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홍성식 기자]
 
ⓒ2006 당그래
갑작스럽게, 참으로 갑작스럽게 엄마와 여동생을 한 달 사이에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한 여자가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여자의 몸마저 정상이 아니다. 극심한 우울증과 고질적인 천식, 거기에 대인기피증까지.

걸음을 떼어 세상 밖으로 나가기가 두려운 여자. 갇힌 듯 살아가는 조그마한 연립주택으로 어느 날 손바닥만 한 애완용 토끼가 배달된다.

여자의 사정을 두고 보기 딱했던 친구의 애정 어린 선물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의 곁에 머물게 된 토끼. 하지만, 그 말 못하는 짐승이 감히 인간도 주지 못했던 진실된 위로를 선사할 줄이야….

제34회 <신동아> 논픽션 부문 공모에 당선된 바 있으며, SBS TV문학상을 수상한 전직 드라마작가 이진이 제목에서부터 한 동물을 상상해낼 수 있는 책을 냈다. <잘했어! 흰털>(당그래). 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벼운 수필로도 읽힐 수 있는 이 책은 '인간과 토끼가 진정한 가족으로 재탄생 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이쯤 되면 앞서 언급한 '외로웠던 여자'가 누구인지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진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물기 어린 문체로 '토끼'라는 미물에 인격을 부여한다. 책은 그 과정을 느릿한 카메라의 시선으로 좇아간다.

세상과 의도적으로 벽을 쌓고 살던 사람이 한 마리 애완동물로 인해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다시 찾아간다는 설정은 일견 동화 같다. 하지만, 책에 서술되거나 묘사된 것은 모두 허위가 아닌 사실,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다.

토끼 한 마리가 가르쳐준 웃음과 울음

좁은 복도를 내달리던 토끼 때문에 만나게 된 마음 착한(?) 조직폭력배와 버릇없는 철부지 소년, 새침한 아가씨는 견고한 고독의 성(城)에서만 살던 여자를 열기 오르는 아스팔트와 휘황한 네온사인 빛나는 보도, 삶의 질박한 언어들이 넘실거리는 시장거리로 나서게 한다.

뿐이랴, 인간과 동물이란 도식적인 관계가 아닌 고통과 기쁨, 희망과 슬픔을 나누는 관계로 발전한 토끼 '흰털(여자가 지어준 토끼의 이름)'은 여자에게 웃음과 울음의 이유를 제공하기까지 한다. 육친의 정보다 더한 애틋함이 둘 사이에 생겨난 것이다.

넘쳐나는 사람들 속에서 살지만 정작 어려울 때 자신을 위해 울어줄 친구는 드문 우리네 현실. <잘했어! 흰털>은 '내가 소나기를 맞을 때 잎 무성한 나무 밑으로 데려다주고, 우산을 씌워주고, 빗물을 닦아주고, 모닥불 피워 줄' 존재가 꼭 사람만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맞다. 때론 말 못하는 한 마리 짐승이 보내는 동정의 눈빛이 세 치 혀를 놀려 내뱉는 형식상의 위로보다 반가울 때가 있는 법이다.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 애완동물을 키우려 하는 사람, 키우던 애완동물이 귀찮아지기 시작한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은 진정으로 그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이 방법론은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무방할 것 같다. 하여,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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