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나는 우체국에 가서 새 우표를 사고, 문방구에 가서 색연필, 크레용, 파스텔, 그리고 마음에 드는 편지지와 그림엽서를 사고 싶다. 답장을 미루어 둔 친지에게 다만 몇 줄이라도 진달랫빛 사연을 적어 보내고 싶다. 동시를 잘 쓰는 어느 시인으로부터 맑고 고운 우리말을 다시 배워서 아름다운 동심의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외우다가 잠이 들고, 꿈에서도 시의 말을 찾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모양이 예쁜 바구니를 모으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솔방울, 도토리, 조가비, 리본, 바느질거리, 읽다가 만 책, 우편물 등을 크고 작은 바구니에 분류해 놓고 오며가며 보노라면 내 마음도 바구니가 되는 듯 무엇인가를 오밀조밀 채우고 싶어진다. 바구니에 담을 꽃과 사탕과 부활달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선물들을 정성껏 준비하며 바쁘고도 기쁜 새봄을 맞고 싶다. 사계절이 다 좋지만 가을엔 '달맞이 마음', 봄에는 '해맞이 마음'이 된다고 할까? 꽃들이 너무 많아 어지럼증이 나고, 마음이 모아지지 않아 봄은 힘들다고 말했던 나도 이젠 갈수록 봄이 좋아지고 나이를 많이 먹고서도 첫사랑에 눈뜬 소녀처럼 가슴이 설렌다. 봄이 오면 나는 물방울무늬의 앞치마를 입고 싶다. 유리창을 맑게 닦아 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먼지를 털어낸 나의 방 하얀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화가 사제가 그려준 십자가와 클로드 모네가 그린 꽃밭, 구름, 연못을 걸어 두고, 구석진 자리 한곳에는 앙증스런 꽃삽도 한 개 걸어 두었다가 꽃밭을 손질할 때 들고 나가야겠다. 조그만 꽃삽을 들고 꽃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그 아름다운 음성에 귀를 기울이노라면 나는 멀리 봄나들이를 떠나지 않고서도 행복한 꽃 마음의 여인, 부드럽고 따뜻한 봄 마음의 여인이 되어 있을 것이다. <봄이오면-이해인>
=>정말 봄이 오면 편지를 붙이고 싶네요-.쪽
나는 한없이 두 분 부처님을 바라보았다. 그분들을 둘러싸고 있는 솔숲에서 간간이 푸른 솔바람이 불어왔다. 어쩌면 그 푸른 솔바람은 도솔천에서 불어오는 솔바람이 아니었을까. 나는 한참동안 와불님을 감싸는 솔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가 그 솔바람 소리를 따라 천천히 산을 내려왔다. 그날 밤, 나는 화순의 한 암자에서 밤을 보냈다. 잠결에 빗소리가 들려 일어나 창을 열자 비가 내렸다. 차가운 빗줄기가 제법 굵었다. 비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문득 와불 부부님 생각이 났다. 이 빗속에 온몸이 얼마나 차가우실까. 아마 남편 부처님이 손을 들어 아내 부처님의 얼굴에 내리는 빗방울을 가려주시거나 아니면 돌아누워 아내 부처님을 품에 꼭 껴안고 빗물을 막아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는 이튿날 아침에도 계속되었다. 그들 와불 부처님은 그렇게 천 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란히 누워 서로 위하고 아끼며 사랑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들도 누구를 진정 사랑한다면 와불 부부님과 같이 변함없는 사랑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그때 찍은 와불님 사진 한 장이 놓여 있다. 나는 그 사진을 하루에도 수십 번은 더 쳐다본다. 사진을 쳐다볼 때마다 와불님을 감싸고 도는 푸른 솔바람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고, 와불님께서 잠시 일어나 그윽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듯하다. 나중에 그들 와불님이 미완성 돌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가슴이 더 뭉클했다. 그분들은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해 지금껏 천 년이 지나도록 그렇게 부단하게 노력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 그날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날, 나는 내 가슴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풍경 달다>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을 또 쓸 수 있었다.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내 마음의 풍경 -정호승>-.쪽
내 방이 따로 있는 아파트를 시내에 두고 굳이 또 다른 공간을 찾아 나선 데는 나름대로 절박한 까닭이 있었다. 나는 도시가 제공하는 편리함에 대해 좀 딴지를 걸고 싶었던 것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면, 도시로부터 하루에 몇 시간 동안만이라도 도망을 가고 싶었다. 이른바 전업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전화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전화는 도대체 외로워할 틈을 주지 않았고,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내가 무슨 일엔가 집중할 기미를 보이면 여지없이 전화벨이 귓전을 때렸다. 전화는 나를 불러내고, 나에게 독촉하고, 내가 전화기 옆에 붙어살도록 명령했다. 그래서 나는 전화벨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피신해서 외로움이라는 사치를 누리고 싶었던 거다. 겨우 글 몇 줄 끄적이는 시인 주제에 무슨 작업실이냐고, 누군가 핀잔을 준다 해도, 빚을 내서라도 나는 현실도피하고 싶었다. <내작업실 구이산-안도현>
=>특별한 전화가 아닌 광고성전화를 너무 많이 받으니깐 정말 전화가 울려도 즐겁지 않는것 같습니다.-.쪽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삶이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그렇게만 한다면 그대는 비록 달동네의, 형편없이 가난한 집에 있다고 해도 즐겁고 가슴 떨리며 멋진 시간들을 보낼 수 있으리라. 황혼의 빛은 부자의 집 창문뿐 아니라, 가난한 자들의 집 창문도 밝게 비춘다. 또한 초봄에는 가난한 자들의 집 앞의 눈도 녹는다.
여기의 달동네는 꼭 물질적인 가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의 달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 나도 그렇다. 굶고 있진 않지만 매일 괴롭다. 죽고 싶을 때도 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으므로.
<사랑하라. 지금이 달려간다 - 강은교>-.쪽
모든 것에는 다 제 계절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의 그 계절밖에는 눈치채지 못한다. 화살촉을 찾기 위해서는, 또는 바위와 이끼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리플 호수에 이는 물결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고, 혹은 모래뿐인 사막을 걸어다녀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 현재에 살고, 모든 물결에 자신을 띄워야 하며, 매순간 영원을 발견해야 한다. 자신이 서 있는 기회의 섬에서 다른 땅을 찾아 헤매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리라. 다른 땅이란 없다. 이것말고 다른 삶이란 없다. 좋은 농부가 있는 곳에 좋은 토양이 있으니, 다른 인생 행로를 택한다 해도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리라. 단순히 돛으로 방향을 조정하는 배가 아닌, 순풍을 타고 순조롭게 항해하는 배를 보아라. 거기 어떤 후회나 참회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선 지금 여기서 고마움을 표하며 살아라. 너의 길을 가라. 그래서 나는 오늘 아침도 종을 쳤다. 그리고 소리를 만져보았다. 그리스도의 옆구리도 만져보았다. 고맙다, 오늘 나 여기 있으니, 나로 인하여 지금이 달려가고 있으니……. 나는 나를 사랑한다. 지금이라는 시각을 사랑한다. 미래는 없다. 오늘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오늘의 지금뿐이다.
<사랑하라. 지금이 달려간다 - 강은교>-.쪽
저, 꽃밭에 스미는 바람으로 서걱이는 그늘로 편지글을 적었으면, 함부로 멀리 가는 사랑을 했으면, 그 바람으로 나는 레이스 달린 꿈도 꿀 수 있었으면, 꽃 속에 머무는 햇빛들로 가슴을 빚었으면 사랑의 밭은 처마를 이었으면 꽃의 향기랑은 몸을 섞었으면 그래 아직은 몸보단 영혼이 승한 나비였으면
내가 내 숨을 가만히 느껴 들으며 꽃밭을 바라보고 있는 일은 몸에, 도망온 별 몇을 꼭 나처럼만 가여워해 이내 숨겨주는 일 같네 ―졸시 <꽃밭을 바라보는 일>
우리들은 왜 뜰이며 꽃밭들을 가꾸는 것일까. 그곳에 우리들의 신을 모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은 가장 맑은 신전을 가꾸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서성임이란? 예배란 말인가? 그랬으면 좋겠다!
<서성임의 풍경들 - 장석남>-.쪽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돈 없이 입만을 나불거려서 인의예지이며 수신제가를 이룰 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 놓은 모든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적이다. 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공히 유효하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쪽
아들아. 사내의 삶은 쉽지 않다. 돈과 밥의 두려움을 마땅히 알라. 돈과 밥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지 말고 주접을 떨지 말라. 사내의 삶이란, 어처구니없게도 간단한 것이다. 어려운 말 하지 않겠다. 쉬운 말을 비틀어서 어렵게 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그걸로 밥을 다 먹는 자들도 있는데, 그 또한 밥에 관한 일인지라 하는 수 없다. 다만 연민스러울 뿐이다. 사내의 한 생애가 무엇인고 하니, 일언이폐지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 알겠느냐? 이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는 돈보다 더 거룩하고 본질적인 국면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얘야, 돈이 없다면 돈보다 큰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겠느냐? 돈 없이 입만을 나불거려서 인의예지이며 수신제가를 이룰 수 있겠느냐? 부否라!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 놓은 모든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의 삶의 적이다.-.쪽
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공히 유효하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우리는 마땅히 돈의 소중함을 알고 돈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돈을 사랑하고 돈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만이 마침내 삶의 아름다움을 알고 삶을 긍정할 수가 있다. 주머니 속에 돈을 지니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대답은 자명한 바 있다. 돈을 벌어야 한다. 우리는 기어코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의 고난으로 돈을 버는 사내들은 돈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돈은 지엄至嚴한 것이다. 아, '생의 외경', 이 외경스러운 도덕은 밥벌이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밥을 먹을 수 있다. 우리는 구석기의 사내들처럼 자연으로부터 직접 먹거리를 포획할 수가 없다. 우리의 먹거리는 반드시 돈을 경유하게 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노동은 소외된 노동이다. 밥은 끼니 때마다 온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먹는 것이다. 밥이란 쌀을 삶은 것인데, 그 의미 내용은 심오하다. 그것은 공맹노장보다 심오하다. 밥에 비할진대, 유물론이나 유심론은 코흘리개의 장난만도 못한 짓거리다. 다 큰 사내들은 이걸 혼돈해서는 안 된다. 밥은 김이 모락모락 나면서, 윤기 흐르는 낟알들이 입 속에서 개별적으로 씹히면서도 전체로서의 조화를 이룬다. 이게 목구멍을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비릿하고도 매끄러운 촉감, 이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이것이 인륜의 기초이며 사유의 토대인 것이다. -.쪽
이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든 먹이 속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우리는 먹이를 무는 순간에 낚싯바늘을 동시에 물게 된다. 낚시를 발려내고 먹이만을 집어먹을 수는 없다. 세상은 그렇게 어수룩한 곳이 아니다. 낚싯바늘을 물면 어떻게 되는가. 입천장이 꿰여져서 끌려가게 된다. 이 끌려감의 비극성을 또한 알고, 그 비극과 더불어 명랑해야 하는 것이 사내의 길이다. 돈과 밥의 지엄함을 알라. 그것을 알면 사내의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는 것이고, 이걸 모르면 영원한 미성년자이다. 돈과 밥 위에서, 돈과 밥으로 더불어 삶은 정당해야 한다. 알겠느냐? 그러니 돈을 벌어라. 벌어서 아버지한테 달라는 말이 아니다. 네가 다 써라. 난 나대로 벌겠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 김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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