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쿠사누스, J.뵈메를 거쳐 독일 낭만주의 사상의 조류와 합류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신플라톤파(派)에 뒤이은 신비주의 조류는 중세에도 단절되지 않았는데, 특히 독일에서는 도미니크수도회를 중심으로 12세기 무렵부터 신과의 신비적 합일(合一)을 목표하는 신앙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지도자 속에서 위대한 설교자 에크하르트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는 영혼의 깊숙한 곳에 있는 성역(聖域), 즉 ‘불꽃’에서 신과 하나가 되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의 신비사상은 타울러와 조이제 등에게 전수되었다.
14세기 말에는 독일 신비주의의 영향으로 네덜란드의 데밴터에서 J.로이스부르크. G.그로테 등에 의하여 수도원제도에 따르지 않는 공동생활 형제회가 설립되었다. 이 단체에 속한 토마스 아 켐피스의 작품으로 알려진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독일 신비주의가 낳은 대표적 작품이다. 이 단체는 또 ‘표현불능의 신’에 접근하려면 ‘무지의 지(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가르친 쿠사누스를 배출하였다. 종교개혁 이후에도 내면적 신앙을 중시하는 독일 신비주의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세속화에 불만을 느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연면히 이어져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