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형준 기자] 지난 5월 27일에 올린 만화 <원아웃>의 리뷰 <'도박야구'의 천재, 프로야구를 농락하다>라는 글에서 밝혔듯이, 나는 스포츠 만화의 전형성 탓에 스포츠 만화를 즐기지 않는다. 옛날에 우리가 열광했던 <
달려라 하니> 등의 만화에서 알 수 있듯이, 스포츠 만화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온갖 고난과 위기를 이겨내고, 정상에 올라서면서 인간적인 성숙도 동시에 이룬다는 전형성을 가지고 있다.



사실 만화가 활용하는 스포츠 종목은 대단히 다양하다. 야구나 축구 등의 인기스포츠는 기본이고, 육상이나 권투같이 '헝그리 정신'을 중시하는 종목도 자주 다룬 소재들이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테니스나 골프와 같이 요즘 들어 주목받는 스포츠들도 자주 만화 속의 소재로 등장한다. 물론 주인공들이 '말도 안되는 재능'의 소유자라는 점은 극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지만 말이다.
<마스터 키튼>과 <몬스터>, 그리고 <20세기 소년> 등의 인기만화를 통해 다수의 마니아를 확보한
우라사와 나오키도 이런 스포츠 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 내 스스로도 이 만화를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이름값(?) 덕분에 선택했다는 것을 밝혀둔다. 하지만 <20세기 소년>과 같은 작가의 전작들과는 상당히 다른 구조의 이야기가 그를 아는 독자들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사와 나오키가 테니스에 대해 그린 만화, 이 만화는 <해피(Happy)>라는 단순한 제목을 가지고 있다.
우라사와 나오키와 테니스, 그리고 연속극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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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화 <해피>의 표지. 전 22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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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학산문화사 |
독자들을 놀라게 할 '다른 구조의 이야기'란 다름아닌 우리가 주로 연속극에서 봤던 뻔한 구조의 이야기를 말한다. 착하디 착한 여주인공이 얼굴까지 예쁜 덕에, 잘 생긴 재벌 2세의 사랑을 받지만, 질투에 사로잡힌 여성들의 음모로 인해 가면 갈수록 더 큰 위기에 빠진다는 식의 이야기다.
게다가 이 여주인공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탓에 어린 동생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신데렐라'로서의 자격요건까지 갖췄고, 그녀를 사랑하는 재벌 2세 '
이치로'의 어머니도 자신의 아들이 가난한 여주인공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보기만 해도 안쓰럽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이 여주인공의 이름은 '우미노 미유키'다. 그녀는 사업수완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없는 주제에 사업을 벌이다 실패한 오빠 탓에 2억5천만 엔(약 22억5천만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된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적에는 유복한 환경에서 테니스를 했던 그녀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 일본 주니어 테니스 대회를 휩쓸다 사라졌던 적도 있다. <해피>는 그런 그녀가 대담하게도 프로 테니스 대회 상금을 통해 오빠의 빚을 갚으려고 라켓을 다시 쥐면서 시작되는 만화다.
<몬스터>나 <20세기 소년> 등, 묵직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매력을 가진 작가의 전작을 생각하면 놀랄 수밖에 없는 형식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의 연속극이 아직도 극복하지 못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진정한 '힘'이라고 볼 수 있는 이야기 작가 '
에도가와 케이시'가 참여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영향도 있는 듯하다. 그런 탓에 "에도가와 케이시가 이야기를 쓴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사랑한 독자들이라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해피>의 강점은 '질투'의 본질 묘사하지만 <해피>는 지나친 묘사로 인해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는 연속극보다는 한결 나은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해피>에서는 자극적인 에피소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언뜻 봐서는 연속극의 흔한 공식을 그대로 나열하는 것과 같지만, <해피>는 '질투'의 본질을 확실하게 묘사함에 따라, 그 흔한 공식을 작품 자체의 '매력'으로 승화시킨다.
<해피>에는 많은 갈등이 숨어 있다. '미유키'를 좋아하는 '이치로'의 어머니는 왕년에는 전설적인 테니스 선수로 통했고, 역시 테니스 선수인, 젊은 시절의 라이벌의 딸 '쵸코'의 승승장구를 막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녀는 '쵸코'의 독주를 막기 위해 '미유키'의 부활을 돕고 있을 뿐, 자신의 아들이 가난에 허덕이는 '미유키'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면, 당장에 인연을 끊고도 남을 것이다.
게다가 문제의 인물 '쵸코'는 '이치로'를 사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유키'와 '이치로'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의 연결을 막을 궁리만 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미유키'에 대한 모함을 남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난'이라는 '미유키'의 치명적인 약점을 교활하게 이용하는 영리함(?)도 과시한다.
재미있는 것은 질투에 사로잡힌 '쵸코'가 '미유키'를 궁지에 몰기 위해 자주 이용하는 수단 역시 '질투'라는 점이다. '쵸코'가 남발하는 '미유키'에 대한 모함은 대부분 그녀가 활동하는 테니스 클럽이나 빠르게 퍼뜨려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스포츠 신문 기자들을 통해 이루어진다.
테니스 클럽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은 성격도 착한 데다가 얼굴까지 예쁜 '미유키'가 테니스 실력까지 월등하다는 자체에서 질투의 화신이 된다. 내 스스로가 남성인 탓에, '질투'가 여성의 심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확신하기에는 조심스럽지만, 이 만화를 보자면, 그 비중이 작지는 않은 것 같다. 물론 이 만화에는 '이치로'와, '미유키'의 스폰서를 자처하는 채권자 '준지'의 대결구도도 만만치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이 만화에는 연속극에서 탤런트
김나운이 자주 맡았다는 '여주인공의 친구'를 연상시키는 캐릭터(물론 김나운이 자주 맡은 배역보다는 적극적으로 '미유키'를 돕지만)도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도 있을 듯하다. 이렇듯 <해피>는 연속극의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는 만화다.
하지만 인기가 있으면 무리하게 연장 방영을 하면서 '질질 끄는 경우'도 있는 연속극과는 달리, 속도감 있는 전개와 '질투'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연속극을 싫어하는 남성들도 이 만화만큼은 웃으면서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1999년에 인기리에 방영됐던
김희선 주연의 드라마 <토마토>가 이 만화의 이야기 구조를 표절했다는 비판이 나돌았다. 그리고 2002년에 방영된
소유진 주연의 드라마 <라이벌>이 소재만 바꿔 이 만화를 그대로 모방했지만, 만화 독자들 사이에서는 만화만한 재미는 없다는 생각에 "판권 계약을 했다면 원작의 제목과 작가를 밝히라"는 사항까지 요구했다고 한다. 똑같은 이야기 구조를 취한다 할지라도 섬세한 묘사를 잊지 않는 작가의 특별한 능력까지 '모방'하기는 어려운 모양인가보다.
/박형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