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굼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사람들의 꿈을 실현시켜 준다
영화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는 사람들의 불완전한 현실을 확인시키고 완성시켜 주기도 한다.
때로 사람들의 꿈과 현실을 구원해 주는 영화들이 나를 사로잡는다.-.쪽
기차가 코앞에 들이닥쳤을 때 "나 돌아갈래"를 외치는 영호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핏발 선 눈은 젖어 있다. 기차가 들이받은 것은 어쩌면 지난 20년 동안 우리의 일그러진 세월인지도 모른다. 박살난 것은 박하사탕이었다. 아, 박하사탕, 입에 넣고 파싹 깨물면 입 안이 환해지던 그 하얀 박하사탕을 기차가 들이받은 것이다. 박하사탕은 깨지고, 기차는 영호의 옛날로 거슬러 달린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길을 기차는 거꾸로 달리는 것이다. 떨어진 꽃잎들이 다시 복숭아나무로 후루루 달라붙는다. 사람들이 뒷걸음질친다. 첫 번째 역은 1999년이다. 첫 번째 역, 두 번째 역 그리고 세 번째 역…… 역을 지나 과거로 갈수록 영호의 심성은 점점 순수해진다.-.쪽
공장 친구들과 강변으로 소풍을 나올 때까지 이 영화는 잘 짜여진 연작시나 소설처럼 일곱 개의 이야기가 현재부터 과거로 차례차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1979년부터 1999년까지 20년 동안, 한 인간이 그 시대와 사회 속에서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얼마나 철저히 망가질 수 있는가를 영화는 역을 지날 때마다 그 상처들을 헤집어 보여 준다. 이 영화와는 반대로 줄거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순진한 공장 청년 영호는 어느 날 꼭 한 번 와 본 듯한, 그리 낯설지 않은 강변에서 첫사랑 순임에게 쑥부쟁이를 꺾어 준다. 이 강변이 낯설지 않다는 영호의 말에 순임은 "꿈을 꾼 것이겠지요. 그 꿈이 좋은 꿈이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영호는 순임에게 풀꽃을 꺾어다 주고, 순임은 영호에게 흰 박하사탕을 준다.
=>박하사탕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쪽
영화의 모든 메커니즘을 감독이 세세히 알고 완벽하게 장악할 때 영화는 성공한다. 그러나 영화는 감독과 배우들이 만드는 게 아니다. 영화는 관객이 만든다. 그 어떤 영화든 관객이 없으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으니까.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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