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술의 기원은 황제내경으로 시작되고, 한의학의 시조는 춘추시대의 신의 편작으로 불린다. 더불어 화타는 중국에서 의성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들이 한의학의 시조와 의성으로 추앙 받는 것은 단순하게 명의이기 때문이 아니라 치병제중, 병을 다스리고 중생을 구원하려고 한 불세출의 의원들이기 때문이다. 편작과 화타에 대해서는 구전이나 전설로 많이 회자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변변한 평전이나 일대기를 다룬 소설이 없는 실정이다.-.쪽
편작의 성명은 진완(秦緩), 자는 진월인(秦越人)으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의원이다. 여관에서 사환으로 있을 때 장상군(長桑君)이라는 신비한 노인에게 금방(禁方)의 구전과 의서를 전수 받아 전설적인 명의가 되어 편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후 천하를 편력하면서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병자들을 치료하여 신의라는 명성을 듣게 되었다. 편작 진완은 죽은 것으로 알려진 괵나라 태자를 살리는가하면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가 되는 제환공의 죽음을 예언하여 화타와 함께 동양 의술의 쌍벽을 이루는 대가가 되었다. 오늘날의 진맥법은 편작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할 정도로 진맥에 능통했고 불치병을 집대성한 난경을 집필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진나라 시의 이혜의 질투로 그가 보낸 자객에 의해 죽지만 그가 남긴 의서는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져 동양의 학의 기초가 되었다. 편작의 사적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이르고 있으며, 오늘날 전해지는 전기(傳記)는 여러 명의의 일화가 편작에게 흡수된 것이 태반이다. 당시의 중국에서는 의료 체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라 병이 생기면 무당의 주술로 치료하려고 했는데, 편작의 시대에 이르러 비로소 의(醫)가 무당의 주술에서 분리되어 확립된다. 편작은 의료 체계를 확립하여 진보적인 지식인이 되었고 이에 반발하는 보수적인 의원 그룹의 일원인 이혜가 편작을 암살한 것으로 보여진다.-.쪽
1) 편작은 중국 고대로부터 명의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2) 편작의 이름은 사기열전(史記列傳)에는 진월인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동주열국지(東周列國志)에는 진월인은 자고 이름은 완으로 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는 동주열국지의 기록을 취하여 이름을 진완, 자를 진월인으로 사용한다. 3) 진완이 편작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진(晉)나라에서 조간자를 치료하고 나서부터의 일이다. -.쪽
1) 버드나무껍질이 해열에 특효가 있다는 것은 서양에서 히포크라테스가 최초로 발견했고, 영국의 사제 스톤도 민간에서 전해 오는 이 사실을 영국 왕립학회에 발표했다. 이탈리아의 화학자 피리아는 버드나무껍질에서 살리신을 분리하는데 성공했고 독일의 바이엘사는 이를 개발하여 세계적인 해열제 아스피린을 탄생시킨다-.쪽
1) 굿은 편작 진완에 의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진완이 가난한 농부의 소를 잡아 굿을 하게 한 것은 심리요법으로 평가된다.-.쪽
이혜가 진목공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의 목소리가 표나게 떨리고 있었다. "하늘이 보고 땅이 보고 여러 대부들이 보았다. 편작 진완은 공호와 제영의 심장을 바꾸는 수술에 성공했다. 나는 그를 신의(神醫)라고 부를 것이다. 그에게 황금 백일(百鎰)을 하사하라!" 진목공이 감탄한 표정으로 말하고 내궁으로 돌아갔다. 진나라의 대부들은 일제히 공호와 제영에게 다가와 살피며 탄성을 내뱉었다. 많은 의원들도 공호와 제영의 맥을 잡아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완은 제자들을 시켜 공호와 제영에게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시키고 안정을 취하게 했다. 공호와 제영은 사흘 동안이나 의식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진완은 사흘 동안 내내 공호와 제영의 옆에서 멎으려는 맥을 되살리고 양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공호와 제영의 명이 경각에 달린 일은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마다 진완이 침으로 되살리고는 했다. 사흘이 지나자 공호와 제영은 의식이 돌아오고 이레가 지나자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고 두 달이 지나자 간신히 걸을 수 있었다. 세 달이 지났을 때는 병이 완전히 나은 것 같았다. '이 사람들은 1년을 살지 못할 것이다.' 진완은 공호와 제영의 맥을 잡아보고 비감했다. 심장을 바꾸는 일은 아직 그의 의술로 이룰 수 없었다. 이혜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인간이 결코 이룰 수 없는 경지, 심장을 바꾸는 것으로 진완의 명성에 흠집을 내려던 이혜의 계책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무서운 놈이다. 저놈은 이미 득도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말인가?' 이혜는 진완의 신기에 가까운 의술에 몸서리를 쳤다. -.쪽
1) 편작 진완이 공호와 제영의 심장 이식 수술을 했다는 것은 열자(列子)의 기록에 있다. 2) 중국 의학의 맥법은 황제 내경에도 기록되어 있으나 편작 진완에 의해 학문적 체계를 갖추었다는 것이 사마천의 평가다. 편작은 맥법 이외에도 중국 의학을 체계화시킨 의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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