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는 커피 두잔을 타서 침대로 가지고 왔다. 한자는 남편이 누워 있는 쪽의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다. 좀 식겠지만, 그게 뭐 대수란 말인가. 그녀는 베개를 세워 몸을 기대고는 뜨거운 커피를 티스푼에 떠서 후후 불어 마시면서 다시 독서에 몰입했다. 남은 생애를 이렇게 침대에 누워 추리소설이나 읽으면서 유유자적할 수 있다면... <눈을 뜨시오, 당신은 죽었습니다.>
=> 정말 평생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적이 있어요. 지금은...^^;;-.쪽
불현듯 C는 마지막 페이지를 훔쳐보고 싶은 욕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평소 추리소설에 단련된 노련한 독자들은 이런 짓이야말로 범죄나 다름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어린애를 씻기려다 물에 빠트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행동이며, 석양 무렵이 다 되어서야 한낮의 태양 빛에 감탄하는 것처럼 헛된 일이며, 자기가 판 함정에 자기가 빠지는 무모한 짓이다. 중간에 미리 결말을 알아버린다는 것은 사건의 진실을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파헤치는 짜릿한 즐거움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동시에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의 의미를 모독하는 것이자, 그의 수고를 비웃고, 그의 노력을 헛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C는 추리소설의 충성스런 애호가이자 건전하고 성실한 독자를 자처하고 있었다. 그녀는 결말을 미리 엿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수록 솟아나는 충동을 자제하고 억누르려 애썼다. <눈을 뜨시오, 당신은 죽었습니다.>
=>저도 너무 궁금해서 책 뒷편을 살펴볼때도 있었어요. 물론 자세한 내용을 읽는것이 아니라 그냥 책 뒷편만 뒤적여보는것으로 만족해야했지만..^^ -.쪽
우리 둘을 가장 가깝게 묶어놓을 수 있었던것-우리 사랑스러운 딸의 갑작스렁 죽음-이 이제는 우리둘을 아주 멀게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몬테네그로 남자>-.쪽
그렇게 사라가 우리 곁을 떠나자 아내는 심하게 변했는데 아내의 변화 역시 나로서는 표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실제 나 이외에는 그 어느 누구도 아내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해서 그녀가 그렇게 삶을 계속 이어가는 용기에 대해 감탄할 정도였으니. 나는 우리 둘의 삶에서 가장 참담한 날에 그녀 삶의 일부마저 떠나가버렸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한동안 나는 죽은 딸아이 이야기를 비롯해 대화를 시도해보려고 수차례 노력했지만 헛수고였다. 아내는 줄곧 거부했다. 아내는 속 깊은 곳까지 죽어 있었던 것이다. 하기야 실제 내가 일하면서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딸을 돌보았으니 그 빈자리가 더욱 컸을 것이다. 딸아이가 자라는 동안 아내는 온갖 일들을 기꺼이 해왔을 것이다. 기저귀를 갈아주고, 우유를 먹여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가고, 유치원에도 보내고, 발레, 승마, 피아노 레슨에 테니스와 프랑스어 레슨 학교도 따라다니고 내가 생각지 못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아내는 딸아이와 함께 했는데 심지어 죽는 순간까지 봤어야 했으니 더욱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그런 비극이 있은 지 한 달 내내 아내는 거의 매일 구토를 했다. 얼굴은 창백했고 푸석푸석했다. 거의 매일 끊임없이 울었다. -.쪽
나는 그녀의 기분을 나아지게 할 방법을 전혀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온갖 선물을 사고 근사한 저녁식사 자리에 아내를 초대하고, 주말이면 프랑스 남부나 네덜란드로 그녀를 데리고 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라로 인해 뚫린 구멍은 좀처럼 메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더욱더 커져만 갔다. 어느 날 내가 애완동물을 키워보는 게 어떻겠냐고 묻자 그녀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만 보았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일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 순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내가 나를 증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나도 내 마음의 문을 서서히 닫기 시작했다. 내 마음의 창문과 문들 모두를. 그때 이후 우리의 모든 부드러움과 서로간의 은밀한 대화들, '자기'라든가 '여보'라는 호칭, 일상의 입맞춤과 오르가슴은 점점 줄어들었고, 그저 단조로운 문명 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로 우리의 일상은 채워졌다. 사라의 죽음 이후 우리는 서로를 원해본 적도 없었고 그 어떤 접촉도, 지성이든 감성이든 성적이든 아무런 교감도 더 이상은 없었다. <몬테네그로 남자>-.쪽
나는 대화를 가볍게 이끌었다. "손톱 씹어?" "아니 손톱을 학대하고 싶지 않아. 한데 입술이 갈라져서 세로로 잘게 껍질이 일어나면 나도 모르게 종종 입술 껍질을 먹게 돼. 마치 입술 조각을 먹는 느낌이야." <눈꺼풀 너머>
=>역시 작가의 글솜씨는 화려하네요. 저 역시 까칠한 입술을 잘 뜯어 먹는데, 입술 조각을 먹는 느낌... 맘에 들어요.^^-.쪽
우리는 돼지갈비를 먹는다. 갈비는 사람들을 가까워지게 한다. 입술은 반짝거리고 턱은 반들반들해지도록 같이 갈비뼈를 발라먹는 동안 싸움을 접어두게 되는 거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 없음을 눈치채고 냅킨으로 볼을 닦아준다. 오래도록 꼼꼼하게 닦아주더니 손을 잡는다. 수천 관중은 사라지고 그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내 앞에 와 있다. 나를 불안하게 하고 상처를 준 모든 것을 밀쳐내며 다시 한번 우리만의 더없이 행복한 순간을 경험한다. 과거도 미래도 다른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순간들. <정상회담>-.쪽
"전국의 중3들에게 공감이라는 개념에 관한 책을 나눠주고 싶어." 그가 계속 말한다. "결과가 하도 무시무시해서 틀림없다고 확인하기 전에는 공표하지 않기로 한 연구 결과가 있어. 15세 청소년의 92퍼센트가 공감이라는 말의 뜻을 모르는 것으로 나와. 위험한 일이야. 말뜻이 뭔지 모르면 그 말의 뜻대로 행동할 수 없거든. 먼저 말을 배우고 그 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배우기 마련이지. 지금 이 모양이면 앞날은 정말 캄캄해. 언어는 모든 것의 시작이야. 먼저 말이, 그 다음에는 행동이, 그러고 나서 생각이 따라오는 거야. 우리는 언어가 없으면 생각할 수도 없고,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어. 말이라는 동물은 우리가 말이라고 부르기 전에는 말이 아니야. 고양이는 발이 네 개일 때만 고양이지. 그렇지? 즉, 공감이라는 말이 없으면 공감대는 존재할 수 없어. 공감이라는 단어의 뜻, 철자, 내용과 언어사적인 배경을 모른다면 공감할 수 없다고까지 주장하고 싶어.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이 단어를 알려줄 의무가 있어. 내가 총리직에서 물러나더라도 그 책, 공감의 책을 청소년들한테 배급하는 계획을 관철시키고 말 테야." <정상회담>-.쪽
우리는 돼지갈비를 먹는다. 갈비는 사람들을 가까워지게 한다. 입술은 반짝거리고 턱은 반들반들해지도록 같이 갈비뼈를 발라먹는 동안 싸움을 접어두게 되는 거다. 그러나 그는 나의 말 없음을 눈치채고 냅킨으로 볼을 닦아준다. 오래도록 꼼꼼하게 닦아주더니 손을 잡는다. 수천 관중은 사라지고 그는 다시 눈을 반짝이며 내 앞에 와 있다. 나를 불안하게 하고 상처를 준 모든 것을 밀쳐내며 다시 한번 우리만의 더없이 행복한 순간을 경험한다. 과거도 미래도 다른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 그런 순간들. <정상회담>
-.쪽
"당신이 나랑 같이 오지 않았다면 군사재판을 받을 뻔했어. 처형당했을지도 몰라. 당신은 나랑 같이 있어서 운이 좋은 거야." 그의 인과 개념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가벼운 그림자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바로 그와 함께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 아닌가. 그렇다고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말로 할 필요는 없는 법이니 그냥 내버려둔다. <정상회담>-.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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