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운명이란 진정,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일까. 외모, 키, 성격 등 노력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의 범주에 ‘초능력’이라는 유전자가 포함된다면...
일본의 인기 추리소설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용은 잠들다>(노블하우스. 2006)에 등장하는 소년 신지는 “나도 내가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건 아니에요. 나도 어쩔 수가 없어요. 보이고 들리니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건 이해해줄 수 있죠?” 라며 울부짖는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는 초능력, 이른바 ‘스캔’ 능력을 가진 신지는 주인공 고사카에게 가슴에 묻어둔 오랜 고통을 호소한다.
작가는 폭풍우가 몰아치던 어느 밤 길 위에서 만난 두 남자 잡지사 기자 고사카와 소년 신지의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스티븐 킹의 <캐리>(황금가지. 2003)를 인용한 오프닝은 매우 매력적이다. 1992년 작으로 10년도 더 된 작품이지만 스산한 공포감과 긴장감이 할리우드 영화의 식상함을 뛰어넘는다.
추리소설인 만큼 반전도 여러 번 등장한다. 독자의 관심을 한껏 끌어 모은 뒤 생각지 못한 의외의 장소에서 해답을 찾아나가는 탄탄한 구성방식이 재미를 더한다.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정말 자기 자신 안에 용을 한 마리 키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요. 상상도 할 수 없는 능력을 갖춘 신비한 모습의 용을 말이죠. 그 용은 잠들어 있거나 깨어 있거나 함부로 움직이고 있거나 병들어 있거나 하죠”
소설은 자신도 어찌 할 수 없는 능력을 갖고 태어난 이들이 가진 소외와 슬픔을 어루만진다. 사이킥(Psychic, 초능력자)라 불리는 이들의 기이한 능력을 SF로 풀어내기 보다는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에 묻혀있던 오래된 사연을 하나둘 끄집어낸다. 초능력자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타인의 진정한 관심과 소통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일본의 월간지 ‘다빈치’ 조사결과 줄곧 ‘선호하는 여성작가 1위’에 뽑힌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용은 잠들다>는 1992년 일본 추리작가 협회 상을 수상했으며 1994년에는 94분짜리 텔레비전 영화로 만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