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스폰서섹션]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이끈 선구자 에라스무스의 대표 저작

『바보 예찬』은 ‘16세기의 볼테르’로 평가받는 휴머니즘의 선구자, 네덜란드 출신 신학자 에라스무스를 당시 유럽의 스타 작가로 만든 문제작이며 고전의 오래된 스테디셀러이다.

이번에 출간된 『바보 예찬』은 라틴어 원전에 가장 충실하다는 평을 얻고 있는 피에르 드 놀라크(Pierre de Nolhac) 번역주석 프랑스어 본(1964년, 플라마리옹 간행)을 번역대본으로 삼았다. 낡고 고리타분한 어투에 갇혀 서가에서 먼지만 쌓여가는 고전이 아닌, 실제로 읽히는 고전, 젊은 세대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고전을 선보이겠다는 의지를 갖고 번역과 편집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이 책에 담긴 주제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를 짚어보기 위해 출판평론가 이권우가 마련한 에라스무스와 ‘우공이산’의 주인공 우공의 가상대담을 책머리에 실었다.

지식인들에게 이정표가 된 ‘바보’의 역설

『바보 예찬』은 출간 당시의 머리말인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가 친애하는 토머스 모어에게 보내는 안부 편지」에서도 밝히고 있듯, 『유토피아』의 저자로 유명한 영국의 사상가이자 그의 절친한 친구이며 학문적 동반자였던 토머스 모어에게 헌정한 책이다. 에라스무스는 1509년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여행하던 중 이 책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런던에 있는 모어의 집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1511년 프랑스 파리에서 최초 출간되었을 때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판매 부수였던 1,800부가 순식간에 팔려나갔으며, 동시에 금서 목록에도 올랐다. 이후 수백 판이 거듭하여 인쇄되고 유럽 여러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등 당대 유럽의 지식계와 독서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종교, 교회, 성직자, 권력의 위선 등 중세의 모순에 들이댄 거침없는 독설이 일대 선풍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책의 파장은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측면에만 그치지 않았다. 에라스무스가 책 속에서 보여준 빼어난 독설과 예리한 풍자정신이 프랑스의 라블레, 스페인의 세르반테스, 영국의 셰익스피어 등 문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쳐 이후 유럽 문학의 주요한 흐름의 방향까지 제시했던 것이다.

미셸 푸코를 사로잡은 입담과 기지!

또한 유럽 지성사에 남긴 영향력은 중세에 그치지 않는다. 유럽 소장 철학자들은 오늘날도 이 책의 문장을 자주 인용하고 있다. 그 대표자가 푸코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전개하는 데에 이 책을 활용했으며 이후 많은 유럽 연구자, 에세이스트들이 알레고리, 아이러니, 패러독스의 새로운 원천으로 이 책을 빌리게 된다.

정말 무서운 것은 바보가 벌이는 광대 놀음

총 68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화자 ‘바보’가 등장하여 세상에 불필요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열거하고 고대 그리스?로마 문학과 철학 그리고 성서를 인용해가면서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형식으로 씌어 있다. 에라스무스는 이런 역설적 방식을 사용하여 당시 철학자, 신학자들의 공허한 논의와 교회, 고위 권력자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비웃는다.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를 지배하던 다양한 의미의 권력자들에게 통렬한 풍자의 칼날을 들이댄 셈인데, 놀라운 것은 그 표현방식 하나하나가 몇 백 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참신하면서도 대담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다음 문장,

“광대들은 군주에게 진실을 받아들이게 하고, 군주에게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그들을 즐겁게 하는 그런 놀라운 일을 해치운다. 진실이란 그 안에 감정을 상하게 할 것만 없다면 분명 남을 즐겁게 해주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데 신들은 오직 이런 광대들에게만 진실을 맡겨놓는다.” ―본문에서

“왕들은 대개 허세를 부리느라 엄격한 현자들을 거느리곤 하지만, 실은 현자보다 어릿광대를 훨씬 더 높게 평가한다. 현자들이 군주에게 슬픔만 안겨주는 것을 보면, 그들이 어릿광대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놀랄 이유가 전혀 없다. 지식으로 잔뜩 무장한 현자들은 갖가지 진리로 왕의 여린 귀에 상처를 입힐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어릿광대로 말하자면 왕이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구하고 싶어하는 것, 즉 오락, 미소, 폭소, 쾌락을 마련해준다. 또한 어릿광대에게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한 가지 장점이 있다. 그것은 오직 그들만이 솔직하고 진실하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이는 바로 「햄릿」에서 미친 다음의 햄릿이 삼촌과 어머니를 정죄한 장면(선왕 시해를 재현한 극중극)의 원형적 상상력이다. 또한 2006년 한국 영화 「왕의 남자」의 원형적 상상력이기도 하다. 바보들의 광대짓에 왕(the owner of the supreme power)은 어쩔 줄을 모른다. 광대의 외줄타기 앞에 권력은 허둥지둥하고 그 모습이 양심만은 속일 수 없는 내적 모순의 극한을 오롯이 드러내는 것이다. 역설과 모순을 재치에 실어 진실을 폭로하고, 어느새 이를 권력과 권위에 꽂는 비수로 만드는 순발력 속에 『바보 예찬』의 묘미가 살아 있다.

인터넷 댓글을 보는 듯한 통쾌하고 속 시원한 배설

에라스무스와 동시대를 살았던 ‘르네상스인’들은 권력과 권위의 압력 속에 살았지만 그야말로 ‘자유인’이었다. 그들은 직전의 과거를 ‘중세’라는 용어로 규정했으며, 고대문화에서 새로운 정신과 비전을 발견하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 열광했다. 에라스무스는 바로 이 열광한 자유인 무리의 선두에 서서 그들의 갈증을 속 시원히 풀어주었다. 문장의 전체적 어조가 오늘날 한국의 인터넷 포털 사이트 정치란, 종교란 속에서 보통 사람들이 열이 오를 대로 올라 뱉어내는 독설, 배설의 분위기를 띠고 있다는 점이 특히 눈에 띤다. 이런 매력 덕분에 교회와 정치권의 권력자들에게 대담하고 속 시원한 풍자와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 에라스무스의 영향력이 유럽 전체를 휩쓸었던 것이 아닐까. 수백 년 전의 저술이지만 그 내용은 오늘날 우리 형편에도 들어맞는다. 그 재치와 유머는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읽어도 여전히 신선하며, 제도와 관습의 이면을 꿰뚫는 비판정신은 유쾌하고도 의미심장하다.

풍자를 통해 추구한 인간과 자유에 대한 사랑

“사람은 누구나 갖가지 삶의 고달픔에서 자유롭게 놓여나 쉴 수 있는 법인데, 유독 정신노동자들에게만 이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특히 시시한 이야기가 진지한 이야기와 이어지고, 또 통찰력 있는 한 독자가 그 속에서 심각하고 장중한 많은 논의들에서보다 더 큰 이득을 볼 수만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네. (중략) 하찮은 일을 심각하게 다루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이 없고, 하찮은 것들을 가지고 진지한 일에 도움이 되게 하는 것보다 더 재치 있는 일이 없지. 나를 판단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몫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존심이 내 판단력을 흐려놓지만 않았다면 그리 어리석지만은 않게 우신을 예찬했다고 생각하네. 내가 남을 물어뜯는다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걸세. 작가는 미치광이처럼 굴지만 않는다면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삶의 조건을 자유롭게 조롱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머리말에서 에라스무스는 풍자와 조롱이라는 자신의 표현방식을 이렇게 변호했다. 당대 권력자들을 향해 유례없는 비판과 풍자를 퍼붓는 이 책을 쓰면서 그 역시 세인들의 비난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독설과 풍자로 가득한 이 책을 통해서 에라스무스가 말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가톨릭 교회로부터는 루터와 한동아리라는 의심을 받고 개혁을 부르짖던 신학자들로부터는 기회주의자 취급을 받으면서도, 결국 신구 교회 어느 쪽에도 동조하지 않아 세인의 의혹을 사기도 했던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자유와 선함을 믿은 자유주의자였다. 그는 심각한 도그마와 논쟁에서 구원을 찾지 않았다. 그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세상에 만연한 불만을 토로하며 한바탕 웃으며 자유를 느낄 수 있는 방법으로 풍자라는 방법을 택했다. 그것은 인간과 자유에 대한 극진한 사랑과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우신’이냐 ‘바보’냐: 제목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이 책의 제목을 ‘우신 예찬’이라고 했다. 이때 ‘우신’이란 ‘광狂―우愚―신神’이라고 해야 뜻이 더 확실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어색한 한자의 중첩을 넘어 그 뜻을 포괄할 수 있는 어휘가 바로 오늘날 한국어 ‘바보’이다. 이에 전체를 대표하는 표제를 ‘바보 예찬’으로 삼았으며 문장의 호흡 안에서 ‘우愚’ 및 ‘신神’이 나설 때에 ‘우신’을 살렸다. 그렇다면 ‘광狂’은? 상대를 배안시하며 멋대로 치닫는 수사 자체가 바로 ‘바보’ 곧 ‘광’의 모습이다. 유럽 문학의 인물형상에도 참고할 예가 있다. 바로 푸슈킨 드라마 「보리스 고두노프」(나중에 무소르그스키가 오페라화)의 ‘성스러운 백치’이다.

■ 지은이 : 에라스무스

1469년(추정)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났다. 성인이 되어서는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정규 수도사가 되었으며 서른 무렵에 파리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무려 3,000 항목을 수록한 당대의 라틴어 학습서인 『격언집』의 저자로서 유럽에 명성을 날렸으며 이러한 방대한 지식은 『바보 예찬』에서 원용의 수사학으로 되살아난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 본격화되자 에라스무스는 루터의 과격한 실천 방향에 동의하지 않고 그와 행동을 같이하기를 거부했다. 중년 이후 에라스무스는 가톨릭 교회 내의 광신자들과 그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분노하는 신교측 광신도들 사이에 끼어 곤경에 처했다.?1536년 바젤에서 죽었다.

■ 옮긴이 : 문경자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루소의 자서전 글쓰기와 진실의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은 책으로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공저), 옮긴 책으로 『성의 역사 2』(공역)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 『부르디외 사회학 입문』 『내정간섭』 『카라바조』 들이 있다.

■ 정가 :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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