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 가슴은 석자(90cm)이상 되는지 안 되는 지 확인해서 석 자 이상 되는 거 같으면 일단 기록 해둬. 입술이 붉고 약간 자색의 테두리를 보이는 여자들도 요주의 인물이니 기록해두고, 턱이 작은 여자와 긴 여자들, 목이 가는 여자들.... 이건 일단 목이 두꺼운 여자들만 기록해”

<엽기조선왕조실록>(추수밭. 2006)에 등장하는 내시들의 ‘세자빈 간택 대책 회의’ 장면이다. 대비와 중전이 주관하는 세자빈 심사 보좌직을 맡은 내시들은 후보를 관찰해 하자가 있는지 없는지 기억해 두었다 고하는 것이 임무.

책에 따르면 “목이 두꺼우면 처녀가 아니다” “입술을 자주 적시면 욕구불만” “주걱턱은 착한 심성” “가슴이 큰 여자는 무식하다” 등이 당시의 선발기준이었는데 지금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항목들이 많다. 이런 기준들이 조선시대 내내 정설로 받아들여져 중전, 세자빈은 물론 민간에게까지 퍼져있었다니 고개가 갸우뚱 해 질 뿐.

“이번에는 어떤 처자를 세자빈으로 삼으려 하시는지요? 좀 똘똘한 처자를 뽑으실 건지, 아니면 좀 무식한 처자를 뽑으실 건지요?”

“그게 좀 아리송한데, 너무 똑똑한 처자가 들어와도 문제고 그렇다고 무식한 처자가 들어오는 것도 좀 그렇고, 왜... 가슴이 큰 처자가 있더냐?”

“11번 처녀가 거의 넉자는 넘어 보였습니다”

“에이 그렇게 무식한 처자를 어찌 궁에 들이겠느냐? 탈락이다”

상상으로 꾸며진 상황이지만 사료를 참고한 이야기이니 조선사에서 발췌한 흥미로운 흔적이라 할만하다.

책은 조선시대 중전 간택 기준이 이처럼 모두 비과학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덧글’도 단다. 쌀 한 톨이라도 아껴 물을 말아 깨끗이 그릇을 비우는 처녀는 국모의 자질과 부합된다는 이유로 간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고.

“엽기와 개인적 즐거움”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엽기조선왕조실록>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뒤섞은 흥미로운 팩션(faction)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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