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식민지성·종속성에 대한 반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좀체 진전이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안의 보편성〉(한울아카데미 펴냄)은 더디더라도 중요한 진전을 계속 밀고 나가려는 분투의 산물이다.
상지대·
성공회대·한신대가 공동으로 설립한
민주사회정책연구원과 진보학술운동을 대표해온 학술단체협의회가 함께 펴냈다.
책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12명의 공동 필자는 의미심장한 지평 하나를 잡았다.
민족경제론, 분단체제론 등 그동안 우리 학문의 주체성을 대표해온 담론들은 서구적 보편성을 한국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적용’한 결실이었다. 반면 〈우리 안의 보편성〉은 ‘보편성’의 잣대를 한국의 현실 안에서 찾자고 제안한다.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는 책 머리말에서 “우리의 현실 속에는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온갖 비밀이 농축돼 있고, 보석으로 다듬어질 수 있는 광물이 널려 있다”며 “우리 사회의 특수성으로 간주되는 것 속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읽어내자”고 제안한다.
다만 이 작업은 ‘주워 담는’ 게 아니라 ‘캐내는’ 과정이다. 주체적 학문의 소재와 가능성이 우리 현실에 널려 있긴 한데, 서구적 학문이라는 지층 아래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이 작업을 “우리 속에 내재한 보편성을 ‘발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600여쪽의 이 책은 그 가능성을 실제로 모색했다. 우선 독일의 경제학자 리스트, 일본의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 중국의 철학자
왕후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언론인 막스 두 프레즈 등이 어떻게 ‘주체적 학문’의 지평을 닦았는지 검토했다. 주로 후발자본주의 국가들이 선진 서구 담론을 극복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우리에겐 ‘보편성’의 잣대로 다가오는 이들의 담론이 한때는 외세의 지배 담론을 비판하는 ‘특수성’에 주목한 결실이었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우리 안의 보편성〉은 또
내재적 발전론, 분단시대론, 민중담론 등 ‘주체적 학문’을 대표하는 담론 체계를 돌아본다. 신정완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 담론은 “학문의 종속성 탈피보다는 그 토대가 되는 정치경제적 종속성을 극복하는 사회변혁에 관심을 둔” 시대의 산물이다. 국가 또는 민족의 경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도 있다.
공동 저자들은 국민국가적 지평을 넘어 한국의 현실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읽어내려는 몇가지 이론적 시도를 소개한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의 ‘개발자본주의론’이 대표적인데, 동아시아 후발국가의 자본주의 발전 양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해 세계 자본주의 발전사의 주류 담론에 올려놓으려는 시도다. 조희연 교수가 한국의 운동정치를 분석하고,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가 한국 노동자 운동의 윤리적 동기를 개념화한 것도 좋은 사례다. “소재, 개념, 이론, 방법의 주체화”라는 학문적 주체성 회복의 방법론을 적용한 결과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 진보개혁 세력의 위기는 학문의 식민지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조희연 교수는 “세계 12대 무역대국의 인문사회과학자들이 철저히 서구에 종속된 수입상에 머물고 있다”며 그 결과 “시민사회운동 진영 역시 의제와 지식 생산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