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신용관기자]

역사를 읽는 방식은 사학자 수만큼 많다. 역사를 읽는 이유는 독자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이 책의 저자는 아마추어로서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다. 널려 있는 잡다한 자료들을 그럴듯하게 짜집기 하거나 어쭙잖은 사관(史觀)으로 사실(史實)을 왜곡·재단하지도 않는다. 다만 발로 뛰어 취재한 대로, 가능한한 많은 자료를 비교해 확신이 선 대로, 정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한반도 근현대 100년 역사의 발화점이자 심장부라 부를 수 있는 대한제국 황실의 이야기다. 관련자들의 삶을 있었던 모습 그대로 복원함으로써 한반도 역사의 빈 페이지를 메우고자 했다. 당연, 만만찮은 않은 일이다. 저자의 말.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은 ‘퍼즐 맞추기’에 가까웠다. 왜 이 기록과 저 기록은 앞뒤가 맞지 않을까. 무슨 법을 만들고 누구를 처형했다는데 구체적인 근거는 왜 제시하지 않았을까. 자료과 기록에 나타난 내용을 당대 신문·잡지·실록의 기사와 비교해나가자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책을 통해 그동안 알고 있던 막연한 풍문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소개되는 인물은 영친왕 이은(李垠)과 영친왕비 이방자, 의친왕 이강(李堈)과 덕혜옹주,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 등이다. 거기에 민갑완과 이구의 전 부인 줄리아 뮬록, 황적(皇籍)에 올랐던 이강의 두 아들 이건(李鍵)과 이우(李?), 그리고 황적에 오르지 못한 후예들이 등장한다.

제법 비중있게 서술되고 있는 민갑완은 어려서 이은의 간택을 받았다는 이유로 평생을 수절하며 살아야 했던 여인이다. 조선 황족과 일본 황족의 정략결혼, 소위 일선융화(日鮮融和)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비록 황족은 아니지만 그녀가 감내한 세월 속에는 대한제국 황실 내 어느 누구의 삶보다 애절한 개인사가 서려 있다.

황족들은 그들의 나약함이나 무능과 상관없이 몰락해가는 대한제국의 민중들에게는 희망의 불씨였다. 특히 의친왕 이강은 무수한 풍문과 논란의 진원지였다. 일부 학자들은 그가 주색으로 세월을 허송했다고 폄하했지만, 진위여부가 불투명함에도 불구하고 당시 민중들은 이강의 빛나는 독립운동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다.

바늘 끝처럼 예민한 정신의 소유자인 덕혜옹주에게 망국의 공주 자리는 무겁기만 했다. 고명딸인 그녀를 애지중지 키웠던 고종 황제의 죽음, 일본인과의 정략결혼, 불행한 생활이 불러오는 과중한 심리적 고통은 그녀의 정신을 짓눌렀다. 덕수궁의 금지옥엽으로 태어난 덕혜옹주는 결국 오래토록 정신분열증을 앓다 한으로 가득한 삶을 마감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남겨 놓은 낙서만이 그녀의 오래된 고통과 외로움을 조용히 증언한다.

방대한 자료를 꼼꼼하게 비교·분석한 저자의 고투는 560쪽에 이르는 묵직한 기록으로 독자들을 유혹한다. 주석만 원고지 200장 분량이다. 우리 근대사가 황실 인물들의 생애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고 평가 받을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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