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드러내는 키워드로, 일본 사전에 나오는 '시마구니 곤조(島國根性, 섬나라 근성)'라는 말을 꼽고 싶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시비를 걸어오는 일본국,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 참배를 굳이 고집하는 일본 총리, 재일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차별하고 냉대해온 일본인들을 볼 때마다 나는 바로 이 단어를 떠올린다. 시마구니 곤조는 일본과 일본인을 규명하는 데 핵심에 있는, 가장 일본적인 유전자를 투사하는 어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일본 '국어國語 사전'에서는 시마구니 곤조는 "다른 나라와 교류가 적기 때문에 시야가 좁고, 닫혀있으며 대범하지 못한 성질"이라고 풀고 있다. 대범하지 못하다는 뜻으로 '코세코세こせこせ'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사소한 데 얽매이는 모양이나 비좁고 여유가 없는 모양 등을 나타낼 때 쓰이는 단어기도 하다. 어떤 사전은 시마구니 곤조에 대해 아예 내놓고 그 본성을 드러내고 있다. "섬나라 사람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기질로, 시야가 좁고 포용력이 적은 반면, 단결성과 독립성, 배타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라고 풀어 적고 있다. 그것을 읽다 보면, '과연 일본인들 스스로 느끼는 일본적 심리의 자화상自畵像이란 게 퍽이나 섬세하고도 날카롭게 묘사되어 있구나' 하고 탄복하게 된다. 그러나 한편 '섬나라 사람들에게 흔히 발견되는 기질'이라는 풀이에 의문을 품게 된다. 영국이나 오스트레일리아 혹은 인도네시아도 섬나라지만, 시마구니 곤조와 같은 말이나 비슷한 느낌의 단어조차 갖고 있지 않다. 이방異邦에서 온 도래인渡來人에게 정체성을 버리고 동화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일본뿐이다. 나아가 섬나라 사람이라면 모두 "시야가 좁고 포용력이 적으며 배타성이 강하다"라는 일반화도 무리나 억지가 아닐까. 그렇게 보면,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시마구니 곤조를 지닌 나라인 것이다. -.쪽
한반도의 우리는 이런 일본과 수천 년을 이웃으로 살아왔고, 앞으로 수만 년을 살아가야 한다. 시마구니 곤조는 과학도 이성도 타산打算도 아니다. 다분히 감정과 비논리가 섞여있는 집단정서다. 독도나 야스쿠니 문제에서 입증되듯이 논리적인 반론이나 이웃의 충고로 바로잡힐 성질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웃이 지적할수록 반발심을 품고 더욱 배타성을 띠며 단결하고 나올 우려조차 있다. 우리가 기억하고 새겨야 할 것은 일본의 시마구니 곤조가 상황마다 매우 다르게 발휘된다는 점이다. 소니가 워크맨을 팔고, 도요타가 렉서스를 팔 때는 그 곤조를 내세우지 않는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를 상대하면서 시마구니 곤조를 갖고 교섭하고 협상하지 않는다. 요컨대, 시마구니 곤조의 제일선이자 최전선은 과거에 그랬듯이 앞으로도 바로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영리하고 트인 사람이면서도 경솔하고 과격했던 젊은 혁명가 김옥균. "일본이 동양의 영국이 되고자 한다. 조선은 동양의 프랑스가 되자"고 외쳤던 열혈청년. 김옥균은 일본을 이용하려 했다. 조선을 좌지우지하려는 거대한 중국(청)의 힘을 약화시키고, 문명 개화에 역류하는 조정과 민씨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일본이라는 개명開明한 외세와 손잡고자 했다. 그렇게 '위로부터의 혁명'을 꾀한다. 그러나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파 청년들이 일으킨 갑신정변은 불과 사흘 천하로 막을 내리고 혁명의 패거리는 일본으로 망명한다. 이런 사연 탓에 김옥균은 친일파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친일'을 깨끗이 청산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김옥균을 두둔(?)했다.
19세기말 중국에서는 양계초(梁啓超, 1873~1929)와 강유위(康有爲, 1858~1927)가 부르주아 개혁운동을 일으켰고, 우리나라에선 김옥균이 그 운동을 일으켰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깊이 연구하지도 않고 그에게 친일파라는 낙인을 찍고 말았다. 다 알다시피, 일본은 동양 최초로 자본주의 발전의 길에 들어섰다. 김옥균은 자본주의 일본을 이용해 나라를 개화시키려고 시도했던 것인데 나중에 우리나라가 일본에 침략당하고 말았기 때문에 결국 친일파로 분류되고 말았다. 과연 김옥균이 친일파인가 어떤가 하는 것은 이제부터 깊이 연구해야 할 문제다. -1958년 3월 8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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