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그리스 신화요정 사이렌(Siren)일지도 모른다. 소통불능의 언어를 구사하거나 다른 주파수로 통신하거나, 둘 중 하나가 분명할 것이다. 고대 신화를 떠올린 건 요정의 저주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물에 빠져 죽는다는 전설 말이다. 소설을 읽고난 지금, 다시 말해 저주에 걸린 지금. 온몸은 허물어지고 있다. 침몰이라기 보단 침전이다. 용 한번 못쓰고 맥없이 가라앉는다.

요정의 이름은 한유주다. 갓 첫 소설집 '달로'(문학과지성사)를 낸 1982년생 신예다. 80년생 김애란과 함께 문단에서 막내뻘이다. 하나, 둘은 한참 떨어져 있다. 색깔로 가름하자면 김애란은 밝은 노랑, 한유주는 짙은 잿빛이다. 그러니까 '한유주 본색'은 불길한 징조나 서늘한 조짐, 자꾸만 끌어내리는 듯한 기운에 있다. 징조나 조짐 따위의 삽삽한 표현을 쓴 까닭이 있다. 그의 소설엔 줄거리가 없다. 혹자는 아예 서사를 포기한 작가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누구도 명쾌하게 정의 내리진 못한다. 사이렌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인성과 배수아의 계보를 잇는다고, 소위 '자폐적 소설'의 21세기형 버전이라고 겨우 말할 뿐이다.

사이렌의 언어는 특히 문장에서 두드러진다. 파격(破格)이 아니라 '배격(排格)'의 문장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일주일 전 국경을 넘을 때 우리는 애써 가짜 여권을 내밀지 않는다.'(124쪽) 부러 시제를 불일치한 문장이다. 스무 줄이나 띄어쓰기를 무시한 대목도 있다. '나는 여자가난자당해죽어있는것을보았습니다나는초소안으로…그래서이번 임무에 나는 자원했습니다.'(83~84쪽) 가장 난감했던 건 '오후 다섯 시, 누군가의 사랑이 패하는 시각'(211쪽)이란 구절에 각주를 달아놓고는, 막상 각주에선 '……'만 달랑 적은 부분이다.

작가에게 물었더니 기대보다 친절한 답을 줬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이유를 그는 "말의 덩어리를 뱉어낸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설명했고, '……'로 대신한 각주에 대해선 "독자가 채워넣게 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작가의 말'의 마지막 두 문장 '사랑니 세 개를 뺐다. 카메라를 샀다'에 대해선 이렇게 말했다. "정말로 사랑니 세 개를 뺐고 카메라를 샀어요. 그런데 여기에 배치했더니 일상의 느낌이 안 나네요."

작가는 '배치'라고 말했다. 계산된 결과란 얘기다. 그러니까, 생각 흐르는 대로 써내려 간 게 아니란 말이다. 순간, 섬뜩했다. 그녀는 처음부터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우리가 못 알아들었을 뿐이다. 그녀는 사이렌이 틀림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