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지영이 길 잃은 새끼 고양이 티티를 만나면서 스무 살 그녀들의 삶에 고양이 한 마리가 끼어들게 된다. 혼자 있길 좋아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신비로운 동물 고양이. 고양이를 닮은 스무 살 그녀들.”(홍성진의 ‘고양이를 부탁해’ 영화해설 중)

스무 살은 고양이 눈동자처럼 변화무쌍하다. 붉은색으로 출렁이다 오렌지색으로 따뜻해지기도 하고 갈색으로 쓸쓸해지더니 녹색으로 부풀어 오르면서 어느새 파란색으로 고요해진다. <알쏭달쏭한 소녀백과사전>(창비.2005)을 뒤적거리며 이기인 시인에게 스무 살의 아리송한 비망록을 들어보자.

“나를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사원모집’ 현수막은 공장 후문에도 걸려 있다//....../작업복을 입은 소녀는 비둘기들의 한쪽 날개를 붙잡고 아슬아슬 지붕 위로 날아간다//......//멀리 도망칠 줄도 모르면서 멀리 도망칠 것처럼 보였던 비둘기, 궁둥이를 턴다//공장 후문에 걸어놓은 현수막은 멀리 날아가고 싶어, 펄럭펄럭 철사줄을 끊고 있다”(‘비둘기’)

누가 이 비둘기를 부탁해달라며 이곳에 맡겼던가. 잿빛 작업복을 입은 비둘기 소녀들이 현수막처럼 출렁거린다.

“목화송이처럼 눈은 내리고/ㅎ방직공장의 어린 소녀들은 우르르/몰려나와 따뜻한 분식집으로 걸어가는 동안......제 가슴에 실밥/묻은 줄 모르고/....../오늘도 나무젓가락을 쪼개어 소년에 대한/소녀의 사랑을 점치고 싶어하네/뜨거운 국물에 나무젓가락이 둥둥/떠서, 흘러가고 소녀의......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고 분식집 뻐꾸기가/울었네”(‘ㅎ방직공장의 소녀들’)

공장 건너 소년원에는 소녀를 그리는 소년들이 나팔꽃 되어 목을 길게 빼고 있다. 뻐꾸기 울음소리 몇 번에 흘러갈 스무 살들이 여기가 어디쯤인지 묻는다.

“오래된 소년원의 철조망으로 나팔꽃이 기어올라가는 것을 봤다/......//자꾸 올라가기만 하는 나팔꽃이 물 뜨러 가는 내 마음 출렁이게 한 후,/흰 물통의 뚜껑이 너무 커서 나도 모르게/샘 같은 세월이 흘러나온 것을 알았다/....../소년은 이렇게 화창한 날 어디 가냐고, 물었다/나무줄기를 타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들이/다 소풍을 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물의 뚜껑’)

쇼핑백을 들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 호박꽃 속에 갇힌 벌처럼 발버둥치는 작업복이 못내 야속하다. 그래, 개미가 나팔꽃 봉오리에 오르는 것은 소풍이 아니야.

“가슴이 찢어진/백화점 쇼핑백//두겹 세겹, 스카치테이프를 붙이고 외출하는 날//......//자취방은 악어처럼 조용하고/쇼핑백은 방을 삼킬 수도 있었네//선물이 빠져나온 쇼핑백/작업복 들어가서 바스락 바스락//아프지 않았으면 하는데/가슴이 아프네”(‘쇼핑백’)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으로 가득한 백화점의 미로에 갇혀 꽃은 이내 시들 것이다. 햇빛 한 점 들어올 창 하나 없는 곳에서 소녀들의 진액을 빨고 있는 나비들.

“나비는 발로 맛을 본다/꽃 같다는 소녀들에게선 구린내가 난다/화장을 일찍 배운다는 것이 불길하다//소녀는 올록볼록 향수병이 좋아져서/삼삼오오 향수병을 고르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나비가 뒤통수에 앉아 있다”(‘나비’)

양지바른 곳에 누운 고양이처럼 그르렁거리던 봄날은 속절없다.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시절들이 녹슨 자전거처럼 아무렇게나 담벼락에 기대어 울 때가 많다.

“이기적으로 이기적으로 뒤섞여버리고 마는 삶/뒤섞여버린 연장통을 하나 옮겼네//사랑한다고 고백하였다가,/퇴짜 맞은 구부러진 못 두 개가 그 속에 있네//......//구부러진 못을 보며 구부러진 생(生)을 보며 구부러진/허리를 모처럼 펴보고 싶네//허나 사랑한다는 말을 아꼈던 가슴은/아직 펴지지 않네”(‘못’)

꿈 많았던 스무 살 소녀들의 굴곡을 펴주는 시인이 방직공장 담벼락에 기대어 웅크리고 있다. 그 많던 소녀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정말 알쏭달쏭하다. 고양이를 닮은 시인과 스무 살 소녀들을 부탁해~, 그리고 기억해줘~~.

(사진=영화`고양이를 부탁해`중) [북데일리 김연하 기자] fargo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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