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현대사에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 출간된 지 3개월. 1979년 나온 진보 좌파 역사학자의 ‘성전’과도 같은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정반대 시각에서 좌파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시각으로 집필된 이 책은 선거 등 정치 상황과 맞물리면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좌파 민족주의와 우파 탈민족주의 간의 재충돌을 가져온 것이어서 학계는 물론 과거 민주화 운동을 펼쳐왔던 정치권 인사들의 논쟁도 뜨겁다.
문제는 역사학계에서조차 소련·북한 측 사료가 불충분하다는 점이다. 문헌과 자료가 뒷받침돼야 연구와 논쟁이 힘을 얻을 수 있는데, 지금까지 북한 연구는 특수 영역으로 여겨져 사료가 부족하다는 점이 현대사 연구의 한계로 다가온다. 해방 전후사는 현재 대한민국의 뿌리를 밝힌다는 차원에서 다른 어떤 시기의 역사보다도 명확하게 규명되고 분석돼야 할 시기인데, 그동안 미국·남한 측 자료만 많고 북한·소련 측 자료는 거의 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대한민국의 기원’(일조각)에서는 50여년간 북한 연구에 종사한 북한 전문가인
이정식 교수가 그동안 축적한 해방 전후의 연구 자료를 선보인다. 1963년부터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로 재직해온 저자는 해방 전후 국제정세와 국내 정국을 객관적으로 정리했다. 해방 전후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의 시기를 밀도 있게 다뤘다. 특히 해방 전후 남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민족 지도자 4인을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들의 성장 과정부터 성격, 개성을 소개하고 소련과 미국이 어떤 정책을 내놓고 이들의 정치적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대한민국의 수립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책의 1부에서는 국제정세, 미국의 시각과 정책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소련의 정책을 낱낱이 보여준다. 1990년대에 발견된
스탈린의 지령과 소련 측 고위 인사들의 비망록을 바탕으로 해방 당시 소련의 한반도 정책을 깊이 있게 분석 하고 있어 그동안 미국 중심의 시각에 익숙해졌던 독자들에게 좀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2부에서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 여운형 등 민족 지도자 4인의 궤적을 통해 해방 후 남한 정국을 심층 분석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한 책이 일반적으로 빠져들기 쉬운 편향적 시각을 배제하고 중립적이면서 객관적인 분석을 보여줘 해방 전후사의 귀중한 자료로 보유할 만한 가치가 있다.
권세진 기자 sjkw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