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리며 ‘멈추지 않는 도전’의 투지를 보여준 박지성 선수의 별명은 ‘바른생활 청년’이다. 맥주를 처음 입에 댄 것도 명지대 입학한 후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다. 자정이 넘어 집에 들어간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것은 컨디션을 조절해야 하는 운동선수에게는 좋지 않다는 말을 들어 항상 9시전에 귀가했다는 그는 자기관리에 철저한 사람이다.

여자친구도 아직 없다. 스물여섯. 젊은 청춘이 지고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축구에 대한 변함없는 열정으로 허전한 옆구리를 축구공으로 달래고 있는 박지성.

에세이집 <멈추지 않는 도전>(랜덤하우스중앙. 2006)에서는 아직 여자친구는 없지만 이상형이 있다면 “착하고 인내심 많은 여자”라며 내밀한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내 직업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축구는 신체적, 정신적 제약이 따르는 직업이다. 마음대로 놀 수도, 마음대로 일할 수도 없다. 축구선수인 나와 함께 생활할 수 있으려면 아무래도 무척 착하고 인내심도 상당해야 할 것 같다"

그는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자친구를 사귀는 일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외국생활은 겉으로는 멋있어 보여도 정작 지내보면 불편하고 서럽고 힘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때마다 남편이 따뜻하게 다독이고 보살펴주어야 하겠지만 늘 자상하게 해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다. 물론 나도 최대한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나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주려면 마음이 곱고 잘 참을 줄 아는 여자여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나보다 더 배려가 깊고 슬기로워 주위 사람들, 특히 부모님에게 나를 대신해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램이다”

어쩌면 너무 이기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라는 것. 자신의 옆자리는 화려해 보일지라도 속으로는 절대 그렇지 못하다는 속사정도 드러냈다.

“1년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지내는 나를 남자친구로 여기며 만나줄 사람이 있을까 싶다. 한 달가량 한국에 머물 때도 드러내놓고 놀이공원에서 데이트 한번 못할게 뻔 한 나는 남자친구로서는 빵점이다. 이래저래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7~8년간은 독수공방을 해야 할 것 같아 심란하기도 하다”는 말을 통해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의 외로움이 선연히 드러난다.

이어 지는 순수한 고백은 그의 투명한 속내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다만 한 가지, 선수생활을 은퇴하고 나면 더 없이 자상하고 속 깊은 남편이 되어 주겠다는 것은 약속할 수 있다. 이 세상 누구보다 가정적인 가장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미래의 여자친구에게 들려주는듯한 진솔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투박하고 우직한 그의 성실성이 묻어난다.

“그래도 1년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내는 박찬호 선배의 결혼을 내게 작은 희망을 주었다. 나라고 성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라는 앙증맞은 바람도 덧붙였다.

네덜란드 진출 당시 겪었던 퇴출의 강박관념과 슬럼프에 대한 이야기도 털어놨다.

“내 성격은 낯선 사람이나 환경에 금방 익숙해지지 않는 편이다.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가거나 국내에서 일본으로 진출했을 때도 적응하기까지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네덜란드에 진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인가 보여주지 않으면 퇴출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여 그라운드에 서야 했다.

머리는 따라가는데 몸이 따라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팀경기의 리듬을 깨는 것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에게 패스를 하면 전체적으로 팀 공격이 풀리지 않았다. 동료들은 나에게 패스하기를 꺼렸다. 패스를 못 받는 나는 하릴없이 그라운드만 뛰어다니는 꼴이 되었고 그럴수록 자신감은 더욱 없어졌다.

이같은 과정은 수술 전까지 오랫동안 반복되었다. 수술과 재활훈련을 거쳐 그라운드에 돌아오고 나서도 움츠러든 몸과 마음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았다”

잿더미처럼 타들어갔던 그의 심정이 적힌 절절한 문장들이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수술과 재활훈련을 거듭하며 좀처럼 슬럼프를 벗어나지 못했던 그를 구원해준 이는 히딩크 감독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홈구장에서 야유를 받는 나를 배려해 홈경기에는 되도록 내보내지 않고 대신 원정경기에는 자주 선발이나 교체요원으로 뛰게 해주었다. 그때부터 해법이 보이기 시작했다. 슬럼프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지만 내용이 괜찮은 경기가 있었다. 나는 그 기억들을 머릿속에 차곡차곡 모아나갔다.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발 앞에 놓인 공도 마음대로 찰 수 있고 상대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두 발 뒤로 밀려나더라도 다시 한발 씩 앞으로 전진한다”는 각오로 투혼을 불살랐지만 그를 배려해 준 히딩크 감독이 없었더라면 곱절은 더 힘들었을 시기였다.

책의 앞부분에는 박지성 선수의 엄마가 띄우는 감동적인 편지도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동년배의 친구들이 누리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좋아하는 축구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우직한 한 길을 걸어온 바른 생활 청년 박지성. 24일 열릴 스위스 전에서도 보여줄 그의 용맹스런 투혼은 대한민국의 희망이자, 뜨거운 가능성이다.

“초등학교 때 축구를 하고 싶다며 운동장에서 쓰러져도 좋으니 축구만 시켜달라고 떼쓰던 네 눈빛을 엄마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어린나이에 누구도 말리지 못할 독한 각오가 있었기에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지금까지 오지 않았겠나 싶기도 하고.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제일 키가 작았던 아들 모습에 엄마 가슴이 철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창시절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맞고 들어와 혹시나 엄마 눈에 눈물이 맺힐 까봐 친구하고 부딪쳐 그렇게 되었다며 겸연쩍게 씩 웃던 속 깊은 네 모습이 눈에 선하구나"

-박지성 선수에게 띄우는 엄마의 편지 중 -

(사진 = 박지성의 나이키 광고. 나이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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