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가게, 장롱 고치는 가게, 공중목욕탕, 문방구 같은 곳들을 지날 때면 잠시 멈춰 기웃거리게 된다. 아직도 예전의 그것들이 남아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나를 서성거리게 하는 여러 가지 물건들. 서른여섯 개들이 계란판, 자개장 고치는 아저씨의 오래된 연장과 젖은 수건……. 흰 타일이 깔려 있던 옛날 공중목욕탕은 지금 수리 중인데 곧 다른 모양의 집으로 바뀔 모양이다. 갑자기 베지밀 병 같은 것이 그리워진다. 언제 자취를 감추?될지 모를 그런 물건들을 모아다 추억의 잔치를 벌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러면 좋아라 하며 달려올 친구들이 꽤 있을 텐데. 유독 어릴 적 기억이 많은 사람들, 지난 시절을 따뜻하고 소중하게 간직할 줄 아는 사람들이 내 주변엔 참 많은 것 같다.
=>정말 저도 옛날 초등학교에 가서 주위에 변한것과 변하지 않은것을 보면서 지난 시절을 회상했었어요. 그래서인지 글을 읽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네요.-.쪽
문방구는 이제 추억의 집이다. 종합선물세트 상자를 열어 보는 기분으로 하나하나 찾아보면 손에 잡히는 물건들이 참 많다. 널찍하게 줄이 쳐져 있고 그림도 그려져 있는 종합장이나 연습장도 있다. 만화가 그려진 종이 딱지와 구슬도 발견할 수 있고, 곤충 채집용 망, 컴퍼스, 대나무 자, 자연 시간에 준비해 가던 물체주머니와 신발주머니도 간간이 볼 수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왜 그리도 많은 시간을 보냈을까. 불량식품이라 하면서도 입에서 떼지 않던 '쫀득이', 그 쫀득이를 나누어 입에 물고는 친구들과 무리져 구경하다 진열대 위에 자기 물건을 두고 오는 일도 참 많았다. 학교가 파하면 영락없이 들러 군것질거리와 내일의 준비물을 사느라 바글대던 문방구. 귀엽고 자잘한 물건들이 저마다 고개를 들고 꼬마 친구들을 기다리던 그곳에, 이제 나는 너무 커버린 채 서 있다. 문방구는 내게 너무 좁다.-.쪽
선물은 그 사람과 보낸 시간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그려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의 선물은 쉽게 골라 주지 못한다. 긴 시간과 수많은 사연이 사람의 감정처럼 흐르고 있는 오래된 물건을 내가 좋은 선물로 여기는 것도 바로 이런 생각과 관련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의미 있는 물건, 이를테면 석화 언니의 어린 왕자 캐릭터 물건들을 물려받을 때 나는 언니에게 있어 소중한 사랑의 핵심까지도 함께 물려받는 듯한 느낌을 갖곤 한다. 그때마다 난 열에 들뜰 정도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석화 언니 부부의 사랑의 표상들을 물려받을 사람, 난 언제나 그 일순위로 대기중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을 고를때면 항상 망설여지고 고민되는것 같아요.-.쪽
나는 언니가 선물로 건네준 노란 필통과 지우개, 볼펜, 샤프를 요즘 원고를 쓰고 악보를 그리는 데에만 사용한다. 소중한 물건이기에 특별한 용도에만 사용하고 싶다. 한 10년쯤, 그렇게 잘 쓰다가 나도 누구에겐가 물려줄 생각을 하면서 그 물건들을 더 소중히 다룬다. 정감이 깃든 낡은 물건들은 다시 나에 의해 닦이고 어루만져져 나의 손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세상에 하나뿐인 선물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 내게서 살고 있다. 이 물건들은 안나에게 전해질 수도 있고, 내 동생에게 전해질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석화 언니에게로 전해질지도 모를 '위대한 유산'들이다. 보이지 않는 긴 시간을 선사받으면서 선물의 소중한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는 가운데, 나는 선물의 메신저라는 내 역할에 다시 한 번 책임감을 느낀다. 누군가 갖고 싶어하던 물건을 갖게 해주는 사람, 내가 직접 전해 주지 못한 선물을 간접적으로 건네는 역할을 도맡는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내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을 아우르면서 그들과 나 사이에, 선물의 '십년대계(十年大計)'를 기획하는 사람, 나누는 마음을 함께할 사람이 되고 싶다. 그 10년은 참 낭만적인 시간일 거다.
=>누군가에게 선물한 물건이 소중히 간직되길 바래요.-.쪽
임없이 선물을 주고 싶은 사람들, 떠오르는 사물마다 그 안에 담겨져 함께 떠오르는 사람들을 나는 '선물 같은 사람들'이라 부른다. 선물을 자주 하지는 않되 한번 할 때마다 잘하는 것, 그러나 만일 선물을 자주 하는 경우라면 너무 힘주어 하지 않고 가볍게 일상적으로 건네는 기분 좋은 말 한마디처럼 선물하는 것. 그것이 선물할 때의 내 원칙이다. 꼭 눈에 보이는 선물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선물하는 마음이 되어 사는 것은 내게 중요한 일이다. 일상의 기쁨이 주는 사소한 전율과 진동은 내 기억과 내 마음속을 떠돌다가 문득 '사람들'과 마주친다. 그 기쁨의 모양과 닮은, 그 진동의 파장과 흡사한 사람들. 언제나 가까운 자리에 함께 있는 사람, 잊을 만하면 괜스레 떠오르는 사람, 오래도록 안부를 모른 채 지내던 사람, 그리고 심지어 미워했던 사람까지도…….-.쪽
난 아직도 그러고 있는 중이다. 잃어버린 물건을 하나씩 단념하는 길 위에 있다. 방을 한번 뒤집을 작정으로 속 시원히 더 찾아보지 않는 이유는, 상실감을 보류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때 소유했다는 그 사실 자체를 잊게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어차피 물건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결과는 마찬가지라 하더라도, 이렇게 기다린다는 기분, 유예시킨다는 기분이 내겐 훨씬 낫다. 물건을 하나 잃어버리고 똑같은 하나를 다시 채워 넣기보다 혹시 더 내줄 것, 놓아야 할 것이 있는지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무엇을 어떻게 정리하며 살아가야 할지를 배우게 된다. 상실은 나에게 그런 것들을 가르쳐 준다. 그리고 내게 남겨진 것들을 더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또한 상실을 통해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잃어버린 물건……. 나는 그것을 고르기 위해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보냈던 시간만을 잊지 않고 가끔씩 떠올리기로 했다. 나에게 상실이란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게 하는 전환점인 듯하다.-.쪽
그런 책을 보았다. 풍수로 풀어 가는 공간 정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었는데, 오랫동안 쓰지 않고 한자리에 놓아두는 물건들, 쓰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 물건들을 정리하기에 적절한 기준들을 제시해 주고 있었다. 책에서는 물건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죽어 있는 물건과 살아 있는 물건인데 다름 아닌 활용도를 기준으로 한 것이었다. 잘 쓰는 물건은 산 물건, 1년 이상 손도 대지 않은 채 한자리에 그대로 놓아두는 물건은 죽은 물건이다. 책이나 인쇄물 같은 것도 1년 이상 들춰 보지 않으면서 방치해 둔다면 역시 죽은 물건에 해당된다. 그러나 죽은 물건이라 해서 모두 버려져야 하는 건 아니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물건들은 그 배치를 다르게 하거나 다른 용도로 대체시켜 집 안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즉 물건에도 생명이 있다는 뜻이겠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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