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대 일본에서 명군으로 알려진 한 영주의 부하 무장이 판단 착오로 자기의 말단 부하를 칼로 베어 죽였다. 영주는 무장을 엄하게 꾸짖고 희생자의 친척들에게 충분히 보상케 했다. 그런데 친척들은 ‘그를 살려내라’며 불가능한 탄원을 그치지 않는다. 참다 못한 영주는 탄원에 앞장섰던 희생자의 맏형과 작은아버지, 처남 등 세 사람을 불러 ‘어떻게 해서든 목숨을 살려내고 싶으면 내가 염라대왕 앞으로 편지를 써 놓았으니 이것을 갖고 직접 대왕 앞에 가서 그를 살려내서 데리고 돌아오라”면서 차례로 목을 쳤다. 그런 다음 이런 내용을 담은 방을 내붙이고, 편지까지 일반에 공개했다. 그 후 이렇게 무리한 탄원을 하는 일은 뚝 그치고 말았다.”
주먹만한 코, 안경 걸친 네모 난 민머리, 한 가닥 길게 솟은 머리카락으로 상징되는 우리나라 신문 4단 만화의 대명사 ‘고바우’의
김성환(74) 화백이 최근 펴낸 ‘편편상’ 첫 부분에 실린 ‘염라대왕 전상서’의 일부이다.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가혹한 판결임엔 틀림없지만, 김 화백은 “탄원이든 보상이든 부탁이든 모든 일에는 한계라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해석을 달았다.
1950년부터 신문에 연재를 시작해 50년간 1만4139회라는 경이적 기록을 세우고 2000년 은퇴한 그가 6년 만에 그림 그리는 이야기꾼으로 독자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잠이 안 올 때 듬성듬성 읽다가 잠들면서 ‘그런 일도 있었나?’ 하고 가볍게 넘겨 주었으면 합니다”.
편편상은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 고바우의 잡학백과’(인디북)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낸 책이다. ‘편편상(片片想)’이란 역사의 조각, 즉 생각의 단편 모음이다. 시시콜콜하면서도 삶의 진국이 밴 일상사를 구수한 이야기체로 풀어놓았다. 인간사의 뒤안길 얘기, 정사보다는 야사에 가까운 일화가 주요 소재이지만 읽고 나면 뒤통수를 치는 서른일곱 편의 중량감이 제법 묵직하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타임머신 같은 역사 가로지르기도 재미있다. 평생 손에 익은 그림 실력까지 보태져 그의 잡학 이야기는 내용도 풍부하고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