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욱(왼쪽), 김형중.
2000년대 우리 문학의 지형은 어떻게 변했을까.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남긴 주름살을 떠안고, 온갖 세련된 논리로 무장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확산에 맥없이 휘둘리는 사회경제적 상황 속에 문학은 시대를 어떻게 비추고 어떤 문제제기를 해왔나. 올해 창간 40년째인 계간 ‘창비’ 여름호가 ‘2000년대 한국문학이 읽는 시대적 징후’를 진단하는 기획 특집을 마련했다.

5명의 문학평론가들이 각각 다른 주제로 접근방식을 달리해 가며 2000년대 문학이 보여준 가능성과 한계를 다각도로 짚어나간다.

◇‘경계 넘기’의 본격화=인제대 영문과 한기욱 교수는 ‘한국문학의 새로운 현실 읽기’라는 글에서 최근의 한국 현실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외환위기 체제와 6·15공동선언이었고, 이것들은 동시에 “90년대 문학과 2000년대 문학의 결정적 사건”이었다고 진단한다.

그는 외환위기가 한반도 남녘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직격탄을 날렸다면 6·15공동선언은 한반도 주민 전체의 장래에 더 결정적 사건이었던 만큼 후자를 2000년대 문학의 기점으로 삼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물론 외환위기에 비해 6·15공동선언이 문학에 남긴 흔적은 아직 제한적이다. 그러나 외형적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00년 이후 활발해진 ‘경계 넘기’가 그 징조다.

그는 “사유와 상상력의 지평이 여러 국경·경계를 넘어 크게 확장되고, 그럼으로써 한반도 남쪽의 반국적 시야에서 빠른 속도로 벗어나고 있다”면서 “이 가운데는 방현석의 ‘존재의 형식’(2002), 이대환의 ‘붉은 고래’(2004), 공지영의 ‘별들의 들판’(2004), 전성태의 ‘국경을 넘는 일’(2004), 정도상의 ‘소소, 눈사람이 되다’(2006)처럼 외국의 경험을 통해 분단의 상처와 그 경계를 넘는 일의 의미를 의식적으로 되새기는 작품들도 적지 않다”고 썼다. 한편 김애란과 박민규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현실의 중력’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그 체제의 논리에 쉽사리 포섭되지 않는 주체들”을 보여 준 것으로 평가됐다.

◇성, 가족 이데올로기의 변화=소장 문학평론가인 김형중씨는 ‘성(性)을 사유하는 윤리적 방식’이라는 글을 통해 최근 한국문학에 나타난 성·사랑·가족의 양상과 윤리방식을 흥미롭게 분석했다.

김씨는 남성의 언어로 말해지길 원치 않는 이즈음의 여성시인들에 대해 논한다. “어떤 모성은 잔인한 과대망상이다”(‘거리의 기타리스트-돌아오지 마라, 엄마’ 중)라 쓰고 있는 김이듬, “설사 내 자궁에 근종 덩어리 하나 자라고 있다 한들”(‘가위눌리다 도망나온 새벽’ 중)이라며 잉태에 대해 이물감 외의 어떠한 자부심도 느끼지 않음을 표현한 김민정, ‘정육점 여주인’이란 시에서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성차를 부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진은영…. 아울러 황병승의 시와 배수아의 소설에 드러나는 모호한 성 정체성도 특징적 현상으로 지목됐다.

전통적인 가족상의 붕괴와 다양한 ‘대안가족’의 등장 역시 2000년대 소설이 보여준 특징이다. 윤성희의 ‘가족’(‘문예중앙’ 2005년 봄호)에는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와 그중 한 남자의 아들’로 이뤄진 가족이 나온다.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거기, 당신?’, 문학동네 2004)에서 주인공은 부산행 새마을호에서 일곱 번 마주친 ‘Q’와, 목욕탕에 갔다 우연히 발을 밟아 친해진 ‘W’, 그리고 찜질방에서 만난 여고생과 한 가족을 이룬다.

강영숙의 ‘리나’(문예중앙 연재중)는 한 발 더 나간다. 탈북자로 보이는 ‘리나’는 ‘삐’라는 남자와 남매였다, 연인이었다, 동료가 되기도 한다. 또 함께 탈북한 방직공장 언니도 가족의 성원이 되어 ‘리나’와 자매이자 동성애 관계로 설정된다.

김씨는 “한국사회도 (내부에서 배제되었건 외부로부터 유입되었건) 타자들과 함께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점점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질 것”이라며 “이럴 때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거주할 문장을 만들고, 윤리적으로 그들과 기거할 수 있는 방식을 미리 보여주는 것 외에는 없다”고 총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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