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한국인의 기질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를 키운 8할은 한국 사람들의 뜨거운 정이었다”

연세대 세브란스 국제진료센터 인요한 소장이 그의 열절한 한국사랑을 담은 <내 고향은 전라도, 내 영혼은 한국인>(생각의나무. 2006)에 실은 말이다.

키 190센티미터의 육중한 몸매. 파란 눈의 금발 사나이 인요한 소장의 입에서 질퍽한 전라도 사투리가 튀어나오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들짝 놀라고 만다.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도 “전라도 순천 촌놈 인요한입니다”라고 말한다.

“나가 정(情) 빼면 뭐시 남겄소?”

그와 한국의 특별한 인연은 1895년에 시작된다. 호남 기독교 선교의 아버지라 이야기되는 유진 벨(배유지) 선교사가 그 해 제물포항에 도착한다. 목포를 중심으로 한 호남 선교 책임자로서 교육과 의료 사업에 힘쓴 유진 벨은 미국 조지아 주에서 온 청년 윌리엄 린튼(인돈)을 사위로 맞게 되는데, 그가 바로 인요한의 친할아버지였다. 윌리엄 린튼 역시 호남 지역을 근거로 48년 간 교육 선교 사업을 벌였는데, 전주와 군산, 대전 지역에 많은 중고등학교와 대학(한남대)을 설립했고, 자신의 네 아들은 모두 한국 땅에서 낳았다.

윌리엄 린튼의 셋째 아들이 인요한의 아버지 휴 린튼(인휴)이다. 검정 고무신을 즐겨 신어 ‘순천의 검정 고무신’이라 불렸던 그는 군산에서 태어나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을 때까지 전라도와 경상도 도서 산간 지역에 600여 개의 교회를 개척했으며 지금의 광양 제철소가 들어선 지역에 간척 사업을 벌여 땅 없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나누어주기도 했다. 그의 아내 로이스 린튼(인애자) 역시 한국에 만연했던 결핵 퇴치 사업을 위해 35년 동안이나 헌신적 삶을 살았다.

휴 린튼과 로이스 린튼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아들이 인요한. 전주에서 태어났지만 곧 순천으로 옮겨져 어린 시절을 순천에서 보낸 인요한은 영어보다도 먼저 전라도 말을 배운 전라도 토박이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 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으로 15년 째 일하고 있는 인요한. 나눔을 통해 기쁨을 얻는 핏줄을 속일 수 없어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남녘의 소외된 이웃들을 음지에서 함께하고 경제난과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북녘의 동포를 돕는 일에 힘쓰면서 그토록 오래된 린튼 가의 한국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

“내가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까닭은 단순하다. 한국에서 태어났고 영어보다도 먼저 한국말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내 아버지와 할머니 역시 전라도 땅에서 태어나셨다. 하지만 내가 한국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국적은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미국사람일까? 그러기에는 뭔가 애매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두 나라 사이의 완전한 경계인이다. 그럼에도 가장 확실하고 분명한 내 정체성은 내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광주의 아픔을 함께하고, 북녘의 동포를 걱정하며 한국의 아픔과 질곡의 역사를 목격해왔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미국국적을 가진 전라도 사나이. 결국, 그가 자신을 키워 준 순천 땅, 순천 사람들과 나누었던 그 뜨거운 정(情)을 온몸으로 겪으며 내린 결론은 자신의 정체성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정을 나누는 마음’이 사라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누구보다도 낙천적이고, 삶에 대한 경건한 애착을 가졌던 한국 사람들이 왜 이리 각박해졌느냐고, 물질을 얻는 대신 순정한 마음을 잃은 것은 아니냐고 서글퍼하는 모습에서 그의 순수한 한국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북데일리 고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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