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1970∼1953)은 러시아를 모국어로 하는 작가로는 최초로 193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볼세비키 혁명이후 조국 러시아를 떠나서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던 부닌은 무국적자 신분이었다. 정치적으로는 고국의 새로운 정권에 의해 철저히 버림받았지만, 노벨상 위원회는 부닌의 글쓰기에 퓨슈킨에서 시작하여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만개한 러시아의 전통적인 문학정신이 가장 잘 계승되어 있다고 수상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한때 고리키와도 절친했던 부닌의 문학세계는 그러나 이후에도 여전히 조국 러시아의 소비에트정권하에서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거부되었다. 가장 러시아의 혼을 잘 묘사한 작가가 조국에서 철저하게 외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부닌은 자신이 철저하게 비정치적인 작가였으며, 어떠한 유파나 동인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죽기 전에 탈고한 자서전에서 기술하고 있다. 목가적인 러시아의 풍광이 자신의 문학적 스승이었으며 수많은 여행을 통해서 경험한 고국 러시아의 산천초목이 바로 자신의 문학적 원류라는 것이다.

자전적 소설 ‘아르세니예프의 생’(1928∼39)에서는 망명지를 전전하던 부닌이 아마도 더 이상 되돌아가지 못할 조국 러시아에서의 목가적 삶과 서정적 풍광에 대한 기억을 특유의 장인적 글쓰기로 재구성하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알렉세이 아르세니예프가 작가 부닌과 마찬가지로 프랑스로 망명하여 러시아에서의 유년기와 첫사랑에 대해 회고하는 내용이다. ‘드넓은 공허한 대지, 그 어떤 장애나 한계도 없는 광활함만이 둘러싸고 있었고, 그저 오로지 들판과 하늘만을 볼 수 있을 뿐’이었던 드넓은 대지에서 태어난 어린 주인공이 도회지에서의 여러 경험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자각에 이르는 과정은 부닌 자신의 이야기일 듯싶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장차 앞날에 열려 있다’는 느낌이었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내 젊은 능력과 웬만큼 잘생긴 얼굴, 타고난 좋은 체격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고, 자유롭고 확신에 찬 행동과 가볍고 빠른 걸음걸이, 오르막을 달릴 때면 용감하고 능숙한 내 움직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내 젊은 순결함은 타고난 것이라 인식했고, 시를 읽을 때면 드러나는 내 뛰어난 감수성은 끊임없이 시인의 고결한 사명감에 대해, ‘시란 지상의 숭고한 꿈속에 자리한 신(神)’이라는 것에 대해, ‘예술은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계단’이라는 것에 대해 말해 주었다.”(197쪽)

러시아 젊은이의 건강성과 문화적 자부심, 그리고 예술에 대한 열정은 고국산천에 대한 정겨운 시선, 그리고 세계문학에 대한 섭렵의 과정을 거쳐서 여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하게 된다. 첫사랑의 감정에 대한 젊은 주인공의 내면의 열정이 그녀의 집으로 이끌었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하면서 소설은 막을 내린다. 그해 봄 그녀가 폐렴에 걸려 귀향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는 사실을, 또 가능한 한 오랫동안 그 사실을 숨기게 한 것이 그녀의 뜻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후의 일이다. 그리고 이제 노년의 주인공은 그녀에 대한 사랑의 기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얼마 전 나는 꿈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 없이 살아온 기나긴 나의 인생을 통틀어 단 한 번뿐이었다. 그녀는 우리가 함께 인생을, 젊은 시절을 보냈던 그때의 그 나이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이미 시들어가는 원숙한 아름다움이 어려 있었다. 그녀는 야위었고 상복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나는 어렴풋이 그녀를 보았지만, 그때만큼 누군가를 향한 커다란 사랑과 기쁨을 느꼈던 적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없었다.”(496쪽)

아름다운 조국 산하와 죽음이 갈라놓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과 회상은 가장 절정에 있었지만 몰락해야만 했던 제정 러시아의 정신에 대한 부질없는 향수와 동경의 다른 모습일 뿐이다.

/김영룡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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