일이, 나와 또 다른 나 사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

뻔한 줄거리, 뻔한 교훈… 그러나 깊고 큰 울림

신이 난 수일이. 쥐로 돌려 보내달라고 가짜 수일이가 애원하지만, 진짜 수일이는 개학할 때까지만 자기 대신 학원에 가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른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실컷 놀기만 한다. 그런데 사람으로 사는 것을 갈수록 더 좋아하게 된 가짜 수일이는 진짜 수일이를 집에서 내쫓는다. 진짜 수일이가 가짜를 몰아내고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이야기의 줄거리는 뻔하다.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 줄 가짜를 필요로 했고 뜻밖에 생긴 가짜에게 하기 싫은 일을 떠맡긴 진짜는, 하고 싶던 일을 맘껏 하고 실컷 놀러 다닌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이 무의미하지만 하루하루 재미있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진짜가 그렇게 보내는 동안 가짜는 진짜인 양 착각하고 진짜를 몰아낸 뒤 진짜인 척 한다. 진짜인 척 하지만 결국 가짜일 뿐. 그러나 경우에 따라 진짜가 영영 사라지고 말지도 모른다.

진짜를 아예 쫒아내려는 가짜와 진짜의 갈등. 이 갈등마저 줄거리 못지않게 뻔한 이야기, 뻔한 교훈 아닐까? 그렇지만 작가는 깊은 의미를 틈틈이 심어두고 있다.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고 재미있게.

"사람들은 뭐든 자꾸 새로운 걸 생각하잖아? 아주 옛날엔 창이나 활로 싸웠지? 그러다가 총이 나오고, 총 다음에는 대포, 대포 다음엔 폭탄, 미사일, 원자폭탄, 수소폭탄. 이런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니? 그렇게 자꾸자꾸 나가면? 안 무섭니? 끝도 없이 지구가 새 것들로 채워지잖아. 사람이 어떻게 될까 봐서! 나도 사람이니까."(가짜 수일이의 말)

하기 싫은 것만 대신해줄 가짜가 필요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까지 가짜에게 떠맡겼던 진짜는, 자신을 밀어내려는 가짜의 협박이 두렵다. 자기 편하자고 만든 가짜였다. 그리고 자기가 해달라는 대로만 해주길 바랐건만 이것도 잠시, 어느새 진짜는 가짜에게 지나치게 미루면서 진짜를 잃고 말았다. 수일이는 괴롭다. 언젠가 보았던 '복제양 돌리'도 생각났다.

'돌리는 어미양의 새끼? 아니면 또 다른 어미양?' '후우,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책임져야 해.'

훗날 수일이가 자라 과학자가 된다면 무책임한 생명복제를 꿈꾸지는 않으리라. 인간들만의 욕심으로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이용하는 어리석은 행동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어른도 되지 않을 것이다. 작가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누군가를 길들이고 누군가에게 길들여지는 것에 대해서도 한번쯤 깊이 고민해볼 것을 독자에게 권한다.

"수일이라고 했지? 내가 볼 땐 네 엄마가 가장 먼저 너를 길들였어. 네 엄마가 너를 길들이고 너는 쥐를 길들이고. 맞지? 그런데 이제는 그 쥐가 거꾸로 너를 길들이려 하고, 덕실이를 길들이려 하고, 네 엄마랑 아버지까지 길들이려 한단 말이지?"

"무엇을 보려는 것이 아니야(무엇보다 네가 진짜라는 자신감이 제일 중요한 거야, 가짜를 물리치려는 굳은 의지와 자신감). 나는 진짜 수일이라고 크게 말해봐!"

"나는 진짜 수일이! 나는 진짜 수일이! 나는 진짜 수일이!"


한때 인간에게 길들여져 집고양이로 살다가 야생으로 돌아간 들고양이 방울이. 쥐들에게 전설적인 존재인 들고양이에게 어떻게 다가가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 '가짜 수일이의 꾐에 빠져 쥐로 변해버린 나를 보고 물어뜯을지도 몰라!' 진심은 진심끼리 통한다고 했던가! 들고양이 방울이는 도움을 주는 대가로 인간이 매단 방울을 떼어달라고 한다.

작가는 수일이와 방울이, 덕실이가 가짜가 살고 있는 집을 향해 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수일이는 방울이의 도움을 받아 가짜 수일이를 물리칠 수 있을까? 혹시 수일이 스스로만 물리칠 수 있는 가짜 아닐까? 수일이가 물리쳐야 하는 또 다른 수일이는 수일이만 물리칠 수 있는 마음 속의 또 다른 수일이 아니었을까?

아이들뿐이랴. 우리 어른들 역시 진짜 나와 가짜 나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지 않는가! 또 다른 수일이는, 하기 싫은 일을 회피한다든지 어떤 일을 이유 없이 귀찮아하고 타성에 젖는, 혹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는 또 다른 나였다. <수일이와 수일이>를 읽으며 내가 항상 싸우고 있지만 쉽게 밀쳐내고 있지 못한 또 다른 나를 보았다.

어린이독서운동단체들이 필독서로 선정할 만한 이유가 있는 책

<수일이와 수일이>는 우리 사이에서 친숙하게 오가는 이야기인 '손톱을 아무 곳에나 버리면 그걸 먹은 쥐가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에 착안, 아이들에게 생각할 꼭지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도 의미를 생각하면서 함께 읽어 볼 필요가 충분히 있는 책이다.

엄마 욕심에 따라 하루하루 자란 수일이는 자신감도 없고 자기 주관도 없는 아이다. 엄마가 다니라는 대로 학원은 다니지만 그저 그럴 뿐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들 모습이다. 엄마가 애정을 가장한 지나친 욕심을 부리며 아이들을 끊임없이 길들이려고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김우경은 누구?

글쓴이 김우경은 1989년 '부산문화방송 신인 문예상'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계몽사 아동문학상 단편동화 부문(1990년)과 '새벗문학상' 단편동화 부문(1993년)에 당선됐다, 1995년에는 동화 <머피와 두칠이>, <풀빛 일기>, <우리 아파트>로 대산재단으로부터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작가의 동화들은 자연스럽고 친숙하며 따뜻한 소재와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 많은 사랑을 받는 편이다. 지은 책으로 <수일이와 수일이>, <하루에 한 가지씩>, <선들내는 아직도 흐르네> 등이 있다.

그림 그린 권사우는 홍익대를 졸업했고 <나쁜 어린이표>, <오줌멀리싸기 시합>, <아빠, 힘내세요>, <메밀꽃 필 무렵> 등의 그림을 그렸다. / 김현자
며칠 전에 둘째 아이의 학교에서 <수일이와 수일이>를 보내왔다. 얼마 후에 있을 독서퀴즈대회 문제 15개를 내달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린이 독서운동 단체들마다 이 책을 필독도서로 선정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5학년 필독도서 30권에 이 책을 포함시켰을 뿐 아니라, 독서퀴즈대회 도서 3권 중 1권으로 선택했다.

필자도 처음에 제목만 봤을 때는 '줄거리도 뻔하고 교훈도 뻔할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이 책을 선택했을까'하는 의문을 품고 읽기 시작했지만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역시 많은 어른들이 필독서로 선택할 만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고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친숙한 전래동화를 활용해 작가는 멋진 장편동화를 완성해냈다.

아이들이 쉽게 빠져들어 재미있게 읽을 만한 장점도 많고, 읽는 동안 자연스럽게 감동이 스며드는 책이다. 또한 아이들 책을 함께 읽어야 할 엄마들까지 감동하게 만드는 책이다.

사는 동안 늘 잘라내야 하는 손톱. 손톱을 자를 때마다, 끊임없이 나를 유혹하는 또다른 나, 진짜까지 몰아낼 수 있는 가짜가 자라고 있지 않은지 늘 살펴볼 일이다.

/김현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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