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어떤 완전한 힘이 결여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일상의 삶 속에 그대로 잠들어 있는 감성들을 일깨우는 데 필요한 자극제일 수 있다. 나는 그 감각들이 우리에게서 저 내면의 노래를 흘러나오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장그르니에 ‘섬’중)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감각의 샘을 솟아나게 하는 데는 아무래도 여행이 제일이다. 박정대 시인이 쥐어뜯는 <아무르기타>(문학사상사.2004)를 들으며 먼 곳으로 떠나보자.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에 세네갈이라는 나라가 있지?//거기서 대서양 쪽으로 보면 카보베르데라는 작은 군도가 보여//선 빈센트 섬이라고, 지도엔 이름도 안 나오는 섬의 만델로라는 항구도시에서 태어나 생의 절반을 보낸 세자리아 에보라라는 여가수의 <카페 아틀란티코>라는 음반이 있어//......//...... 나 나이 들면 만델로라는 항구도시를 찾아가 아틀란티코에 머무르면 어떨까 하는 꿈 같은 생각을 했단다, 같이 갈래?”(‘어제’)
같이 가자고 해놓고선 시인 혼자 ‘어제’ 서아프리카의 외딴 섬 카보베르데로 향했다. 이건 배신이다. 그러나 시인이 찾는 ‘그대’는 섬에 없다.
“누가 고독을 발명했습니까 지금 보이는 것들이 다 음악입니다/......//그대를 꿈꾸어도 그대에게 가 닿을 수 없는 마음이 여러 곡의 음악을 만들어내는 저녁입니다/음악이 있어 그대는 행복합니까 세상의 아주 사소한 움직임도 음악이 되는 저녁,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누워서 그대를 발명합니다”(‘그대의 발명’)
어머니의 품 안에서 젖꼭지를 만지작거리듯 그리움은 사랑의 악보를 만들어냅니다. 고독의 악기를 퉁기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이제 너무 낡은 기타 하나만을 가졌네/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한다네/쏟아지는 햇살 아래서/기타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면/가응 가응, 나의 기타는/추억의 고양이 소리를 낸다네”(‘내 낡은 기타는 서러운 악보만을 기억하네’)
낡은 기타를 메고 섬사람들이 노예로 팔려간 포르투갈로 가야겠다. 거기서 듣는 파두의 애절한 목소리가 초소의 눈발처럼 지척지척 적셔든다.
“파두 듣는 밤, 비에 젖고 눈에 묻힌 봄밤/백 년 동안의 고독이 비 내리다 눈 내리다 지쳐 이제는 파두, 파두, 파두, 소리치며 나에게로 쏟아져오는 고독의 흙밤//밤하늘엔 여전히 아물지 못한 별빛들 당나귀 여린 발자국처럼 빛나는데 강을 건너 사막을 지나 내 영혼의 天體와 심장의 천막을 펄럭이게 하며, 독감 같은 사랑이 왔네//내 사랑의 大地 위로 인플루엔자 같은 고독이 찾아왔네”(‘당나귀 여린 발자국으로 걸어간 흙밤’)
사랑이 왔을 때 신열 같은 고독도 함께 찾아왔다. 진흙길을 딸랑딸랑 걸어가는 당나귀의 맑은 눈망울이 지상의 사랑노래를 불멸의 하늘 위로 아름답게 수놓을 것이다.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나도 언젠가는 저 별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므로, 나도 언젠가는 불멸인 것이다//그리고 우리가 먼 훗날, 태양이 식어가는 낡고 오래된 천막 같은 밤하늘의 모퉁이에서 서러운 별똥별로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살아 있으므로,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사랑이 아니더라도 나를 꿈꾸어다오“(‘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 사이 시인은 사막을 지나 몽골초원을 거쳐 아무르강에 이르렀다. 모든 흐르는 것들은 다 음악이 된다. 어머니의 젖꼭지에서 발원한 물이 대지를 적신다. 그 물에 닿지 못한 그리움은 사랑과 고독의 섬이 되리라. 오래도록 끊이지 않는 불멸 혹은 적멸의 노래되어......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fargo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