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박해현기자]

“봄철에 티파사에는 신(神)들이 내려와 산다. 태양 속에서, 은빛으로 철갑을 두른 바다며 야생의 푸른 하늘, 꽃들로 뒤덮인 폐허, 돌더미 속에서 굵은 거품을 부글거리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을 한다.”

알베르 카뮈의 산문 ‘티파사에서의 결혼’은 폐허 위에서 피는 꽃과 푸른 지중해에 쏟아지는 빛의 축제를 노래했다. 카뮈는 프랑스 작가지만, 알제리가 낳은 지중해의 작가이기도 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달아오르는 지중해 지역의 돌은 묘하게도 식물처럼 햇빛을 자양분으로 삼아 쑥쑥 자라나 신화의 공간을 잉태한다. 카뮈는 지중해의 돌과 빛에 향일성(向日性)의 상상력을 투사해 자연을 인간 중심의 시공간에서 해방시킨 뒤 우주적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로 바꿨다. 페니키아 말로 기항지를 뜻하는 티파사는 카뮈의 젊은 영혼이 해를 향해 비상하기 전에 도약의 숨을 골랐던 땅이기도 했다. 카뮈 문학의 향일성을 파헤치면서 젊은 날을 보낸 불문학자 김화영은 카뮈가 보며 자랐던 해가 떠오르는 땅, 알제리를 찾아 길을 떠났다. 오랜 기다림 끝에 이뤄진 여행이었다.



“죽은 자들의 몸이 갇혀있던 옛 석관 속에 햇빛이 가득히 고이고 향일성 식물이 솟아올라 찬란한 꽃을 피우며 새로운 생명을 노래한다는 티파사”에서 이 책의 문장들은 활자의 틀을 벗어나 솟아오르려고 애를 쓴다. 한때 티파사에 세워졌던 고대 건축물은 돌덩어리들로 분해됐지만, 폐허의 꽃들은 그 돌들을 어루만지듯 피어나면서 대자연의 심오한 뜻을 전한다. ‘모든 서 있는 것은 무너진다’는 것이고, ‘향일성의 수직을 무심한 수평으로 눕게 만들고 마는 힘, 그것이 바로 사물의 중심’이란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외친다. “젊은 카뮈의 이 찬란한 ‘봄의 찬가’ 뒤에는 실상 죽음과 소멸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삶과 죽음이 시소게임을 하며 서로를 더욱 깊고 높게 고양시키는 것. 이것을 카뮈는 부조리의 유희라고 부른다.”

카뮈의 소설 ‘페스트’는 알제리 서부 해안의 항구 도시 오랑을 무대로 삼았다. ‘바다에 등을 돌린 채 달팽이처럼 맴돌게 만들어진 시가지 오랑은 단단한 하늘로 덮어놓은 둥그렇고 누런 담’이라고 썼던 ‘페스트’의 한 문장을 떠올리면서 저자는 오랑의 구시가지를 마치 신화 속의 미로를 헤매듯 걷는다.



‘이방인’에서 햇빛 때문에 일어난 살인 사건은 소설 속에서 알제의 해변으로 나오지만, 카뮈는 실제로 오랑의 해변에서 벌어졌던 프랑스인과 아랍인의 싸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오랑은 카뮈에게 늘 영혼의 샘터였다. “어떤 유의 남자들에게는 여자가 아름다운 곳이면 어디나 여자가 하나의 쓸쓸한 조국이다. 오랑은 그런 조국의 숱한 수도들 중의 하나”라고 카뮈는 썼다.

알제리는 선뜻 가기 힘든 곳이다. 그러나 이 매혹적인 기행문집을 펼치면, 올 여름 휴가철에 카뮈의 문학 속으로 떠나고 싶게 만드는 푸른 지중해의 유혹이 넘실거린다.

(박해현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h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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