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여행을 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강변을 거닐다 보면 이 땅의 상징적인 풍경들과 마주칩니다. 강가 제방에서 수평으로 길게 누운 채 자라 있는 등풍す? 기나긴 세월 동안 조금씩 대지를 침식한 물줄기가 어느새 그 흐름을 바꿔 숲으로 향합니다. 나무들은 하나둘씩 강물에 휩싸이고, 저마다의 생을 마감합니다. 유속이 빠르고 경사가 심한 강일수록 더 많은 대지를 침식하고, 더 많은 나무들을 휩쓸어버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강물에 휩쓸린 나무들은 길고 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거칠 것 없는 혼돈된 풍경을 나는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모든 존재가 늘 같은 장소에 멈춰 있지 않다는 진리를 내게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벌써 꽤 오래 전 일인데, 처음 북극해 해안에 당도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나는 그때 커다란 유목 위에 앉아 있는 한 마리 티티새를 사진에 담고자 풀숲에 숨어 있었습니다.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북극권의 툰드라에서 어떻게 이토록 큰 유목이 해안까지 떠내려 올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이 나무는 강물의 침식에 휩쓸려 바다로 흘러 나갔고, 그 후 다시 긴긴 여행 끝에 머나먼 북쪽의 해안에 당도한 등피나무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곳이 여행의 종착지였던 것입니다. 가지는 모두 떨어지고, 껍질도 완전히 벗겨진 채였습니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던 옛 시절은 간 데 없고, 이제 뿌리가 흉물스럽게 드러난 벌거벗은 유목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티티새에겐 날개를 의지할 수 있는 아주 요긴한 장소였겠지요. 또 이곳을 드나드는 북극여우에겐 영역표시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었을 겁니다. 근처에 있는 대지는 천천히 부패하는 유목을 흡수해 꽃들에게 전해줄 것이고, 그래서 완전히 썩어버린 다음에는 이곳에 꽃들이 만발할지도 모릅니다. 먼 바다에서 떠내려 온 유목이 아름다운 꽃밭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경험이었습求? 생과 사의 관계가 마치 여행처럼 느껴졌습니다.-.쪽
볼을 어루만지는 겨울의 감촉이 확실히 따스해졌습니다. 계절의 변화가 어느새 확연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알래스카에서 생활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났건만, 계절에 따라 책장을 넘기듯 분명하게 다가오는 이 땅의 변화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생각해보면 인간의 감정처럼 우스운 것도 없습니다. 조그마한 일상에 상처받아 우울해 있다가도 첫여름을 알리는 따스한 바람에 마음이 이토록 풍요로워지니까요. 사람의 마음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이상하리만치 작아지곤 합니다.-.쪽
고래를 쫓으며 시작된 이 여행도 어느새 3주일이 다 되어갑니다. 남동 알래스카의 바다는 풍요로움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넙치, 연어, 게 등을 닥치는 대로 잡을 수 있었습니다. 3주 동안 우리는 이렇게 잡은 신선한 생선들을 푸짐하게 먹어치웠지요. 간혹 1미터가 넘는 넙치를 잡기도 했습니다. 물살이 조금 불투명한 편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바다가 얼마나 풍요로운지를 증명해주는 증거입니다. 이곳은 한마디로 거대한 플랑크톤 수프 같습니다. (중략) 어미 고래와 새끼 고래를 만난 것은 오늘 오후였습니다. 바다는 거울처럼 잔잔했으며, 희미하게 뿜어 나오는 고래의 숨결이 멀리서도 확인되었습니다. 우리는 조심스레 다가갔습니다. 배의 엔진은 거의 공전상태였습니다. 고래는 우리의 출현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마치 우리들과 놀고 싶다는 듯 새끼는 작은 머리로 배 밑을 몇 번씩 들이받았습니다. 그때 갑자기 새끼 고래가 어미에게서 떨어져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러고는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더니 신기하다는 듯 우리들을 유심히 바라봤습니다.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고래들은 주변을 맴돌았습니다. 태양도 기울기 시작하고, 우리는 오늘 밤 정박할 만을 찾아 출발해야 했습니다.
=>물을 뿜어대는 큰 고래의 모습이 연상이 되네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쪽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루한 백야의 계절도 끝나고 다시 밤이 찾아옵니다. 이제 오로라가 나타나도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4~5년 전의 일인데, 아마도 7월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 바다에서 오로라와 마주쳤습니다. 시간은 밤이었지만 주변은 여전히 환했습니다. 그때 수평선 너머 하늘에서 오로라가 백야의 밝음을 꿰뚫고 우리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문득 친구인 A가 생각났습니다. 새로운 광경을 만나 기쁨의 환성을 지를 때마다 A가 이곳에 함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칩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A. 그는 지금도 깊은 좌절감에 빠져 소중한 시간을 슬픔으로 허비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원시림에 둘러싸인 남동 알래스카의 바다를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저도 오로라를 사진이 아닌 직접 한번 보고 싶네요-.쪽
백양나무와 자작나무 이파리들이 노랗게 물들고, 툰드라에 펼쳐진 융단은 와인 색으로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알래스카에 가을이 찾아왔다는 신호입니다. 신록의 절정이 딱 하루인 것처럼 단풍의 절정도 이곳에서는 불과 하루뿐입니다. 벌판을 수놓은 가을빛은 나날이 짙어만 가고, 여러 가지 식물들이 만들어내는 툰드라의 모자이크는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기온은 조금씩 내려가고 이틀 후면 주위의 풍경이 오늘과 상당히 달라질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단 하룻밤만으로도 계절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며칠 후에는 북풍이 찾아와 캔버스를 물들이는 붓처럼 알래스카를 쓰다듬고 지나갈 것입니다.
=>하루뿐인 가을.. 그래서 더 멋진것 같습니다.-.쪽
북쪽에서 누리는 자연의 혜택은 남쪽과는 약간 다릅니다. 이곳의 자연은 냉혹한 환경 속에서 잔뜩 몸을 움츠렸다가 기회를 엿봐 순식간에 흩어져버립니다. 몇 달씩 같은 계절이 반복되는 남쪽과 달리 너무 짧기에 더욱 매혹적입니다. -.쪽
가을 산을 걷느라 지칠 때면 나는 블루베리 열매로 목을 축이곤 합니다. 푸른 열매송이가 보이면 무작정 자리를 잡고 앉아 손이 닿는 대로 블루베리를 따먹고 나서 잠시 누워버립니다. 그때 눈에 들어오는 하늘은 블루베리 색과 똑같습니다. 블루베리가 하늘로 올라간 것인지, 하늘이 블루베리가 된 것인지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몇 분 졸고 나면 다시 기운이 생깁니다. 이맘때쯤 블루베리 열매를 따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에스키모들은 "곰과 머리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곰이나 사람이나 블루베리를 먹느라 정신을 팔다 보면 옆에 곰이 있는지, 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종종 생기니까요. 그래서 나도 블루베리를 딸 때면 늘 조심스레 주변을 살펴보곤 합니다.
=>블루베리 좋아하는데 알래스카에도 블루베리가 있었네요.-.쪽
가을은 이처럼 아름다운데, 왠일인지 사람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지기만 합니다. 북극의 여름이 너무나 순식간에 왔다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일까요. 어쩌면 길고 어두운 겨울이 코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첫눈이 내리면서 또다시 겨울이 시작되겠지요. 막상 겨울이 찾아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다시금 차분해질 것입니다..-.쪽
무한한 세계 저편으로 흘러가는 시간들은 계절을 통해 분명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자연이란 얼마나 멋진 생명인지 매일같이 감탄할 뿐입니다. 일 년에 단 한 번뿐인 오늘의 풍광은 내년에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약 때문에 더 많은 그리움을 남깁니다. 오늘과 같은 그리움들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과연 몇번이나 찾아오는 것일까요? 문득 궁금해? 생명을 품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알래스카의 대지처럼 인간의 삶을 작고 나약하게 만드는 힘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래스카의 가을이야말로 나에겐 그런 힘을 절감케 하는 계절입니다.-.쪽
모든 생명에게는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는 강인함이 있습니다. 또 너무나 쉽게 사라지는 연약함도 있습니다. 나는 생명이 가진 그 연약함 때문에 알래스카를 사랑합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저 당연한 일상이 아니라 기적입니다. 오늘 나의 심장이 단 한번도 쉬지 않고 움직였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기적 중에서도 가장 큰 기적입니다.-.쪽
어제는 보름달이 떴습니다. '무스 투스(무스의 이빨)'라고 불리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의 어깨에서 달이 떠오르자 빙하 전체가 밝아지면서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산들이 그림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밤은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기에 진한 커피가 가득 담긴 보온병을 배낭에 넣고서 베이스캠프가 있는 바위산에서 빙하를 향해 스키를 타고 미끄러지듯 내려갔습니다. 3월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온은 영하입니다. 게다가 높은 산지라서 스키를 타고 빙하를 건널 때마다 차가운 바람이 몸 구석구석으로 스며듭니다. 이 조용한 세계에서 들리는 것이라곤 오직 발밑을 스쳐 지나가는 눈들의 외침뿐입니다. 광대한 풍경 속으로 영혼이 조금씩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결치듯 끝없이 펼쳐진 눈 덮인 벌판에서 스키를 멈췄습니다. 여기서부터 깊은 눈 속에 숨어 있는 크레바스 지대가 시작됩니다. 이곳이야말로 무스 빙하의 중심이며, 알래스카의 한복판입니다. 무스 투스, 마운트 바렐, 찰스베리, 매킨리의 모습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리며, 이 끝없는 눈 속으로 나를 삼켜버릴 것 같은 공포가 밀려옵니다.-.쪽
배낭을 벗고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서 달빛을 감상했습니다. 밤이 되면 빙하는 더욱 아름답게 빛납니다. 가끔 눈사태 때문에 땅이 흔들리곤 하는데, 오늘따라 세상은 너무나 조용하기만 합니다. 밤하늘엔 별들만이 빼곡이 떠 있고, 그 사이로 별똥별이 재주를 부리듯 떨어져 내립니다. 언젠가 사하라 사막을 여행하고 돌아온 친구가 들려줬던 사막의 밤도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래와 별들로 가득 찬 밤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불가사의한 힘에 대해 그 친구는 상당히 감격했었는데, 이제야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아직도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장소와 마주치는 순간, 오히려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방황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나 자신을 비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세계가 전에 살던 세계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이 새로운 세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려움은 풍요로움으로 바뀌고, 거대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내 안에 숨어 있던 무한한 가능성을 깨닫게 됩니다.-.쪽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는 콜롬비아, 아니 남아메리카 전체가 내겐 그저 지도에 등장하는 막연한 세계의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친근한 이웃처럼 느껴집니다. 아마 알두에게도 알래스카는 그저 지도의 한귀퉁이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친구가 된 알두에게 알래스카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알래스카를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 나를 사로잡은 풍겨은 바로 노을입니다. 알래스카의 태양은 수평으로 천천히 이동하는데 적도의 노을은 수직으로 떨어집니다. 그 숭고한 낙하에 나는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극지방과 적도의 만남.. 무척 인상적이네요.-.쪽
언젠가 알래스카에서 만난 스위스 탐험가가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스위스엔 더 이상 자연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사람들의 손길로 만들어진 인공적인 자연입니다. 만일 그럴 힘만 있다면 스위스 사람들은 알프스를 관광하기에 좀더 편한 곳으로 옮기려고 할 겁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해 스위스와 독일의 관광객들이 왜 그토록 알래스카에 열광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친구와 잘츠부르크 교외의 산을 올랐습니다. 등산로도 잘 꾸며지고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했지만, 알래스카의 황량한 산들과 비교하면 왠지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프스를 처음 봤을 때 상자 속에 담겨진 모형 정원이 생각났습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마다 사람의 정성이 묻어났지만, 사람의 정성이 진정한 자연의 생명력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손길을 거부하는 듯한 생명의 약동이야말로 자연의 위대한 힘입니다. 유럽인들이 알래스카에 매료되는 이유는 진정한 야생의 힘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나는 알프스를 통해 그들의 솔직한 감정을 이해할 수도 있을 듯했습니다.-.쪽
100년 전쯤 알래스카를 여행한 사람이 죽기 직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알래스카를 찾지 말아라. 인생의 마지막 고비라고 느껴질 때 그곳을 찾아라." 알래스카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생명이 살아가기엔 최악의 조건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최악의 조건에서 사람은 자기 안에 숨겨진 진정한 생명력을 깨닫습니다. 알래스카의 천연적인 자연이 알프스처럼 사람이 가꿔놓은 인위적인 자연보다 훌륭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인간이 자연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봤을 때 옛 탐험가의 말이 자꾸 뇌리에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쪽
유럽을 방문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알래스카가 자연의 시간이라면, 유럽은 사람의 시간을 가르쳐주었습니다.-.쪽
북극해를 비행하던 중 우연히 카리부 사슴떼를 만난 것은 벌써 5년전의 일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을 수 없는 툰드라의 대지를 수십만 마리의 카리부 사슴떼가 달려 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모습은 천 년, 아니 만 년 전의 일인지도 몰라." 곁에서 조종을 하던 돈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백야의 툰드라에서 카리부 사슴을 쫓는 한 마리 늑대를 관찰한 적도 있었다. 이 또한 태곳적과 다를 바 없는 광경이었다. 이곳에서 생명은 오직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 그 숭고함이 우리들까지 흥분시키곤 했다.
=>글을 읽는 저까지 흥분시키네요.-.쪽
"어떤 사람이 나한테 물어 본 적이 있어. 이렇게 별이 총총한 하늘이나, 눈물나게 아름다운 석양을 사랑하느 사람에게 전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할 거냐고." "그야 사진을 찍으면 되지. 아니면 그림을 그려주거나. 그게 안 되면 말로 설명해주는 수밖에 없지." "근데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어.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아름다운 석양처럼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래.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거야." 사람의 일생 동안 자연은 여러 가지 메시지를 보낸다. 이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에게도, 사라져가는 노인에게도 자연은 제각기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주게 마련이다.-.쪽
제1장의 제목은 '여행을 떠나는 나무'이다. 이른 봄, 한마리 잣새가 등피나무에 앉아 그 씨앗을 빼먹고 있다. 낭비벽으로 유명한 이 새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몇 개의 씨앗을 떨어뜨렸고, 등피의 씨앗은 갖가지 우연을 거쳐 강가 숲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씨앗은 아름드리 등피나무로 성장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강의 침식이 활발해졌고, 마침내 씨앗이 뿌리를 내린 곳까지 강물이 밀려온다. 몇 달 후 홍수가 범람했고, 등피나무가 된 씨앗은 유콘 강을 여행하다가 마침내 베링 해까지 떠내려간다. 그곳에서 만난 북극해류는 알래스카 내륙에서 태어난 등피나무를 머나먼 북쪽 툰드라 지대의 해안에 내려놓았다. 해안에 도착한 등피나무는 풀 한포기 자라지 않는 툰드라에 뿌리를 내린다. 며칠 후 여우 한 마리가 찾아와 등피나무의 친구가 되어준다. 그러던 어느 날 가난한 에스키모 소년에게 발견된 등피나무는 벌판에 외롭게 서 있는 소년의 오둑막에서 땔감으로 그 생을 마감하고 만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완전히 타버린 연기 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등피나무는 또다시 알래스카를 떠돌며 여행을 시작한다.
=>이 책의 제목에 영향을 준 우화네요.-.쪽
포인트 호프 마을에서 에스키모와 함께 고래를 사냥한 적이 있다. 이때 느꼈던 강렬한 인상이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우리는 바다표범 가죽으로 만든 우미악을 타고, 얼음의 균열로 발생한 리드라는 빙해 사이에서 고래를 쫓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독특한 체험이었다. 작살로 고래의 머리를 무참히 찍어대는에스키모들이 솔직히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죽은 고래에게 경이를 표하는 그들의 신성한 마음을 깨닫고 나서는 나의 편견이 부그러워졌다. 고래의 살을 헤체하면서 그들은 계속 기도를 했다. 이렇게 잡혀줘서 고맙다는 것, 부디 다음생에도 오늘처럼 은혜를 베풀어달라는 기도였다. 그리고 두개골을 바다로 돌려보냈다. 에스키모들은 사냥을 신성한 의식으로 생각했다. 문명인에게 사냥이 일종의 스포츠라면 에스키모들에겐 생존의 수단이다. 따라서 가장 고귀한 행위이며 자연의 은혜이다.
=>마법의 시간 여행에서 하늘을 나는 곰이 생각나네요. 그곳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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