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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 악의 역사 3, 중세의 악마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평점 :
기존보다 좀 더 두꺼워진 모습으로 3번째 악의 역사 '루시퍼'를 만나게 되었네요.
이번에는 중세시대의 악의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답니다.
솔직히 읽다보면 전편의 글들과 반복되기도 하고, 어떤면에서 정신없어서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는데도, 나름대로 재미이도 있는것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하지만 점점 악의 존재에 대해서 역사와 함께 듣다보니 어느정도 개념이 잡히는것을 알수 있답니다. 그전에도 악을 알려면 개념을 알라고 했는데, 그말이 맞네요^^
우리는 악에 이름을 부여함으로서 인격화하며 존재하게 됩니다.악마, 사탄, 루시퍼 그들은 각각 다른것 같지만 실제는 다 하나의 악의 덩어리입니다. 솔직히 이 책의 제목이 각각 악의 다른 이름들을 부재로 하여 설명하지만 결국 모든것은 하나인, 악의 의미라고 정의합니다.
악마론은 카톨릭에 의해 정형화 되어갑니다. 신의 의지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만물이 신 안에 존재하는 세상에 어떻게 악이 존재하는가? 악의 존재는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단지 부족함, 결함, 결여된 성질이라고 말합니다.
신은 악을 통해 인간이 선과 악을 구분하며 신의 권능을 알게 하고 싶어하며 신의 목적을 위해 악마의 존재와 활동을 허용합니다. 절대 선인 신으로써 과연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는것이 선한 행동인지... 그렇다면 선과 악을 구분하여 악을 선택할수 있는 자유의지를 속박한다면 그것 또한 더 이상 선이 아니기 때문에 신은 선하지 않다라는 딜레마에 빠지게됩니다.
기독교는 악마가 신에 대한 자만과 질투로 타락했다고 주장하지만, 이슬람교는 인간에 대한 질투로 타락했다고 본다. 완전무결한 신을 질투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독교의 악마는 강력하고 사악한 존재로 대중들을 겁을 줌으로써 선행을 이끌도록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반면, 민담에서의 악마는 우스꽝스럽거나 무능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아마도 악마를 길들여 두려움의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함 때문이었을것입니다.
이교도는 자연적인 악마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악이 타락한 천사라기보다는 인간과 신 사이에서 도덕적으로 양쪽 의 가치를 지닌 존재로 생각합니다.비잔티움에 대한 저항으로 이단교를 지지하지만, 중세시대에는 신학자의 관점에서 많은것들이 전달되었으면 악마는 기독교적인 환경에서 항상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르네상스 문화가 꽃이 피면서 문학, 음악, 미술등으로 활발한 활동이 일어나면서 악마라는 존재는 대중들에게 다채롭고 생생하게 다가가지만, 이런 광범위한 대중적인 믿음으로 인해 원죄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여성들은 마녀광란의 큰 희생자가 됩니다. 마녀사냥은 악마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에 하나입니다.
마녀 사냥은 악마의 존재를 믿는 것이 불러올 수 있는 끔찍한 위험성을 드러내었으며, 불신하고 두려워하는 자는 사탄의 종복이고 증오와 파괴의 표적이 되기에 적합하다는 가정을 스스럼없이 드러낸 사건이지요.
예전에는 이슬람교가 불교처럼 기독교와 완전히 동떨어진 종교라 생각했는데, 이슬람에서 읽고 있는 '코란'이 성서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결국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종교인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이지만 그들은 종교 때문에 서로의 피를 흘리며 싸웁니다.
과연 인간들이 저지르는 이 죄들은 어디서 오는걸까요?
도저히 인간으로써 저지를수 없는 죄를 만나면, 우리는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게로 화살을 돌리게 됩니다. 그만큼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며 절대 권력자인 신의 피조물인, 인간 자체가 악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는것이죠.
그 악의 힘을 우리는 악의 존재에게 돌립니다.
사실 악마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앞서,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풀어야 할것입니다.
악은 무이며, 선의 결여이자 자유의지의 오용 그리고 이 책의 결말에서는 악은 메타포(비유)라고 정의합니다. 솔직히 악을 비유라고 표현한다는 점이 악에 대해서 알기위해 여기까지 온 사람에게 맥이 빠지는 결론이었지만 그래도 이 책을 통해 악에 대해서 좀더 가까이 다가선 기분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