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왜 엉거주춤 서 있나 - 2001년 제10회 한국소설 신인상 당선작
최민초 지음 / 청어 / 2003년 5월
품절


"지금의 이 나이로 영원히 머물 수 있다는 것이 난 참 좋아."
<안개여행>

=>그래서일까? 유명배우들의 젊었을때의 죽음은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만 간직해서인지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것이... 때론 우리는 너무 나이 먹음을 두려워하는것은 아닐까?-.쪽

공동묘지에선 먹을 것은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소문을 노숙자들로부터 듣는 순간 그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었다. 그만큼 굶주림에 지쳐 있었고, 그곳에서 죽으면 누군가 묻어는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사흘 전 작정을 하고 나섰다. 전철 지하도를 빠져 나와 종합병원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 곳으로 가려면 영안실에서 출발하는 장의차를 타는 것이 지름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검은 챙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문상을 온 사람처럼 영안실로 천연덕스럽게 들어갔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상청 앞에 벗어놓은 문상객들의 신발이었다. 스케이트 날 모양의 상표가 붙은 내 운동화는 비가 오면 물이 새고, 밑창이 개의 혓바닥처럼 널름거렸다. 마지막으로 발에 호사라도 시켜주고 싶었던 것일까. 나는 조객들의 눈을 피해 운동화와 새 구두를 슬그머니 바꿔 신었다.
그때 옆의 영안실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다.
"장지에 가실 분은 어여들 떠납시다. 장의차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다구요."
문상객이 우르르 장의차 쪽으로 몰려갔다. 나도 그 속에 섞여 장의차를 탔다. 헐거운 구두가 성가시게 헐떡거렸다. 구두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유난히 반짝거리는 새 구두가 헤지고 때로 얼룩진 내 옷차림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구두 콧등에 흙을 묻히곤 바지 단을 끌어내려 덮었다. 문득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만 진저리 쳤다
<회색지대>-.쪽

"자신의 문제를 치료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희망이 있는 거다."
<프리웨이>

=>짧지만 마음에 와 닿는 말이네요.-.쪽

언젠가 학교에서 돌아올 때였다. 비가 와서 냇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나는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 징검다리를 망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뒤늦게 수업을 마친 오빠가 헐레벌떡 냇가로 달려왔다. 내가 있잖아, 임마. 그가 숨이 차서 말했다. 자, 빨리 업혀. 물이 더 불어 날거야. 열 살의 나는 열네 살의 오빠의 등에 업혔고 그는 조심스럽게 징검다리에 발을 딛었다. 물살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오빠의 안간힘이, 그 위험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는 오빠의 마음이 고스란히 등뒤에서 느껴졌다. 나는 오빠를 바라보며 왜 나의 결혼을 반대했는가를 새삼 물어 보았다..-.쪽

"사람은 자기와 닮은 사람을 가장 잘 알아보는 법이다. 평소에 과묵하다는 것은 바꾸어 말해, 하고 싶은 말이 매우 많다는 뜻도 된다. 사람은 적당히 말도 하고 내쏟기도 하며 살아야 하는데, 속에 가두기만 하면 언제 폭발할지 몰라 위태롭다. 내 경우에는 그렇더라. 그런 사람일수록 속마음을 푸는 돌파구가 필요한데 일밖에 모르는 사람은 문제가 많지."
"오빠도 올케언니에게 폭언을 하고 이중적인 행동을 했나요?"
"얼마간은 그랬지. 나도 한때는 꽤 힘들었어."
오빠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었다고 했다. 숫돌에 칼을 갈아 달빛에 칼날을 세우며 어머니를 죽이고야 말겠다고 벼르던 아버지. 그 칼이 날마다 벽장 속에서 어머니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흔적도 없이 죽일 수 있을까, 살의를 품었다. 외도는 당신이 하면서 어머니를 의심하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의처증이 극에 달했을 때 어머니는 양잿물을 물에 타 마셨다. 지금 어머니의 목소리에 쇳소리가 나는 것은 양잿물 때문에 목안이 타 버려서였다. 그 이후, 간신히 갈등을 극복한 어머니는 이웃에 대한 봉사와 기도로 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괴롭히는 것으로 외도를 한 할머니를 징벌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이따금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행동을 흉내내고 싶은 욕구가 불쑥불쑥 솟구칠 때가 있더라. 나를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이러면 안되겠다 싶었지. 그걸 극복하고 보니 오히려 삶에 밑거름이 되었다. 전화위복이랄까. 그런데 강 서방에게는 그 극복의지가 전혀 없어 뵈더라. 그래서 결혼을 반대했지.
<프리웨이>-.쪽

약국남자는 자신의 결점일수록 당당하게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며 자신의 불균형한 다리를 매만지며 말했다.
"자신을 비굴하게 여기는 것은 자신에게 죄를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죠."
그는 타인에게는 물론 자신에게도 자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2002년, 서울의 달빛>-.쪽

뫼음들레를 다듬고 씻으면서 생명력이 어떻고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으로 들려왔다. 범아, 뫼음들레처럼 뿌리 내려야 해, 후레자식이란 소리 듣지 말고 끈질기게 살아……. 나는 도리질을 쳐 환청을 지워버렸다. 잠재된 의식, 한번쯤 마음껏 내 거칠고 황폐한 땅에 축축한 검은 피를 흩뿌리고 싶은 욕망과 내 속에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던 야성이 강하고 질긴 속성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불현듯 외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뫼음들레>

=>뫼음들레는 민들레를 가리키는 말이예요.-.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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