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김태훈기자]
삶은 시시한 넋두리일 지도 모른다. 고통스럽지만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닌, 작은 응어리들이 맺힌 나무 가지와 같은 것이 아닐까. 열 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집에서 주인공들은 그 응어리를 미주알 고주알 풀어 놓는다. 넋두리는 위로의 수사학을 요구하지 않는다. 독자는 가만히 귀 기울이면 그만이다. 응어리는 말로 엮이며 스스로를 치유한다.
첫 번째 단편 ‘37도2부’는 37세 이혼녀의 남자관계 이야기. 7년 전 이혼한 그녀의 남편은 지금도 한 해 서 너 번 그녀를 찾는다. 잠자리를 같이 하러 오는 것도 아닌 전 남편의 방문을 그녀는 이해하지 못한다. 또 다른 남자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아내와 이혼하지 못하는 소심한 유부남이다. 애매한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 아이를 갖지만 의사라던 그는 사기꾼으로 밝혀진다. 그 사이 카페 사장에게도 친밀감을 느끼지만 임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인해 그에게 접근하지 못한다. 이야기는 태아의 낙태로 끝난다. 사랑이란 것이 모호하고 만남과 헤어짐의 경계는 흐릿하다. 타오르지 못한 사랑의 앙금은 그 사연을 하소연하는 것에서 치유의 희망을 찾는다.

‘딸꾹질’의 주인공 인자는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섯 살 딸을 떼어놓고 도망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상처는 그러나 뱃속에 들어선 아이를 유산할 정도의 심한 딸꾹질로 표출된다.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애써 외면하는 괴로움은, 버림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하는 딸의 애타는 엄마 찾기와 충돌한다. 강요된 고통(남편의 폭력)을 벗어나기 위해 의도하지 않은 상처(버려진 딸)를 준 엄마는 딸꾹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녀의 딸꾹질은 자신을 찾아온 딸을 만나기로 결심하자 잦아든다.
이밖에 ‘
랩소디 인 블루’, ‘아내의 진홍빛 슬리퍼’, ‘천적 퇴치법’, ‘꿈꾸는
실낙원’ 등의 단편들도 한결같이 상처받은 내면의
트라우마에 간섭당한 삶을 그린다. 그러나 내적 갈등을 다룬 소설들이 흔히 보이는 심리적 공황의 파열음 없이, 소설은 겉으로 드러난 일상과 그 속에 내재한 정신의 자연스런 화해를 추구한다. 결핍을 그리지만 부드럽고 편하게 읽히는 것은 그때문이다. 구성진 호남 사투리와 맛깔지고 능수능란한 언어의 잔치 또한 작품 읽는 재미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