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과 주말연속극 1
문지효 지음 / 자음과모음 / 2003년 12월
절판


정말 여기서 내 인생이 끝나면 어쩌지? 여기서 죽는다면 난 너무 억울해. 스물여덟밖에 안 먹었다고. 안 해본 것들도 너무 많아.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 한 번 못 갔다 왔어.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못해봤고 그 흔한 키스 한 번 못해봤어. 그 흔한 키스 한 번도. 내 운명이 여기서 끝난다면, 만약 그렇다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그녀의 얼굴이 천천히, 그리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노련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대담하게도 천천히 성우의 입술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 여자, 뭐 하려는 거지!
어둡지만 둘의 몸이 찰싹 붙어 있었기에 성우는 그녀의 움직임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뜨거운 뺨이 자신의 차가운 뺨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련한 그녀의 숨소리가 더 가까이 전해져왔다. 그녀의 입술이 그의 입술 근처에 와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녀를 뿌리쳐야 했다. 이성은 그렇게 성우에게 명령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성우는 열흘 전처럼 욕망과 싸우고 있었다. 정말 우스운 일이지만 그는 다가오는 그녀의 입술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성우의 이런 갈등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그녀가, 드디어 그에게 입을 맞췄다. 엄밀히 말하면, 단지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사뿐히 갖다 댄 것뿐이었다. 단순한 뽀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어설픈 도장을 찍더니, 그녀가 얼굴을 떼려고 했다.
어, 뭔가 잘못됐다. 그녀의 입술이 임무를 완수한 양 도망치기 시작하자 성우는 별안간 다급해졌다. 그녀가 성급히 멀어지려 하고 있었다. 성우의 몸을 이렇게 흥분시켜놓고 말이다. 그녀의 입술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성우는 결단을 내렸다.-.쪽

성우는 멀어지는 그녀의 얼굴을 손으로 단호히 감싸 쥐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그녀의 입술은 뜨거웠지만 바싹 말라 있었다. 하지만 부드럽게 달래자, 굳은 그녀의 입술이 스르르 벌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의 혀가 그녀의 입술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모든 것을 더듬듯이 그의 입술은 달콤하고 부드럽게 그녀를 점령해갔다. 온순하게 반응하던 그녀도 그가 한 것처럼 적극적으로 키스에 임하기 시작했다. 온몸을 밀착한 채 그녀를 밀어붙이는 성우의 몸이 한껏 달아올랐다.
아, 너무 좋아. 영진은 어렴풋이 생각하면서 그에게 키스를 되돌렸다. 그의 숨결에 자신의 것이 녹아들어 마치 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으로 탐닉하고 있었다. 공포의 엘리베이터도 잊고 상대가 누구란 것도 잊고 오로지 입술의 짜릿함만 느낄 뿐이었다.
그렇게 영진과 성우가 정신없이 키스를 주고받는 사이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신이 나간 엘리베이터가 기력을 회복했다. 불이 들어오고 동시에 속도감 있게 1층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뜨거운 연인이 되어버린 두 사람은 그것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서로를 깊게 빨아들이는 데 정신이 없었다.
그들을 향한 마지막 경고음이 울렸다. 땡 하고 도착을 알리는 신호가 울린 것이다. 그러자 영진이 성우를 최대한 힘껏 밀었다. 성우가 떠밀리며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죽기전에 키스해야겠다는 소망으로 이루어진 키스지만 약간 가슴이 설레네요^^ㅎㅎ-.쪽

어쩌면 영진의 감정은 신기루일 수도 있다. 짝사랑은 오랜 습관이 돼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영진은 엉거주춤 짝사랑이라는 감정에 기생해서 안전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확신할 순 없지만 유선은 영진에게 다른 좋은 남자가 생기면 곧 석환을 잊어버릴 거라고 자신했다. 더 이상 영진이 석환 때문에 우울하게 살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어쩌면 성우와의 사건이 현 상황을 반전시킬, 하늘이 준 기회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솔직담백'을 모토로 28년을 살아왔지만, 요즘 영진은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했다. 기자회견 이후, 성우에 대한 욕을 줄기차게 해대고는 있지만 그것도 관심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석환의 얘기는 좀 줄어들었지 않은가?
어쩌면 우연히 얽힌 성우가 영진의 짝일지도 모르겠다… 아, 이것은 내가 생각해도 좀 비약인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둘의 사건을 지켜본 그녀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뜨거운 사랑의 감정까지는 아니겠지만, 두 사람 사이엔 뭔가가 진행되고 있었다-.쪽

"나처럼?"
"나도 당신처럼 먼저 좋아하지 않기로, 먼저 사랑하지 않기로 했어요. 그래서 짝사랑 같은 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요."

=>짝사랑 같은 건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는 말이 왠지 맘에 드네요.-.쪽

그 자리에 딱 멈춰 서고 말았다. 그 순간이었다, 그녀가 그에게 완전히 맛이 간 것은. 정말 우습게도 긴 팔로 상을 훔치는 그의 움직임에 정신이 나가고 말았다.
언젠가 유선은 남자친구의 발가락양말이 보기 싫어서 그에게 이별을 선언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스꽝스럽게 사람에 대한 마음이 끝나기도 하지만, 영진처럼 남자의 행주질에 기나긴 마음의 행로가 시작될 수도 있다. 가끔은 엉뚱한 곳에서 감정은 시작된다. 어쩌면 어젯밤 순한 소년 같은 그에게 이미 넘어갔는지도 모르겠다.
거짓 미소로 마음속의 냉소를 감추고 사는 남자, 달팽이와 동거하면서 외로움을 잊는 남자, 냉커피를 예술적으로 잘 타는 남자, 이 알 수 없는 남자에게 영진은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를 많이 좋아해도 될까? 내 가슴이 다 타버릴 게 분명한데… 그래도 될까? 영진은 오래오래 그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무슨 남자가 저렇게 멋있게 행주질을 하는 거야. 후… 영진이 한숨을 쉬자 그가 돌아보았다. 그가 쳐다보자 영진은 더욱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정말 한순간이죠. 상대방은 모르겠지만.... 이 대목을 보니깐 제가 짝사랑 했던 사람이 떠올라요. 진짜 내 타입이 아닌...오히려 싫어했는데, 제가 벌레에 물렸을때 가장 먼저 민첩하게 치료한 행동에 한순간 뿅!! ^^ ㅋㅋ-.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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