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듯하다. 레마르크(1898∼1970)의 소설 ‘리스본의 밤’(1962)에서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남긴 깊은 궤적들 사이에 자칫 일반화되어 묻혀버리기 쉬운 개체들의 삶의 흔적들이 하룻밤 사이에 이뤄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서 되살아나고 있다.

소설의 줄거리는 1942년 어느 날 밤 리스본 항구의 어느 바에서 이뤄지는 두 낯선 남자의 대화가 중심이다. 소설의 화자는 부인과 나치의 학정을 피해 도피중이며, 미국행을 결심하고 이 곳 리스본 항까지 오게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여권도, 비자도, 배 삯을 치를 돈도 없다. 서서히 옭죄어 오는 죽음의 그림자와 대서양을 목전에 두고 퇴로가 차단된 한계상황에서 인간의 가치는 무의미하다. 대부분의 망명객들에게 리스본은 마지막 도피처였다.

“포르투갈 해안은 정의, 자유, 관용과 같은 말들이 고향이라든가 실존 보다 더 큰 의미를 지녔기에 도망해야만 했던 이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었다. 여기서 복된 땅 아메리카로 건너 갈수 없는 사람은 싸움에서 졌다. 거부당한 출입국 비자와 요원한 체류 및 노동허가서, 불법입국자 수용소와 하염없는 관료주의, 전쟁과 공포 그리고 궁핍함의 결과 개개인의 운명에 대해 너무나 일반화 되어 버린 사회적 무관심, 그리고 개개인의 고독이 뒤엉킨 삶의 격랑에서 피를 흘려야만 했다. 이시기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단지 유효한 여권만이 전부였다.”(제1부)

리스본 항의 제방에서 소설의 화자에게 어떤 낯선 이가 말을 걸고 하룻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대가로 두 장의 미국행 배표와 필요한 증명서를 주겠다고 한다. 낯선 남자는 주인공에게 밤새워 자신이 살아온 역정을 이야기한다. 이미 사망한 비엔나 사람 요셉 슈바르츠의 위조 여권을 지니고 있으며, 나치가 집권한 1933년 고향을 도망쳐 망명길에 올랐다고 한다. 위조 여권 덕분에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9년 이 남자는 죽음을 무릅쓰고 고향에 잠입하고 우여곡절 끝에 사랑하는 여인 헬렌을 나치 독일에서 구해 나오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는 암에 걸려 이미 사망했고, 따라서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여권과 배표를 주겠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밤새도록 이 낯선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는 슈바르츠라는 이름의 여권과 배표를 받아 쥐고 미국행을 감행한다. 이후 낯선 타향에서 종전을 경험한 주인공은 다시금 유럽으로 되돌아온다.

“전쟁이 끝나고 유럽으로 돌아왔다. 두 사람의 슈바르츠를 거쳐서 물려받았던 여권은 러시아에서 망명 온 사람에게 주었다. 새로운 망명자들의 물결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슈바르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한번은 그의 본명조차 모르면서 오스나브뤼크까지 찾아가 그에 대한 수소문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이 지나가는 것 같아 ?v아가 보았더니, 그 사람은 우체국 서기였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고, 얀센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제18부)

전쟁이 끝나자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주인공은 타인의 여권으로 밝혀진 전혀 낯선 이의 정체성 뒤에 감춰진 본연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러나 아마도 계속적으로 반복되는 박해자들과 망명객들 사이의 정치적 역학관계는 항시 새로이 또 다른 슈바르츠를 대물림 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저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망명중인 이름 없는 주인공이 우연히 타인의 여권을 얻어서 목숨을 연명하게 된다는 이야기의 설정은 현대사회가 지닌 개인의 정체성부재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한낱 종이쪽지에 불과하고 손쉽게 위조되는 증명서가 인간의 실존을 규정하는 시뮬라시옹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비판과 다름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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