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만 걸을 수 있다면
장윈청 지음, 김택규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10월
품절


편집자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농촌에 사는 17살의 청년입니다. 저는 남자이긴 하지만 남자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 심정으로 살아갑니다.
가을에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이따금 슬프고 괴롭습니다. 이럴 때면 제가 곧 동면에 들어가는 작은 곤충처럼 느껴집니다. 겨울을 목전에 두고 가슴속에 이 세상에 대한 미련이 가득 차 있는….
제가 병에 걸린 지도 벌써 14년이 지났습니다. 이 14년 동안 저는 그 절반의 시간을 고통으로 보냈습니다.
3살 때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사방을 맘껏 뛰어다니며 노는데, 저는 잠시 걸었다, 또 잠시 쉬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세심하신 저희 부모님은 그런 저를 발견하고, 제 병을 고치기 위해 동분서주하셨지요. 그런데 당시에는 의학 기술이 그리 발달하지 않아 끝내 시원스러운 결론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검사들을 종합해보면 제 병은 근육병, 그중에서도 진행성 근이영양증일 가능성이 컸습니다. 제 셋째형은 저보다 먼저 근이영양증에 걸렸습니다. 우리는 같은 병에 걸린 겁니다….
14년이 지난 지금, 저의 병은 좋아지기는커녕 더 심해져서 이제 일어서는 것조차 힘이 듭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면 정말 수만 가지 기억이 떠오릅니다. 4년 전만해도 저는 담을 의지해서나마 꽤 멀리까지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단 반 발자국도 걷지 못합니다. 제 자신도 감히 믿기 힘든 일입니다….
여름이 오면 저는 무더운 날씨에 극도로 갑갑함을 느낍니다. 당장 두 다리로 이 덥고 답답한 방을 뛰쳐나가 차가운 바닷물 속에 뛰어들고 싶습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바닷물에 제 몸을, 제 타오르는 마음을 적시고 싶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책가방을 메고 즐겁게 학교에 가는 걸 볼 때마다 저는 한없이 부럽습니다. 그들과 함께 학교에 가고, 책을 읽고, 놀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다리는….-.쪽

저는 그저 방 안에 눌러 앉아 갈망하는 눈으로 바깥을 바라볼 뿐입니다.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와 셋째형은 죄수만도 못하구나!'
우리는 무기형을 언도받은 죄수입니다. 한평생 풀려날 기약이 없는…. 우리는 영원히 이 좁은 '감옥'에 갇혀 살아야 합니다.
어느 해 겨울, 한번은 어머니가 안방에 앉아 삯바느질을 하시다가 제게 곁채에 가서 가위를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만 해도 걷는 게 어렵지 않았던 저는 방을 나와 땅바닥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런데 겨우 몇 걸음만에 불쑥 튀어나온 흙더미에 채여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습니다. 얼굴에선 피가 났고 저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안고 달래며 말씀하셨죠.
"애야, 울지 마라. 내일 엄마가 땅에 시멘트를 발라줄게."
그 말을 듣고 저는 더욱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저희집 형편으로는 시멘트 한 푸대를 살 돈조차 마련하기 어렵다는 걸. 과연 시멘트로 땅을 바르기까지는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
지금은 평평한 시멘트 바닥이 깔려 있지만, 이미 저는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말 그 위를 걸어보고 싶은데….
그때가 떠오를 때마다 저는 큰 소리로 울고 싶습니다. 영영 일어서지 못하게 된 걸 생각하면 몇 날 며칠을 울고만 싶습니다.-.쪽

예전에 비해 지금 제 몸은 눈에 띄게 약해졌습니다. 전에는 들 수 있던 베개도 지금은 들지 못합니다. 전에는 나를 수 있던 벽돌도 지금은 나르지 못합니다. 그리고 전에는 당길 수 있던 활도 지금은 당기지 못합니다. 며칠 전, 둘째형이 돌멩이를 장전해 쏘는 총을 어렵게 사서 집에 가져왔습니다. 둘째형은 무척 기뻐하며 제게 그것을 선물했습니다. 저도 근사하게 생긴 그 총이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총을 손에 쥐자마자 저는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방아쇠가 당겨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정말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형 앞에서 부끄럽기도 했거니와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 걸 가족들에게 들킬까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런 제 자신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전신의 근육이 각기 다른 속도로 마비된 끝에 저는 드디어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적막할 때면 저는 애청곡인 '두 샘물에 달이 비치고(二泉映月)'를 듣습니다. 부드러운 피아노 선율을 따라 온갖 느낌들이 교차합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의 병이 어느 정도까지 진전될지 한 번도 말씀해주신 적이 없지만, 우리는 이미 마음속으로 전부 짐작하고 있습니다.-.쪽

저는 일찍부터 죽음을 염두에 둬왔고 유서까지 다 생각해놓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죽는 게 무슨 소용이 있지요? 가족들에게 슬픔만 더 보탤 뿐이지 않나요? 그리고 저는 이제 겨우 17살입니다. 알고 싶은 게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면 저는 정말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죽음은 일종의 무능함의 표현입니다. 누구든 무능하지 않다면 멀쩡히 잘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숱하디 숱한 고난과 맞서 싸우면서 말이죠. 무능한 인간만이 죽음을 택해 자신에게서 해탈합니다.
저는 무능한 인간이 아닙니다. 저는 죽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으면 반드시 이상이 있어야 합니다. 저의 이상은 위대한 작가가 되는 겁니다. 이 이상은 제게 다소 지나친 것이겠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 앞에 놓인 길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난과 불운이 있으리라는 걸. 하지만 저는 세상에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말을 굳게 믿습니다.
아침 해가 천천히 솟아오를 때는 제가 열심히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밝은 달이 소리 없이 나뭇가지에 걸릴 때도 제가 열심히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살아 있기만 하면 이 사회를 위해 뭔가 기여할 수 있습니다. 장애인도 비록 정상인과는 다른 방식이라더라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만약 두 다리가 없다면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눈이 없으면 음악가나 연주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두가 역시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이 아닐까요?
비바람을 겪지 않으면 무지개를 보지 못합니다.
세상의 모든 장애인 친구들, 우리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갑시다. 운명의 비바람을 겪고서 성공의 무지개를 봅시다. 모두 힘을 내봅시다.

1995년 6월 장윈청-.쪽

1998년 여름이었다.
한 글친구가 내게 진행성 근이영양증에 관한 자료를 우편으로 보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읽은 뒤에야 비로소 내 병의 심각성을 똑똑히 인식할 수 있었다.

진행성 근이영양증은 본래 근육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유전성 질병이다. 선천적인 유전적 결함으로 인한 세포막의 기능 이상으로 근원섬유(筋原纖維)가 파열, 괴사됨으로써 근육 질병이 발생한다. 그 주된 임상적 특징으로는 대칭을 이루는 신체 부위들 속에 있는 근육?群)의 진행성 무력화와 위축을 들 수 있다. 임상에서는 시험적으로 갈란타민, 근육 재생 주사제, 근육 세포 이식 등을 사용하고 있지만 병의 진전을 막을 수는 없다. 유전자 치료는 아직 실험 단계에 있다.

이 자료를 다 읽고 나는 삽시간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 병이 불치의 병이라니! 병이 발전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니! 나는 천천히 죽어갈 것이다. 병의 고통을 고스란히 다 겪으면서….-.쪽

나는 울고 싶었지만 울음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죽기 전의 광경이 떠올랐다. 폐 근육의 무력증으로 숨이 막힌 나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있고, 가족들은 그런 나를 고통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마지막에 나는 대뇌의 산소 결핍으로 눈을 부릅뜬 채 죽어간다…. 나는 정말 무섭고, 또 무서웠다. 몇 년이라도 더 살면서 인간 세상의 기쁨을 누리고 작가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하지만 병은 나를 데려갈 것이다. 너무도 빨리, 성공의 환호를 올리기도 전에 날 데려갈 것이다. 그러면 가족들은 나로 인해 마음 아파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울리고 싶지 않다. 그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이렇게 삶을 마감해도 된단 말인가? 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엉엉 소리내어 울고 싶었다!
사람의 일생에서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다.
삶은 단 한 번뿐이기에. 특히나 나처럼 '암 아닌 암'에 걸린 환자에게는 더욱 더 소중하다. 슬픔과 실의에서 벗어난 뒤, 난 반드시 현실과 맞서야 한다!
병은 이미 걸린 것이니 울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 남은 생을 허송세월하느니 차라리 힘껏 싸우리라!
내 이 싸움이 이상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할지라도 난 진심으로 그것을 원한다. 왜냐하면 그건 어쨌든 헛되이 시간을 내버리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합니다.-.쪽

사람들은 보통 체력을 잃으면 폐인이 되고 존재의 가치를 잃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가치는 건강한 신체의 유무에 있는 게 아니라, 진취적인 정신의 유무에 있다. 건장한 신체를 갖고서도 진취적이지 못한 사람은 걸어다니는 시체나 다름없다. 진취적인 마음을 품고 운명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면 나보다 더한 장애라도 문제 될 게 없다. 체력 없이도 나는 영혼의 힘으로 삶에 맞서고 풍랑과 싸울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인생의 길이는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인력으로 연장할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의 폭은 무한하다."
그렇다. 두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똑같이 수십 년을 산다 해도, 그들의 삶의 질까지 똑같으리라는 법은 없다. 한 사람이 전원에 묻혀 먹고 마시는 걸로 일생을 허비하는 데 반해, 다른 사람은 동분서주하며 자신의 꿈과 빈곤에 시달리는 타인을 위해 필생의 정력을 바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의 길이는 분명히 다른 사람보다 길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있는 힘껏 내 인생의 폭을 넓히고 의미 있는 일을 해야만 한다. 평생의 정력을 다 소진하더라도 꿈의 실현을 위해 싸우고 타인을 위해 일할 것이다!
간혹 이런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아마 나의 병은 신의 의도적인 계획일지도 모른다고. 이런 방식으로 내가 공부할 결심과 시간을 갖게 하고 이상을 위해 싸우게 한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도 바깥을 걸어다닐 수 있다면 다눠 형님을 사귀지도 못했을 테고, 이렇게 열심히 이상을 위해 매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병에 대해 아무 원망도 하지 않는다.
단지 책을 마치고, 꿈을 이루고, 타인을 위해 어느 정도 공헌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전동휠체어를 사서 다시 자유를 찾고 아름다운 삶을 껴안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쪽

누군가 내게 최근 몇 년간 왜 그토록 줄기차게 공부하고, 글을 쓰고, 필사적으로 싸워왔는지 묻는다면, 나는 한마디 말로 내 정신적 지주를 말하고 싶다.
"나는 헛되게 살 수 없다!"
내가 공부도 하지 않고 추구하는 것이 없다 하더라도 날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를 폐인이라 생각하고, 장애인은 평범하고 아무 성과가 없는 게 당연하다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왜 성과가 없어야 하는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건강한 신체가 아니라 건강한 정신이다. 강인한 의지로 성공과 현실 사이의 높은 장벽을 넘고, 불굴의 존엄성으로 삶의 다채로운 빛깔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걷지도 못하고 한 근 무게의 물건도 들지 못하지만, 내 손은 아직 펜을 쥘 수 있다! 내 눈은 아직 밝고 내 마음은 아직 이상을 동경한다. 이것만으로도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어떤 성과를 거두기 위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 세상에 헛되이 태어난 게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 이상을 향한 매진을 해야만 한다.
미래에 대한 내 자신감이 가득한 것은, 고난 앞에서 머리 숙이지 않는 용기만 있다면 시공(時空)이 뒤바뀌고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더라도 결국 무사히 성공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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