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는 이민의 시대였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경영의 결과로 제국내로의 노동력의 대량유입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배경삼아, 일상의 궁핍함을 피해 새로운 기회의 땅을 향해 떠난 이민자들의 지난한 오디세이는 지난 세기 전 지구적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전쟁과 사회적 격변, 신분적 불평등, 경제적 궁핍, 종교적 신념, 고향을 떠나온 이유는 각기 상이할지라도 기회의 땅에서 나름의 삶의 터전을 일구며 살아가는 이민세대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향수와 현실의 장벽은 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낳았으며, 여기에 현대적 의미의
디아스포라(Diaspora·離散)가 논의되는 접점이 있다. 자발적이던지 비자발적이던지 내던져진 현실에 적응하여 언어와 관습을 포기해야 하던지, 아니면 고향의 타고난 가치체계를 고수하고자 하는 대립적인 두 지향점 사이에서 이주민의 디아스포라적 문제성은 자리매김되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재미동포 최유혜의 소설집 ‘낯선 땅에서 만난 소나기’는 읽혀질 수 있다. 소설집에 실린 10편의 단편들은 모두 미국 내 한국인 이민사회의 삶의 단면들을 충실하게 보여준다. 자연주의적 문체에 많이 빚진 듯 한 최유혜식의 대담한 이야기 전개는 인종갈등, 매춘, 노인문제, 입양, 범죄, 가족의 붕괴 등 현대 사회가 지니는 복잡다단한 문제를 마치 한편의 텔레비전 단막극의 형식으로 깔끔하게 엮어 내는데 성공한다.
재미 한국인들의 일상사를 일견 도식적으로, 그럼에도 절제된 특유의 간결함으로 복원하고 있는 그녀의 단편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녀에게서 ‘재미 동포문인’이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필요 없어 보인다. 배경과 조연만이 간간히 낯설 뿐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21세기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가치관보다 더 전통적인 가치관을 설파하면서 말이다. ‘로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가톨릭이 더욱 더 진짜답다’라는 유럽의 속담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최유혜의 소설들에서는 이민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여전히 한국에 살고 있는 인물유형에 건강성과 긍정성을 시화시키고 있는 연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단편인 ‘낯선 땅에서 만난 소나기’는 생모에게 버림받고 고아원에서 자라야 했던 주인공 은하가 이민 간 친부모의 미국 집을 방문하는 이야기이다. 은하는 미혼의 몸으로 아이들을 입양하여 키우면서 이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는 보배와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반면에 은하를 부정하여야만 하였던 친모와 은하의 출생 사실을 모르는 친부는 미국으로 이민하였고 십 수년 간 딸의 존재 자체를 잊고자 했던 인물들이다. 물론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변명과 구차한 구실을 주섬거리면서 말이다. 관습과 타인의 눈 때문에 자식을 부정해야 했던 미국의 어머니와 달리 한국에 사는 은하는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여성이다. 부모를 부모라 부를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을 은하는 여행을 중지하고 서울로 돌아옴으로써 탈출하고는 다음과 같이 상념에 잠긴다.
“누군가 보내준 털실 장갑과 목도리를 하나씩 두르고 창가에 서서 하얀 눈을 기다리던 그 애들은 지금 무엇이 되었을까. 내가 어느새 이렇게 어른이 된 걸까. 영원히 가난할 줄 알았는데…. 영원히 혼자일줄 알았는데. 영원히라는 말은 애초에 필요 없는 단어였다. 세상에는 온전히 지속되는 행복도 불행도 없다. 언젠가는…. 전혀 다른 위치를 바꾸어 갖는다. 가난했던 선생님은 부자가 되셨고, 젊으셨던 그분은 늙으셨다. 지금 나는 무엇을 꿈꾸어도 가능한, 젊은 나이이다.” (‘낯선 땅에서 만난 소나기’, 263쪽)
우리는 아마도 이미 오래전에 잊고 있었던 삶의 건강성과 문화적 자신감에 대한 기대가 태평양 너머의 디아스포라적 인간 군상들에게는 고향의 흙내음처럼 여겨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