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이에 야구선수? 아빠~ 꿈 깨시지!




[한겨레] “싫어! 그 야구 미치광이와 어떻게 살아!”

여름 방학 전날, 반에서 유일하게 모든 과목에서 수를 받는 3학년 시게오에게 엄마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낸다. 올 여름방학에는 아빠와 지내보라고. “프로야구 선수가 되겠다며 집을 나간 인간에게 뭘 배우라고? 무의미해.” 아들은 저항하지만 결국 아빠와 지내러 도쿄를 떠나 에노시마 부근 가타세 마을로 가게 된다. 처음으로 같이 살게 된 아빠는 역시 ‘야구 미치광이’의 모습 그대로다. 서른한살, 언제나 자기 이름 ‘하나오’(花男)를 새긴 야구 유니폼을 입고 다니며, ‘일본 야구의 신’으로 추앙받는 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4번타자 나가시마를 숭배하는 남자. 언젠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5만 관중의 함성속에 9회말 투아웃 주자 만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서고, 역전 만루홈런으로 게임을 뒤집어버리는 꿈을 꾸는 남자.

최근 완간된 만화 <하나오>는 서른한살 나이가 되도록 프로야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같은’ 아빠와, 영악하기 짝이없는 ‘애늙은이같은’ 아들이 만나 벌어지는 동화같은 이야기다. 직업도 없이 동네야구팀을 이끌며 입만 열면 “들어라, 5만 관중의 함성을!”을 외쳐대는 아빠. 그런 아빠를 아들은 이해할수도 없고 인정할수도 없다. 그래서 아빠란 호칭 대신 하나오라는 이름을 부르며 혀를 찬다. 그래도 처음으로 아들과 지내게 된 아빠는 너무나 신이 난다. 어처구니없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아빠의 모습에 아들은 서서히 익숙해져 간다.

아빠와 처음으로 함께 살면서 아들은 조금씩 아빠에 대해, 그리고 야구에 대해 알게된다. 어찌됐든 동네야구의 홈런왕이고, 자기를 너무너무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조금씩 아빠가 좋아진다. 하지만 가족을 버리고 서른살 넘어서도 거인팀 입단을 꿈꾸는 것만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노릇이다. 애초 여름만 같이 살기로 한 것이 1년으로 늘어나고, 아빠와 아들은 티격태격 부대끼면서 1992년 봄을 맞는다.

 
꿈을 그리는 현대판 동화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되는 벚꽃이 필 무렵,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간판타자를 잃은 채 시즌 개막을 맞는다. 정체불명의 기분 나쁜 사나이가 아빠를 찾아온 다음날 아빠는 갑자기 아들에게 목적지 없이 떠나는 것이 여행의 진수라고 우기며 갑자기 여행에 나선다. 여행 도중 아들은 처음으로 자기의 꿈을 이야기한다. “하나오랑 같이 말이야, 집을 짓고 말이야, 그리고 셋이서 사는 거야. 엄마랑 같이. 그게 바로 내 꿈이야!” 그리고 아빠는 아들을 엄마에게 데려다주고는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얼마 뒤, 시게오는 라디오에서 믿을 수 없는 뉴스를 듣는다.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서른두살짜리 선수를 신인으로 뽑았다! 아빠가 정말로 프로야구 선수가 된 사실에 시게오는 “이건 꿈일거야!”를 외친다. 과연 아빠의 꿈은 이뤄진 것일까?

<하나오>는 ‘꿈’을 그리는 현대판 동화다. 영악한 아들 시게오는 몸은 어린이지만 정신은 꿈을 잃어버린 어른이고, 어리숙한 아빠 하나오는 어른이지만 꿈을 간직한 어린이다. 두 사람이 만나 서로 마음을 열고 화해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지은이는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꿈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오>를 그린 마쓰모토 다이요는 국내 만화팬들에겐 친숙한 이름은 아니지만, 90년대 후반 <핑퐁>이란 작품으로 알려진 그 작가다. 도리야마 아키라우라사와 나오키 등이 철저한 분업과 협업 시스템으로 깔끔하고 정교한 그림을 앞세워 치밀하게 기획한 대중적인 만화를 만들어내는 일본 만화의 주류 흐름을 대표한다면, 마쓰모토 다이요는 그 정반대로 자기 혼자서 작업하며 기괴할 정도로 독창적인 그림,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으로까지 보이는 이야기를 그린다. ‘만화왕국’ 일본 만화의 힘이 <드래곤 볼>이나 <몬스터>처럼 치밀한 대중적 상업만화들과 함께 작가주의적인 온갖 형식의 만화가 공존하는 ‘다양성’에 있다고 평할 때, 이 ‘다양성’을 상징하는 만화가로 꼽히는 이가 마쓰모토 다이요다. 1998년 ‘일본만화사상 가장 훌륭한 만화 50편’을 선정한 한 설문조사에서 마쓰모토 다이요의 작품 가운데 <핑퐁>과 <철근콘크리트> 두 편이 뽑힌 바 있다.

일본만화의 다양성 대변

마쓰모토는 자로 긋는 직선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손으로 그리는 펜선 그림만으로 만화를 그린다. 그의 작품에서 직선은 그림칸 네모에서만 찾아볼 수 있다. 만화 곳곳에 낙서를 넣고(<하나오>에는 이 낙서 해설이 따로 실려있다), 그림 안에는 뜬금없이 타조나 홍학, 우주선, 이스터섬의 거석상같은 것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다른 만화가들이 독자들이 좋아할만한 그림을 그리는 데 모든 것을 쏟는다면, 마쓰모토 다이요는 그리는 사람 자신이 재미있는 그림을 그리는데서 만족을 얻는 스타일이다. 워낙 독특해 “일본 만화를 포유류에 비유한다면 그의 만화는 파충류”라는 평을 듣는다. 그래서 일부러 못그린 듯 자유분방한 그림은 다른 만화에서는 만날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인 동시에 다른 만화들과 너무나 달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장애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읽다보면 한 컷 한 컷이 각각의 회화같은 그의 만화만의 맛, 그리고 밝고 유쾌한 이야기의 재미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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