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새벽, 가슴팍을 헤치며 달려드는 바람에 옷깃을 단단히 여며잡고 집을 나섭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누렇게 익은 벼이삭이 황금 물결로 출렁이고, 수확하는 이들의 분주한 몸짓과 탈탈거리는 콤바인 소리로 시끌벅적했던 들판은 이제 밤새 내린 서리로 허옇게 뒤덮여 있을 뿐 조용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겨울 들판을 보고 잠들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보고 믿는 것은 자연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을 향해 가만히 귀 기울이면 저 땅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왕성한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듯 비어 있지만, 잠들어 있는 듯 미동조차 없지만, 사실 겨울 들판은 한여름 뙤약볕이 풀어놓은 싱싱한 푸르름보다 더욱 왕성한 생명력으로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땅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의 미생물들이 먹고 자고 싸고 뒹굴며 끊임없이 흙을 갈아엎으며, 새로운 씨앗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겨울은 한철 농사가 끝나는 때이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출발인 셈입니다.-.쪽
좋은 농부는 자연의 소리에 귀기울이고, 겸허하게 자연을 지키고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농부는 이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숨줄인 '쌀'을 생산하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연을 섬기고, 쌀을 소중하게 여기는 농심(農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반만년 역사를 이어오면서 자연과 더불어 농사를 짓고, 자연의 정기를 받아서 깨끗하게 생산된 쌀을 먹으며, 그 쌀이 심어준 바른 정신과 뚝심으로 빛나는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쪽
할머니들이 가꾸는 작은 텃밭을 보면 참 아기자기하다. 손바닥만한 밭에서 콩이며 상추며 파, 깨, 고추, 부추 등 여러가지 작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이좋게 몸을 비비며 자라는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다. 도시에서도 옥상이나 집 뜰 한 켠에 텃밭을 만들어놓는 집은 봄부터 가을까지 농약 공해에 찌들지 않은 건강한 먹을 거리들을 식탁 위에 풍성하게 올릴 수 있다. 나는 이 텃밭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이곳에서는 경제적인 작물 재배의 전형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작은 밭에서 여러가지 작물을 한꺼번에 재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서 다작(多作)의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서울에 사는 외할머니는 옥상이 텃밭이 되어버렸답니다. 할머니의 텃밭을 구경하면 참 좋더라구요. 농약을 뿌리지 않으니 무공해이고.. 한번은 할머니가 거름주는것을 보고 잠시동안 총각무를 못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ㅎㅎ-.쪽
어떤 사람들은 간혹 나에게 이렇게 물어온다. "왜 당신은 쉽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농사를 짓지 않고 굳이 비웃음을 감수하면서도 자연농법을 고집합니까?" 내가 하는 대답은 항상 마찬가지다. "제일 큰 이유는 먼저 내가 살기 위해서고, 내 가족이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더. 지금 이대로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방치한다면 몇 년 안에 나도, 내 가족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릴 겁니더. 그걸 조금이나마 막아보자는 거지예. 농사짓는 곡식 하나하나가 모두 내 입으로 들어갈 거고, 내 자식들 먹일 거라는 생각을 가진다믄 함부로 독약 같은 농약쳐서 키우겠습니꺼? " 농사를 짓다 보면 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농약을 치는 농부들도 그게 땅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벼멸구니, 벼물바구미니 하는 해충들을 없애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약을 치게 되는 것이다. 혹은 정부에서 '잔류되지 않는 농약이니 상관없다'는 말로 약칠 것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도 하니, 농정을 지도하는 당국에서 하는 말을 믿고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쪽
시골길을 걸으면 애써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온몸으로 젖어들 듯 갖가지 정겨운 소리가 들려온다. 여름 매미소리, 풀벌레 울음소리, 살랑거리며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새들의 날갯짓 소리, 어디 그뿐인가. 가을 과일이 툭툭 실하게 영그는 소리, 이슬이 풀잎에 내려 살짝 엉겨드는 나지막한 소리, 밤길에 달빛을 밟고 지나가는 발걸음 소리들……. 매연 공해, 소음 공해에 찌든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들이다. 공기가 맑고 바람이 향기로운 자연 속에서 더욱 명료하게 들리는 자연의 음악들이다. 이밖에도 우리 어릴 적 시골에는 얼마나 더 많은 소리들이 있었던가.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런 소리들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이 글을 읽는데 무척 가슴이 설레네요. 어릴적 과수원에 자라서인지 몰라도 저 역시 도시보다는 시골이 더 마음이 편하고 좋은데, 그 이유를 알것같습니다.-.쪽
자연 건강법에서는 먹지 않는 즐거움으로 7불식(不食)을 얘기한다.
첫째, 먹고 싶지 않을 때 먹지 않는다. 둘째, 지쳤을 때 먹지 않는다. 셋째, 다쳤을 때 먹지 않는다. 넷째, 병났을 때 먹지 않는다. 다섯째, 참을 수 없이 먹고 싶을 때 먹지 않는다. 여섯째, 없을 때 먹지 않는다. 마지막 일곱째, 있어도 먹지 않는다. 먹고 싶지 않을 때, 지쳤을 때, 다쳤을 때, 병났을 때 먹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위의 소화력이 약화되어 있어서 병중에 음식을 먹는 것은 생명 에너지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결과가 된다. 자가 치유 작용은 공복 상태에서 더 활발하게 되므로 신체가 치유를 위해서 스스로 절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아프거나 요양중에 있으면 오히려 더욱 많은 영양분을 섭취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영양이란 적절한 수준을 넘어서 많아지면 오히려 몸의 상태를 악화시킨다. -.쪽
식사는 노동과 같은 강도로 신경을 소모시킨다. 입에 들어가는 적은 양의 음식물조차 뇌에는 부담이 된다. 식사를 하지 않고 단식, 절식 등 안정을 취하면 신경계통의 장애가 사라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음식을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은 마음도 절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됨을 위한 수양도 음식의 양을 스스로 다스리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밥으로부터 온다. 그 밥은 우리 땅심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땅이 중요하고, 밥이 중요한 것이다. 바로 우리 자신이 땅 그리고 밥과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건강한 밥, 그 생명의 양식을 정성껏 받아 섬기는 것에 있고, 이는 우리의 땅과 자연을 건강하게 살려내는 것에 있다. 소식은 몸에 건강을 주고 영혼을 맑게 한다. 그러나 '적게 먹자'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먹을 거리를 소중하게 여기자'는 것이다. 밥 한 톨, 푸성귀 한 잎 속에 담겨 있는 자연 에너지의 무게를 절감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밥을 먹는다면 결코 함부로 환경을 해치는 일들은 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나 밥의 고마움을 깨닫는 일로부터 자연을 지키는 일의 소중함을 알아나가야 한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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