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에 수장된 뒤 부활하는 말들을 꿈꾼 적이 있는가.”

손택수씨(36)가 펴낸 두번째 시집 ‘목련전차’(창비)에 수록한 ‘오징어 먹물에 붓을 찍다’의 한 구절이다. 오징어 먹물로 쓴 글씨는 감쪽같이 사라지는데 바닷물에 담그면 되살아난다는 것. 손시인은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시쓰기의 운명이자 자세로 삼은 듯하다.

손씨는 ‘오징어 먹물’의 비유에 대해 “정약용 형제들은 추방과 몰락 속에서 갱신한 진정성을 토대로 결국 역사로 귀환했다”며 “우리 시대의 문학도 망각의 두려움 대신에 죽음을 딛고 생환하는 불멸을 꿈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시인은 사는 만큼 말을 한다. 몸으로 감당한 이상으로 말하면 대개 들켜버린다. 그가 아무나 할 수 없는 무서운 말을 조심스럽되 떨지 않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책 맨 뒤에서 찾아진다. “아버지가 그랬다,/시란 쓸모없는 짓이라고.//어느날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기왕이면 시작했으니 최선을 다해보라고.//쓸모없는 짓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게 나의 슬픔이고 나를 버티게 한 힘이다.”(‘시인의 말’ 전문)

그는 “아버지 말씀은 제 유일한 시론(詩論)”이라며 “이 세상에 와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잘 못하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게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시를 잘 써야 하는데 부끄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업시인이다. 한 편의 시일지라도 그의 분신에 불멸의 생명을 남겨주고 싶은 위대한 망집의 소유자이자, 그 대가로 차가운 현실의 터널을 오체투지로 통과해야 하는 경제적 금치산자다. 이번 시집은 그런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양극단적 팽팽한 줄다리기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잡고 용맹정진한 투혼의 흔적들로 읽힌다.

이 시집의 세계는 표제작이 얼추 안내해준다. 목련이 상징하는 자연·고향·이상향, 전차가 함의하는 문명·도시·일상이라는 이질적 두 축을 겹눈으로 포착한다. 그 긴장 속에서 그의 상상력이 목련처럼 꽃피고 전차처럼 레일을 달린다. 급기야 “꽃들이 전차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든다”(‘목련전차’ 중). 현실과 일상을 뚫고나와 손 흔드는 자연의 탄력과 탄성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 ‘꽃전차’야말로 시인에게는 “나의 슬픔이고 나를 버티게 한 힘”이 아닐까.

시집의 주된 공간은 집이다. 떠돎의 삶을 살았던 그에게 집은 ‘결핍된 충만’의 공간. 그는 “존재의 근원인 몸의 확장이 집이요, 그 집의 확장이 우주라고 본다”면서 “그런데 몸과 우주의 매개인 집이 다 병들어 있으므로 제발 내 몸 안팎이 집을 통해 우주와 맞장구쳤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실제 그는 ‘집장구’라는 시에서 새 창호지를 바른 날 창호문 안팎의 경계가 탱탱해져서 수저 부딪치는 소리, 새소리·닭울음소리도 한결 좋았을 뿐더러 “그런 날이면 코 고는 소리에도 정든 가락이 실려 있었다”고 노래했다.

시집은 또한 촉각·시각 이미지가 역력하다. 그는 “영산강 물 속에서 장어가 허벅지 사이를 미끌 지나가는 감각과 담양 들판을 수천마리 새떼가 아침 저녁으로 검게 뒤덮으며 날던 이미지가 내 혈액 속에 남아있다”고 밝혔다.

그는 전남 담양 영산강 수원지인 용소 부근에서 태어나 네다섯살 때 부모를 따라 부산으로 이사갔다. 꼬마 손택수는 근대도시 부산에 적응하지 못한 채 “최초의 상처”를 받았다. 여동생을 때리며 부모에게 떼쓰고 도둑질을 했다. 결국 예닐곱살 때 가족과 헤어져 (외)조부모가 사시는 담양으로 홀로 귀향했다.

그는 “그때 2년이 내 시를 결정한 황금기였다”면서도 “자연이 그저 아름답지만은 않은 ‘서러운 풍경’이었고, 나의 감각과 감수성은 그리움으로 요약됐다”고 말했다. 고졸 이후 때밀이·구두닦이·공장일 등 ‘밑바닥’ 생활을 두루 경험했으며 군 제대 후 25살 때 대학에 갔다.

시집에는 그런 이력이 바닷물의 소금처럼 녹아있다. 농경문화적 상상력과 곡진한 가락으로 읊은 ‘대지=할머니=잃어버린 고향’ 이야기, 근대도시의 갯물과 바닷물처럼 짜디짠 일상과 생활, 영산강 대신 바다에서 발견한 새로운 모성적 세계가 차례로 펼쳐진다. 손시인은 “결국 흙에서 물로 가는 형국이므로 앞으로 내 시는 ‘진흙’이 될 것 같다”고 예고했다.

손시인은 농경문화적 상상력과 동양적 사유가 어우러진 서정성 짙은 시편들에서 빼어난 성취를 일구고 있다. 가족과 새와 먼지가 다 그와 혈연관계에 있다. 욕망이 흘러넘치는 세속도시의 진흙 속에서도 연꽃을 피워낼지 주목된다. 그는 현재 경기 일산에서, “구멍난 단풍나무 팬티”를 입고 사는 아내와 단둘이 살고 있다.

“세상에 천리향이 있다는 것은/세상 모든 곳에 천리나 먼/거리가 있다는 거지/한 지붕 한 이불을 덮고 사는/아내와 나 사이에도/천리는 있어,/(중략)/등을 맞댄 천리 너머/(후략).”(‘아내의 이름은 천리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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