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정재숙] 영화, 미술의 언어를 꿈꾸다

한창호 지음, 돌베개, 316쪽, 1만8000원

'이미지 문명' 시대다. 인류 역사상 이렇게 '눈이 보는 것'에 쏠린 때가 없었다. 하물며 정치판 선거도 이미지가 쥐고 흔든다. 이미지를 빌리고 뒤섞고 바꾸는 일을 읽지 못하고서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하나의 이미지란, 눈 깜짝할 짧은 순간에, 그 안에서 옛날이 지금을 만나 새로운 별자리를 형성하는 어떤 것"이라 했다. 영화평론가 한창호씨는 스크린 안에서 옛 그림이 영화를 만나 새 이미지를 창조하는 속내를 좇았다. 영화가 굵은 탯줄을 대고 있는 사진.연극.회화 중에서 특히 회화를 고른 까닭은 그가 좋아한 유럽 감독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가 모두 미술에 혼 들린 사람들이어서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듯, 스크린 위에 아름다움의 절정을 뿜어내는" 감독 중에는 화가나 미술학교 출신이 많다.

영화의 미학은 운동이다. 회화의 미학은 정지라 할 수 있다. 단순히 "그림 같다"는 탄성을 지르게 할 한 장면을 끼워넣은 것쯤으로 움직이는 영화의 이미지가 멈춰서 있는 그림의 이미지를 품을 수는 없다. 지은이는 이 둘 사이에 태어난 새 이미지, 영혼의 교접이 낳은 새 자식을 보듬는다. 영화가 회화에 대해 품은 꿈은 색채나 형태의 거죽을 닮는 것이 아니라 그 회화의 시대정신을 아우르는 것이다. 르네상스 미술부터 팝아트까지, 서양미술사를 일곱 개 분야로 나눠 모두 서른다섯 편 영화에 담긴 회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풍부한 도판을 비교해가며 화가와 영화감독 사이에 펼쳐진 대화와 소통을 따라가다 보면 영화만큼 다른 세계를 여기 이곳에 나타나게 하고 결합시키는 예술도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씨는 지난해 펴낸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에서 영화의 상상력이 어떻게 미술을 훔쳤는지 정밀하게 파헤쳤다. 그 자매 편이라 할 '영화, 미술의 언어를 꿈꾸다'는 21선袖?미술이자 미학이 된 영화에 보내는 지은이의 연서다. 영화는 이미지 범람 시대에 대중 곁에 남아 유랑하는 새 별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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