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형준 기자] 의료만화 <블랙잭>은 '일본만화의 신'이라고 불리는 '데츠카 오사무'의 작품이다. '데츠카 오사무'는 실제로도 의학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사토 슈호'의 유명한 의료만화인 <헬로우 블랙잭>은 제목을 통해 이 만화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고 전해진다.



<블랙잭>은 (어렸을 적 사고로 인한 피부 이식 탓에)마치 드라큘라 백작을 연상시키는 어둠의 의사 '블랙잭'과 그의 라이벌인 '키리코'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다. 두 캐릭터 모두 어둠 속에서 활약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블랙잭'은 사람을 살리는 의사인데 반해 '키리코'는 안락사 중심의 '죽음의 의사'다.



두 의사의 숙명적 대결과 다양한 질병 사례를 이야기한 만화 <블랙잭>은 그 이후로 '어둠의 의사'를 이야기하는 만화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참고로 <블랙잭>은 야마모토 겐지의 리메이크 버전이 따로 출간돼 올드만화 팬들의 흥미를 돋구고 있다.

 


<헬로우 블랙잭>이나 <의룡>이 새내기 의사와 숙련된 천재의사의 눈으로 대학병원을 비롯한 의료계 전체의 병폐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어둠의 의사'들을 이야기한 만화들은 주인공의 천재적인 재능과 남다른 사명감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병폐를 비판하면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가끔씩은 주인공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전형적이라 흥미가 반감될 때도 있지만 그 이면에 깔린 방대한 의학 상식과 새로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장점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을 듯하다.
 


<슈퍼닥터 K>와 < K2 > 가업으로 이어온 '비밀의 의학'

 
▲ 마후네 카즈오의 만화 <슈퍼닥터K>의 표지. 애장판 전 22권. 후속작 는 3권까지 출간돼 있다.
ⓒ2006 학산문화사
'불세출의 천재'로 불려온 대단한 의사가 있었다. 일본 최고의 의대라는 '제도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였지만, 그는 갑작스럽게 자취를 감춘다. 그리고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블랙잭'과 마찬가지로 희귀한 질병을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치료하는 'K'가 돼 만화의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어둠의 의사'라는 설정이나, 망토를 걸치고 다닌다는 공통점, 반대로 죽음을 안겨주는 의료를 일삼는 라이벌이 있다는 설정 탓에 한때는 <슈퍼 닥터 K>가 <블랙잭>을 표절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만화를 보면 지나친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시대적인 차이도 있지만 K의 집안은 그 '비밀의 의학'을 가업으로 이어왔다는 차이도 중요하며, 기본적으로 그가 아버지의 목숨을 건 수업 덕분에 많은 것을 깨달았다는 차이도 있다.

K는 자리만 잡는다면, 어디서든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 정교한 메스의 움직임과 빠른 일처리를 자랑한다. 마음만 먹으면 금세 돈을 벌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목숨을 건 수업'의 의미와 의사로서의 본분을 충직하게 지킨다. 돈에 앞서 환자의 생명이 우선이라는 신념이 확고하게 자리잡혀 있는 의사인 것이다.

K는 이렇듯 의사의 본분을 충직하게 지키면서 많은 환자들을 치료하던 중에 대학병원을 비롯한 전세계 의료계의 병폐를 목격하게 된다. 그는 실력을 통해 잘못된 길을 걷는 의사들을 감화시키기도 하지만 그의 메스 하나로 의료계 전체의 부조리를 치료하기는 역부족이다.

어쩌면 K와 그의 조상들이 '비밀의 의학'을 고수하는 이유도 부패한 의학계의 주류와는 관계없이 의사의 참모습을 실천하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세상에는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타인의 훌륭한 재능을 무자비하게 활용하는 권력자도 있는 법. 그들의 마수로부터 벗어나 이겨내기 위해서는 비밀리에 활동할 수 밖에 없었을 듯싶다.
 


<슈퍼닥터 K>와 < K2 >는 넓은 무대 설정과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K의 천재적인 재능을 통해 독자들의 카타르시스와 지적 욕구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참고로 < K2 >는 <슈퍼닥터 K>의 주인공인 '카즈야'가 암으로 사망하면서 그를 대신하는 '그림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렇듯 K의 이미지에는 일본의 전국시대를 풍미한 '닌자'와 '카게무샤'의 이미지도 숨어있다는 점에서 또다른 흥미를 제공할 수 있을 듯하다.

<살의(殺醫) 닥터 란마루> 그는 '사회의 병폐'도 치료한다

 
▲ 카지 켄고의 <살의 닥터 란마루>의 표지. 전 14권
ⓒ2006 대원씨아이
늘 세계를 떠돌며 '비밀의 의학'을 실천하는 K와는 달리, <살의 닥터 란마루>의 주인공 '란마루'는 정식으로 병원을 개업한 개업의사다. 하지만 그 역시 보통의 의사는 아니다. 낮에는 의사의 본분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지만 밤에는 메스를 이용해 법으로는 처벌하기 어려운 사회악을 직접 심판하는 살인청부업자의 삶을 산다.
 


낮의 '란마루'를 언뜻 봐서는 허술해보이는 선량한 의사일 것만 같다. 하지만 밤이 되면 '의뢰'에 따라 악인들을 심판하러 나서는 그는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으로 보인다. 낮에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이중생활을 그린 보통의 영화와 비슷한 설정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만화를 의료만화로 보기는 어렵다. 작가의 방대한 의학지식과 대형병원의 병폐를 헤집는 비판 의식이라는 의학만화 특유의 매력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밤의 삶'을 통해 권력과 돈을 가진 막강한 이들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보통 사람들을 위한 대리만족을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만화에서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간호일을 도맡는 여고생 '마리아'와 자신을 좋아하는 다수 사람들에게 '이중 생활'을 감추려는 영화적인 이야기, 그리고 밤에는 살인청부업을 도맡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비밀 모임과 같은 설정은 이 만화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큰 역할을 한다. 기본적인 설정부터가 말이 안되기 때문에 이런 초현실적인 장면의 추가는 오히려 매력이 된다. 만화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한 설정으로 보인다.

<살의 닥터 란마루>는 그렇듯 의학만화의 틀을 빌려 사회 정의를 지키는 어둠 속 영웅의 이야기를 추가해 독특한 재미를 이끌어나간다. 특히 결말에 이르면 다소 신파조로 보이지만 그래도 알듯 모를 듯한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사람들은 가끔씩 뻔한 해피엔딩보다는 그런 식의 알듯 모를듯한 여운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느낄 때도 있다.

'비판 의식'이 살아있는 만화장르, 의료만화

<헬로우 블랙잭>이나 <의룡>같이 직접적으로 병폐를 진단하는 의료만화들, 그리고 '어둠의 의사들'을 이야기한 만화들, 그리고 감동 위주의 따뜻한 이야기들을 드러낸 <닥터 코토 진료소>까지도 의료계의 병폐를 이야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분야든지 그 분야가 거대해지면 반드시 그에 따른 부작용과 병폐가 드러난다. 사람들에게는 특권층으로 인식되는 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의료만화의 성향에 큰 영향을 미쳤을 듯하다.

의료만화는 '현실 비판'을 이야기하는 만화 장르의 특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른들이 만화에 대한 편견을 깨기에도 가장 좋은 장르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의료만화를 자주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만화는 정치나 경제 등 어른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영역에도 놀라운 전문성과 비판의식을 반영하지만 의료만화만큼 그런 성격을 많이 반영하는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자주 만나는 '특권층'이라는 특성도 그런 적극적인 개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형준 기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