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황실의 후손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다. 황실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
궁’은
입헌군주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몇 년 전에는 원폭에 희생된 황손 이우의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면서 ‘한국의 얼짱 황손’으로 화제를 모았다.
의친왕의 아들 이석(66)의 근황도 이따금씩 언론에 소개된다.
하지만 한국의 마지막 왕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흥미 위주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일본에 대한 분노는 대한제국의 황족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이들에 대해 제대로 연구·평가한 책이 거의 없는 점, 단편적이고 선정적인 언론 보도도 한몫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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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얼짱 황손’으로 알려진 이우(왼쪽), 이은과 이토 히로부미(왼쪽) |
한반도 역사의 최전선에서 거친 바람을 견뎌낸 조선 황족의 삶은 그 자체로 우리 근현대사였다. 하지만 이제껏 ‘역사’로 대접받지 못한 채 풍문으로만 떠돌아다녔다. ‘제국의 후예들’은 대한제국 황족들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영친왕 이은과 영친왕비 이방자, 의친왕 이강과 덕혜옹주, 영친왕의 아들 이구와 전 부인 줄리아 뮬록, 황적에 올랐던 이강의 두 아들 이건과 이우, 황적에 오르지 못한 후예들이 등장한다. 어려서 이은의 간택단자를 받았다는 이유로 평생 수절하며 살아야 했던 여인 민갑완의 삶도 그려낸다. 황족들은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았다. 어려서 일본에 볼모로 끌려간 이은은 일제의 속박과 친일파 황태자란 오명 사이에서 일생 줄타기를 해야 했다. 이은과 평생을 함께한 이방자 역시 시대의 모진 바람을 감내해야 했다. 부군의 조국을 자신의 나라로 받아들이려 했지만, 일본 황족 출신이란 꼬리표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덕혜 옹주는 아버지 고종황제의 죽음, 일본인과의 정략결혼, 불행한 생활이 주는 과중한 고통을 견디지 못해 오래토록 정신분열증을 앓았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손 이구와 황태손비 줄리아 뮬록(83). 이구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나와 뉴욕에서 건축사로 일하던 패기만만한 청년이었다. 두 사람의 꿈은 1963년 한국에 오면서부터 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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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 날의 영친왕 이은과 이방자(왼쪽), 일본에서 귀국한 덕혜옹주(가운데) |
전주 이씨 문중은 이구가 황실의 구심점이 되길 종용했고, 후사가 없다는 이유 등을 내세워 줄리아와 이혼할 것을 권유했다. 끝 모르는 나락으로 떨어진 이구는 일본에서 떠돌다 지난해 삶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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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후예들/정범준 지음/황소자리/3만5000원 |
책은 그간 알려진 사례 중 잘못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밝힌다. 대한제국의 대를 끊기 위해 일제가 석녀 이방자를 영친왕과 맺게 했다거나, 덕혜 옹주가 남편 소 다케유키에게 얻어맞아 유산했다는 소문 등은 근거가 없다는 것. 우리가 한 세기 동안 그 시대를 얼마나 감정적으로 인식해왔는지 증명하는 사례라고 설명한다.
정범준이란 필명을 쓰는 저자는 프리랜서
르포라이터다. 역사가는 아니지만 관련 서적과 당대 신문 및 잡지, 관련 인물 등 광범위한 자료를 바탕으로 황족들의 삶을 복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