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임정연 장편소설 <스끼다시 내 인생>(문이당)

`쌩얼`이라는 신조어가 인터넷을 통해 인기다.

스타들의 화장기 없는 얼굴과 평범한 옷차림이 찍힌 쌩얼 사진들은 `별거 아니었네`라는 위안(?)을 주며 인간적인 면모까지 드러낸다.

사진을 올리는 이나, 덧글을 다는 이나, 퍼가는 이에게 자기위안을 준다는 점에서 쌩얼은 곱씹어 생각해 봐야 할 점이 많은 유행어다.

너도 나도 쌩얼 미남 미녀를 외칠 때 소설집 <스끼다시 내 인생>(문이당. 2006)의 표제작 ‘스끼다시 내 인생’ 의 주인공 서원은 종주먹을 들이대며 이렇게 묻는다.

“스끼다시 인생 ‘쌩얼’ 맛 좀 볼래?”

검정고시 준비생 10대 소년 서원은 자신의 인생을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마는 들러리 음식 스끼다시`에 비유하며 세상을 비관한다. 서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스끼다시 인생들의 주름지고 푸석푸석해진 쌩얼이 가득한 우울한 공간이다.

“경멸하거나 존경하거나, 능력과 무능력의 간극”

서원은 독서실 총무인 한 고시생을 지독히 경멸한다. 이유는 그가 무능력하기 때문이다. 서원에게, 무능력한 기성세대는 자신과 다를 것 없는 들러리 인생, 스끼다시 인생일 뿐이다.

“고시생은 현실감각이 너무 없다. 철도 들지 않았다. 내가 알기로 결혼하고 고시생이 가정 경제를 위해 돈을 벌어 본 적은 결코 없다. 독서실 총무로서 번 돈은 담뱃값과 술값과 만화방에서 빌려다보는 판타지 소설로 거의 다 탕진 한다. 그의 와이프가 지금처럼 보험일을 하지 않는다면 문제풀이집 사보는 일도 힘들 것이다”

검정고시에 붙고 대학시험에 붙고 사촌형처럼 인턴시험에 붙게 될 거라고 자신을 믿고 바라보는 엄마처럼, 고시생의 아내는 ‘지나치게’ 넉넉하다. 하나 믿을 것 없는 자신을 믿는 엄마도 이상한 인간이지만, 무능력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고시생 뒷바라지를 해내는 그의 아내도 이해안가긴 마찬가지다.

서원이 고시생을 경멸하는 이유는 그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엿보았기 때문이다. 그건 끔찍한 악순환의 반복이다.

“나는 고시생을 곁눈질로 훔쳐보았다. 귀를 덮은 머리카락, 새끼손톱만큼 커다란 비듬, 길게 자란 손톱, 회색 운동복, 고시생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오늘따라 그 모습이 유난히 불쌍해 보인다. 어쩌면 저 모습은 15년 뒤의 내 모습일지도 몰랐다”

서원의 불안은 고시생으로부터 기인한다.

검시에도 붙기 싫고 대학도 가기 싫고 장가도 가기 싫은 이유는 서른넷이 되도록 아내에게 철없이 기생하는 무능력한 30대가 목전 앞에 있기 때문이다. 고시생과 비교 되는 건 사촌형이다.

고시생과 비슷한 또래이지만 번듯하게 취직도 했고 가끔 독서실에 들려 10만원씩이나 쥐어주는 능력 있는 30대다. 서원은 사촌형의 돈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역시 날 생각해주는 사람은 사촌 형 밖에 없다. 큰돈이 생기자 갑자기 힘이 난다. 이래서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서원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이 아니라 풍요로운 물질이다. 엄마가 손수 만들어 싸온 김밥을 넘기면서 `2천원이면 분식집에서 사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르주아적 몸매는 물질만능 주의의 표상”

서원은 또래나 연하의 여자애들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흠모하는 대상은 항상 나이 많은 여성이다.

“사실 난 내 또래 여자 아이들에겐 관심이 없다.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가 좋다. 많을수록 좋다. 서른이 넘었더라도 괜찮을 것 같다. 고시생을 보면 서른 넘어도 철들지 않은 사람도 많으니 세대차이도 별로 나지 않을 것 같다”

무능력한 고시생 때문에 서른이라는 나이조차 만만하게 느껴진다고는 하지만, 사실 서원이 연상 여성의 육체를 갈망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또래 여자아이들이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친구 지누에게만 관심을 두는 데서 비롯한 열등감과 능력있고 이해심 많은 나이 많은 여성이 주는 안정감이 뒤섞인 욕망이다.

사촌형수의 풍만한 몸매는 부르주아적 환상을 의미한다. 교복치마 아래로 바짝 마르게 뻗은 또래의 흰 다리와 사촌형수의 둥근 엉덩이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대상이다. 서원을 자극하는 것은 돈 없는 10대의 야윈 몸이 아니라, 돈 많고 원숙한 30대의 몸이다. 무능력한 30대 고시생과 돈 없는 교복 소녀는 마찬가지로, 무능력한 존재일 뿐이다.

비디오나 야동에서 보던 여인의 몸과 비교 할 수 없는 몸의 굴곡은 서원이 마주한 모든 고민과 낙담을 한방에 씻어내는 도피이자, 환각이다.

연예인 기획사에 캐스팅 돼 독서실을 떠나는 친구 지누,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말을 남기고 독서실을 떠나는 고시생. 이제 남은 건 서원 혼자다.

혼자 남은 서원은 사촌형수를 상상한다. 조롱하고 경멸할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진짜 현실에 놓인 서원은 외롭다. 그는 순수와 희망이 아닌, 비현실과 파괴를 향해 달린다. 지금 이 모든 것을 잊게 해줄 ‘물질만능의 육체’를 향해 힘껏 달음질친다.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 인터넷 세상”

“우리가 세상을 배우는 곳은 인터넷이다. 지누와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을 인터넷으로 배웠다. 학교도 아니고 꼰대들의 말씀도 아닌 것이다. 인터넷은 지누와 나의 거룩한 교실이요, 예배당이다. 물론, 인정한다. 때론 인터넷이 과장되고 왜곡되고 비틀려 있는 게 많다는 걸 말이다. 그렇다면 나도 할 말은 있다. 세상엔 음지가 없는가.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가. 인터넷도 그런 것이다. 양지도 있고 음지도 있다. 세상에 선과 악이 어디 있는가. 사람이 선과 악을 만들 뿐이다”

고시생의 말처럼 “익사 당하지 않으려면 매일매일 정보에 허우적대며 살아야 하는 세상”에 인터넷처럼 편리한 공간은 없다. 누군가의 사진을 허락 없이 게재하고 편집해 무자기로 뿌려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게 인터넷 세상이다.

글 작성자는 편집장도 되고, 저자도 된다. 자신의 글을 꾸미고, 사진을 리터칭하고, 동영상을 편집해 올리는 순간만큼은 모든 권력이 손아귀에 들어오는 최고의 순간이다.

작가 임정연은 스끼다시 인생을 살아가는 10대 소년을 바라보며 ‘무엇을 해줄까’라는 문제보다 ‘무엇을 들어줄까’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곤, 꼰대 같은 잔소리 대신 `그토록 원했던 것이라면 하게 해주자`는 도발적인 결론을 내민다.

스끼다시 인생들의 쌩얼 위에 내려앉은 다크써클과 피곤한 눈자위가 읽는 내내 가슴 한께를 ‘쿡쿡’ 쑤시는 소설 <스끼다시 내 인생>. 육두문자가 성행하는 `쎈` 단편들이 등장하는데다 안에 흐르는 큰 줄기조차 차갑기 그지 없으니 문제작의 자질을 고루 갖추었다 싶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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