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조도연] 남쪽의 초원 순난앵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마리트 턴크비스 그림

김상열 옮김, 마루벌, 48쪽, 1만3000원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살아야죠. 빨래를 하고 화장실 청소를 하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세요. 가슴이 아프죠? '남쪽의 초원 순난앵'의 마티아스와 안나는 오갈 데 없는 고아 오누이였어요. 못된 농부의 집에 얹혀 살게 된 오누이는 추운 겨울 헛간에서 우유를 짜고 외양간을 청소합니다. 겨울철에만 열리는 학교에 가는 게 유일한 기쁨이었지만, 거기서도 그들은 왕따였어요. 어느 날 빨간 새(파랑새가 아니예요)가 안내해 준 환상의 공간 순난앵 마을에서 오누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답니다.

두 사람은 순난앵으로 통하는 문이 한 번 닫으면 다시 열리지 않는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그 문을 힘껏 닫아버려요. 이제 두 사람은 순난앵에서 영원히 머물 수 있게 된 거죠. 그런데 빙긋 웃으며 문을 닫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상하게도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지는 이유는 뭘까요. 얼어죽는 순간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던 성냥팔이 소녀가 떠오르는 까닭은 뭘까요. 순난앵 같은 곳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인기 TV 시리즈 '말괄량이 삐삐'의 원작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쓴 린드그렌. 그가 창조한 삐삐는 지극히 독립적이고 엉뚱한 시각으로 어른들의 고정 관념을 조롱하죠. 마티아스와 안나의 웃음도 '해피 엔딩' 일색의 기존 동화들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조도연 기자 lumiere@joongang.co.kr ▶조도연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iamjo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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