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특히 차이를 강조했다. 압축적 변동의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가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다양한 집단들간의 차이, 곧 취업 주부와 전업 주부의 차이, 성향의 차이, 그리고 세대간의 경험의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벽을 허물고 연대 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하였다. 또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과 한 사람과의 차이를 부각시킴으로써 서로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생각해 보고자 했다. 차이를 제대로 알지 않고는 연대 형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책을 두 권으로 펴내게 된 것은 결혼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너무 다른 시각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 때문이다. 동인들 중에는 결혼이라는 단어와 무관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는 반면 결혼 속에 머물면서 지금 생긴 문제를 풀어 내는 데 열중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 두 집단 사이에 공통의 관심사와 언어를 찾아 내기는 쉽지 않았다. 편집 과정에서 많은 토론들이 있었고, 결국 '성급한 통일'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두 권의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첫번째 책은 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선택한 이들이 쓴 글로서 결혼의 현장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고, 두번째 책은 결혼을 좀더 포괄적으로 이해하여 관계의 미학으로 끌어가려는 시도들을 젊은 세대의 글을 중심으로 풀어 내고 있다.-.쪽
「우리 시대의 결혼 지도」에는 결혼 경력 2년에서 30년에 이르는 다양한 세대의 여자와 남자가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풀어 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결혼은 단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아주 견고한 제도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으며, 결혼이라는 틀 속에서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맞서며 밀고 당기면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며, 나날이 변하는 전선을 꿰뚫어 보는 자만이 그 거대한 암흑 속에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음을 이들은 일상의 미학을 통해 차분히 말해 주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시대의 결혼 지도를 그려 낼 수 있을 것이다.-.쪽
어찌 보면 이 사회는 모든 사람이 피해자가 되는 구도로 굴러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는 단순한 결론은 연민만 낳을 뿐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누가 모두를 피해의 구도로 몰아넣는 일을 그렇게 고집스럽게 하고 있는지를 밝혀 내야 그 구도를 바꾸어 갈 새로운 기운을 살려 낼 수 있다.
우리의 잠정적인 결론은 지금의 결혼은 '하기에 좋은 것'이 아니라 '생각하기에 좋은 것'이라는 점이다. 결혼처럼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내고 있는 제도도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산업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최상의 가치로 내세웠고, 실제로 사회 구성원이 충분히 혼자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 동시에 이 사회는 도시라는 거대한 익명의 공간 속에 개개인을 고립시킴으로써 불안과 외로움에 떨게 하였고, 그래서 누군가를 영원히 붙들어 두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켜 왔다. 끊임없는 이동을 강요하는, 여행자로서의 삶이 어울리는 조건 속에서 영원한 집을 꿈꾸게 하는 것, 또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부추기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지닌 근원적 모순인 것이다.-.쪽
제3세계적 상황은 이런 모순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서 실타래를 풀어 갈 엄두도 내지 못하게 한다. 억압적 부모로부터 벗어나 낭만적인 연애의 절정에서 이루어지는 결합과, 극히 타산적인 생존으로서의 결합이 얽혀 있는 거대한 관계의 틀 속에서 사람들은 오래 행복해 하지 못한다. 제도로서의 결혼이 경험으로서의 결혼을 심하게 압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의 만남도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몹시 바쁘고 또 불안한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잊고 산다.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삶은 더욱 더 바쁘고 피곤하게 돌아갈 것이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는 남의 경험에 대해 점점 더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고, 여유 없음과 피곤함 속에서 기쁨을 모르고 살게 될지 모른다.-.쪽
이제 더 이상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결혼의 각본 속에 머무르지 말자.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는 성과 사랑과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싶은 일상 생활과 자신이 맺고 싶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래서 '새로 쓰는 생활사'이자 '새로 쓰는 탈식민사'이자 '새로 쓰는 근대사'이다. 다 읽고 나서 대안적 결혼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대안적 결혼의 단일한 모델은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임을 미리 덧붙인다. 결혼은, 그리고 삶은 우리 각자가 자신이 선 자리에서 만들어 갈 예술이니까. -.쪽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밥상의 성별 정치학'이라고 부른다. '밥상의 성별 정치학'이란 나에겐 초보적인 여성 의식을 싹트게 해준 계기였다. 나는 이 사회에서 딸로 태어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밥상에서 보았다. (중략) 국민학교 입학을 위해 비포장 도로를 반나절이나 달려서 부모님과 언니들과 동생이 사는 도회지로 왔다. 아담한 양옥 주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홈웨어를 입고 앞치마를 두른 예쁜 여자가 "어머니, 힘드셨지예" 하며 미소 띤 얼굴로 맞았다. 나는 엉겹결에 할머니 뒤로 숨었다. '와, 우리 엄만가배.' 텔레비전에서 보던 사람 같았다. 서먹한 가족. 함께 시골에서 3년을 산 셋째 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남 같았다. 산골의 억센 사투리가, 그래도 약간은 순화된 도시 사투리에 막혀 말도 수월하게 나오지 않았다. 가장 큰 문화 충격은 밥상이었다. 대청 마루에 상을 펴거나 그냥 마룻바닥에 그릇을 놓고 할머니와 오손도손 먹던 밥상이 아니었다. 식구는 모두 아홉인데 둥근 상 위에는 계란 프라이가 네 개만 올라와 있었다. 할머니, 아버지, 남동생 둘. 내 몫은 없었다. 시골에서는 혹 고기 반찬이나 생선이라도 있으면 손녀를 먼저 챙겨 주셨는데……. 고기 반찬이라도 상에 오르면 내 손은 밥상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며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혹 고기에 손이라도 자주 가면 눈에 가시가 와 박혔다. 더 이상했던 것은 엄마도 언니들도 여자면서 그런 밥상 문화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나의 행동을 통제하려 든 것이었다
=>저 역시 결혼하고 가장 섭섭했던 부분이 밥상이었는데...확 와닿네요.-.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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