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조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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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집을 차지한 이방인> 표지 이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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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책씨 |
역시 '5·31 지방선거'는
블랙홀이다. 우리 사회의 자잘한 이슈는 물론이거니와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던 평택 대추리마저도 흔적 없이 빨아들였다. 선거가 끝나도 상황에는 변화가 없을 듯싶다. 영국의 한 언론이 '한국에서는 종교 같다'고 했다던 '월드컵 축구'라는 또 하나의 블랙홀이 바통을 이어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블랙홀의 위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대추리 문제가 갖는 본질적 의미까지 다 없애버리지는 못한다. 바로 '잃어버림'이다. '뿌리 뽑힘'과 '빼앗김'이라는 뉘앙스가 중층적으로 얹혀있는 이 '잃어버림'의 의미는 무엇일까?
제목을 '내 땅을 차지한 미군'으로 패러디해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을 <내 집을 차지한 이방인>(라자 샤하다 지음, 유혜경 옮김, 책씨 펴냄)에서 대추리를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대추리 철조망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고립을 위해 행했고, 행하고 있는 콘크리트 분리장벽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대추리 주민들과 너무 닮은 팔레스타인 이야기대추리 주민들과 너무도 닮은꼴인, 1300여 년간 살던 터전에서 강제로 쫓겨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의 지은이 라자 샤하다는 얄궂게도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국가를 건립하던 해인 1948년에 태어났다.
우리가 일본에서 해방되던 해 태어난 사람을 '해방둥이'라고 부르듯 그를 '건국둥이'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는 이스라엘의 입장이고,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망국둥이'가 되는 이 역설. 일본에게 '합방'이 우리에게 '식민'이 되는 역설과 무엇이 다르랴.
지은이 스스로 '정치적인 책'이 아니라고 강조하지만 당연히(?) 정치적인 책이 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역설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자신의 삶을 통해 조명한다.
온 가족이 고향인 텔아비브와 인접한 아랍의 구도시 야파에서 도망치듯 나와 라말다에 살면서 지은이는 점령당한 조국의 과거는 물론 자신의 과거도 발굴한다.
지은이 라자 샤하다는 1967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자고 주창한 변호사 아지즈 샤하다의 아들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현실적 실용주의 노선에 동조하지 않으며 이스라엘과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비전 없는 지도자들에게 실망하다그는 팔레스타인 인권감시센터인 '알 하크'를 설립한다. 그가 이 단체를 만든 것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저항운동에 가담하다 구속된 '칼리드 아미라 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옹호주의자가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아주 늦은 밤 잠자다 끌려온 칼리드에게 이틀 만에 벽과 바닥에 온통 똥칠을 한 화장실에서 한 숟가락도 안 되는 밥을 먹이고, 찬물로 샤워를 시켜 젖은 상태에서 선풍기를 틀어 추위에 떨도록 만들며 자백을 강요했던 사실을 포착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활발한 활동에 힘입어 '알 하크'가 국제적 명성을 얻어갈수록 아버지와의 관계는 더 벌어지고, 아들의 활동으로 인해 변호사 사무실을 수색까지 당하면서도 아버지는 아들을 설득하려고 지독히 열을 올린다.
"전쟁이나 너의 인권운동이 이스라엘과 우리의 갈등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오직 정치적인 주도권만이 해결책이야. 그것도 지금 당장. 남은 땅이 다 없어지기 전에."그러나 아버지는 끔찍하게 살해됨으로써 끝내 정치적으로 변한 아들을 보지 못하게 된다.
아들은 1993년
오슬로에서 이스라엘과의 상호인정 협정이 조인되기까지 팔레스타인 대표단의 법률고문으로 상당한 역할을 하지만 결국 그는 정치는 물론이거니와 인권활동에서도 완전히 손을 뗐다.
우리 정부도 '잃어버린 땅' 만들려는 건 아닌지이스라엘 정착촌 건설로 기계에 짓밟힌 팔레스타인 땅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착이나 만회하려는 비전이 전혀 없는 정치지도자들을 바라보면서 너무도 실망했고, 상실감이 컸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에 진행되는 협상을 보면 요르단의 나바테안 골짜기를 여행하면 꼭 만나게 되는 비스듬히 누워있는 직각의 분홍색 바위에 새겨진 문이 생각난다고 했다. 처마와 기둥머리 그리고 장식띠를 두른 벽기둥에 매달린 문. 그 문을 열면 어딘가로 들어갈 것만 같단다. 그러나 그건 가능하지 않다. 그림이기 때문이다. 단지 겉모양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은이는 이런 진술로 이 책의 결론을 대신한다.
"나는 이스라엘 협상자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해방만을 제공하면서, 사실은 다른 형태로 점령을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혹시 우리 정부가 대추리 주민들에게 겉으로만 이해한다고 하고 다른 형태로 '잃어버린 땅'을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지은이는 바란다. 올리브 과수원에서 어제와 같이 오늘 올리브를 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며, 내일도 그 올리브를 딸 수 있기를. 대추리 주민들이 어제처럼 오늘 농사짓고, 내일도 농사지을 수 있길 바라는 것처럼.
/조성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