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는 방문이나 답사라는 말보다는 탐험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아직 미지와 정글의 냄새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련되게 단장된 박물관을 견학하는 것이 아니라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옛 문명의 현장, 지금도 탐험과 발굴의 손길을 분주하게 움직이며 기억을 캐내는 현장이기 때문이다.-.쪽
앙코르 유적의 공식 발견자는 '앙리 무오'라는 것에 대체로 동의한다. 1860년이었다. 박물학자이자 탐험가인 앙리 무오는 태생으로는 프랑스인이지만 아프리카 여행가인 뭉고 파크의 조카와 결혼함으로써 영국 국적을 취득했고 그가 남긴 탐험의 결실들이 영국 과학학회의 지식을 풍성하게 했다. 그보다 앞서 1850년 프랑스 신부 샤를 에밀 부유보가 앙코르를 방문하여 이틀간의 짧은 여행담을 1858년 책으로 발간했다. '당당하고 장엄한 곳'이라는 것이 그가 남긴 인상의 요지다.-.쪽
앙코르 제국의 역사를 한국사에 대비시키면 대략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 초까지다. 왕권과 문화가 흐지부지했던 초기와 말기를 빼면 한반도의 고려시대 역사와 동일하다. 앙코르 제국이 장엄한 앙코르 유적을 남겼다면 고려가 남긴 것은 팔만대장경일까. 모두 섬세하고 치열한 장인들의 유물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앙코르는 밀림 속에 묻히게 된다. 그리고 감당 못하게 자란 정글의 수목들이 거대한 문어처럼 혹은 외계에서 내려온 파충류처럼 앙코르를 휘감고 비틀고 누른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폐허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제국의 후예들조차 그곳을 가리켜 '유령이 돌아다니는 저주가 내린 곳'이라고 두려워했다. 상당 부분 복구와 복원이 이루어진 지금도 을씨년스러운 저녁 무렵에 따 쁘롬 사원에 혼자 남겨진다면 배겨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쪽
앙코르 와트란 단일 사원만을 건축하기 위해 매일 2만 5천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고 3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유적지 내에는 290여 개의 사원이 발견되었고 지금도 발견되고 있다. 발견된 것을 복원하려면 최신 장비, 인력, 기술을 무제한 투입한다고 해도 100년이 더 걸린다고 한다.-.쪽
씨엠리업에 왔다. 1시간 내에 웬만한 앙코르 유적을 탐사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다. 씨엠리업은 이 일대 지방의 명칭임과 동시에 도시명이다. '태국(씨엠)을 물리친(리업) 도시'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15세기를 전후해 빈번하게 일어났던 시암의 침략에 대항하는 교두보였으며 크메르와 시암이 동남아의 패권을 잡기 위한 최전방 전선이었다. 지금은 앙코르를 밑천으로 관광 대국을 꿈꾸는 관광 도시다. 자본과 인력이 정신없이 유입되는 '지금은 공사 중'인 도시다. 1년에 땅값이 두 배씩 오르는 기회의 땅, 자본과 인력이 뒤엉킨 흥분의 도시, 과거와 현재가 숨 가쁘게 공존하는 현장이다.-.쪽
앙코르 유적의 특징
기본 설계는 만다라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중앙탑, 도서관, 조각 등 3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중앙탑은 연꽃 모양의 원추형 탑이다. 도서관은 중심 건축물의 정면 양쪽에 배치되어 있다. 법당을 중심으로 정면 양쪽에 있는 탑과 같다.-.쪽
반띠아이 쓰레이는 아나스틸로시스(완전 해체 후 복원) 방식을 채택했다. 이 방법은 유적의 청소, 석재의 정리와 보관, 기초부 확인, 유적 전체 측량, 유적 해체 후 각 부분의 세밀한 측량, 기초 다지기, 재조립과 보강, 석재의 복원, 공사 일정별 도면 작성과 사진기록 보존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때 원래의 건축물과 다른 석재를 사용하거나 대체하는 경우는 최소한으로 한정하고 지상에서 시험적으로 조립을 해본 후에 사용한다. 새로운 석재는 별도의 마크를 찍어 표시하고 조각은 하지 않는다. 이 방식을 다른 유적에도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반띠아이 쓰레이는 비교적 작고 아담한 유적이다. 그래서 가능하다. 거대 유적의 해체 복원은 현대식 장비와 인력을 동원한다고 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쪽
우리는 곧잘 앙코르 유적군 전체를 '앙코르 와트'라고 잘못 말해버리기도 한다.
=>앙코르는 지역이고 앙코르 와트는 사원-.쪽
앙코르 와트
12세기 초반(1113~1150) 수리야바르만 2세 때 건축. 단일 건축물로서는 건축학적ㆍ미학적ㆍ종교적 상징성이 세계 최고의 걸작이다. 노틀담 사원과 비슷한 시기에 건축되었고 높이도 비슷하다. 미학적으로는 타지마할과 서로 자리를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석조 건축물로 만들어진 우주의 축소판으로 지상에 구현한 우주의 모형이다. 사원의 중심에 중앙탑을 중심으로 네 개의 탑이 배치되어 있다. 중앙탑은 우주의 중심인 메루산을 상징하며 나머지 탑은 메루산 주변의 큰 봉우리를 나타낸다. 성벽은 세상의 끝을 둘러싼 산맥을 뜻하고 이를 둘러싼 해자는 우주의 바다를 상징한다. 탑의 모양은 남방 지역에 자생하는 뾰족한 연꽃 봉오리 모습이다. 동서 1,500미터, 남북 1,300미터 부지에 폭 250미터의 해자를 파고 성벽을 쌓은 후 내부에 사원을 지었다. 전체 부지가 약 60만 평이다. 사원 자체가 거대하여 내부를 다니면 건물에 들어온 느낌보다 작은 도시에 들어선 느낌이다. 앙코르 와트의 시민이 되어 천천히,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이 좋다.-.쪽
만다라
만다라mandala는 원모양이라는 의미의 산스크리트어다. 참眞, 본질本質 manda이라는 어근과 소유, 성취la라는 접미사의 결합이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신성하고 기하학적인 그림으로, 중심점에서 사방으로 뻗어 나오는 정사각형과 원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인간은 모태 속의 작고 둥근 알에서 시작되고 몸의 기본 단위인 원자는 곡선과 나선형의 휘몰아치는 물질로 구성된 우주이다. 태양(원)과 함께 의식세계(깨어 있는 것)와 무의식세계(잠자고 있는 것)가 구분된다. 인간과 우주를 기하학적으로, 평면적으로 도식화한 것이 만다라고 그것을 입체화한 것이 앙코르다. 그것도 울창한 정글을 화폭으로 삼아서.-.쪽
앙코르를 이해하려면 세 사람의 기록을 꼭 살펴보아야 한다. 최초로, 13세기에 앙코르 기행기 <진랍풍토기>를 남긴 주달관, 파괴와 도굴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린 소설 <왕도의 길>을 쓴 앙드레 말로, 정글에 묻힌 앙코르를 서구에 알린 프랑스의 탐헝가 앙리 무오가 그들이다.-.쪽
앙코르 여행에 소용되는 얄팍한 지식 하나를 말해 볼까. 작은 배낭에 넣고 다닐 필요가 있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사탕, 볼펜, 머리핀, 담배, 환전한 현지 화폐 리알 소액권 등등.
사탕은 졸졸 따라 다니는 행상 아이들에게 준다. 아이들이 파는 물건들이란 게 사줄 만한 게 드물다. 너의 정성은 갸륵하지만 나는 그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 이 사탕을 먹고 다른 곳으로 팔러 가거라. 네 모습이 너무 예뻐 사진 한 장 찍으마. 찰칵. 캄보디아의 교육은 불교가 전담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의 95퍼센트를 불교 사원에서 운영한다. 사원 곁에 학교가 있는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에게는 볼펜을 준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와 함께. 단, 머리를 쓰다듬으면 안 된다. 그것은 금기 사항이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신의 머리를 심심하면 건드리고 쥐어박은 미국인 상관을 살해한 캄보디아인이 있었다. 문화적 차이를 감안해서 판사가 집행유예로 석방시켰다.-.쪽
머리핀은 여자 아이들에게 준다. 빗질을 자주 하지 않아 비록 머리털이 엉망이지만 예뻐지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갖는 소망인 법. 그들도 손질만 한다면 윤기 나게 찰랑거릴 몽골리안형 직모를 가졌다.
담배는 유적지 관리인이나 사원의 스님들을 위해 필요하다. 사진 한 번 찰칵 하기 전 담배 한 대 권하면 유순한 관리인들이 웃으며 포즈를 취해준다. 이곳 스님들 중에선 담배 피우는 이가 많다. 시가를 줄담배로 피우는 스님도 보았다. 필터가 있는 한국산 담배를 권하면 사양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역시 찰칵찰칵.
현지 화폐는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주기 위함이다. 사실 1달러는 이곳에서 큰 액수이다. 1달러가 대략 4천 리알이다. 현지 시장에서 밥 두어 끼 정도를 사먹을 수 있는 돈이다. 1달러를 주어도 죄가 될 것은 없지만 문제는 구걸하는 아이가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다. 짧은 사회주의 경험의 산물인지 크메르족의 전통인지, 모든 것은 공평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기본 의식구조이다. 물건을 살 때도 쪼르르 달라붙는 아이들에게 똑같은 가격의 물건을 하나씩 사주어야 행복해한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스치는 여행객의 심사 또한 불편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쪽
쓰라 쓰랑
10세기 중엽 라젠드라바르만 왕 때 처음 축조되었고 12세기 초 자야바르만 7세가 재건축하였다. 반띠아이 끄데이의 동문 앞 길 건너에 있다. 반띠아이 끄데이를 먼저 보고 약간 피곤기를 느끼면 쓰라 쓰랑 돌계단에 걸터앉아 호수 같은 수면을 바라보며 휴식과 사색을 하시라. 오른편 끝 쪽에서는 발가벗고 목욕을 하는 아이들과 빨래하는 아낙을 볼 수 있다. 축조 당시에도 그랬듯이 이곳은 나그네에게도 휴식의 공간이다. 쓰라srah는 물water, 쓰랑srang은 깨끗하다, 청결하다clean는 뜻이다.-.쪽
앙코르 탐사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몇 가지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대상(유물)에 대한 마비 현상을 이겨내야 한다. 부지런히 인내심을 충전해야 경이로움을 즐길 수 있다. 가도 가도 황토 먼지와 더위 그리고 돌덩이뿐이다. 그 돌이 그 돌 같고 그 사원이 그 사원 같다.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수천 개의 압살라도 같은 표정, 같은 동작이 없거늘 어찌 그 돌이 그 돌이랴. 게으름과 피로를 이겨내면, 그야말로 날마다 좋은 날이다.
둘째, 기후를 이기는 지혜가 필요하다. 더운 나라임을 분명히 알고 앙코르에 발을 내디뎠지만, 견디기가 만만치 않다. 앙코르 탐사를 할 때 무모한 강행군은 말리고 싶다. 빡빡하게 일정을 짜면 피로와 짜증을 안고 돌아가기 십상이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하루에 한두 개 사원을 방문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생수를 많이 마시고 그늘을 찾아 휴식을 즐기는 것도 여행의 기쁨이다.
셋째, 유적지 현장에서 그곳에 대해 공부하는 것도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이다. 여러 곳에서 자료를 찾아 조사해가며 사전 공부에 열중해보았지만 눈과 귀에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약간의 지식과 자료를 들고 현장에 침투하여 그것을 뒤적이며 사원을 바라보고 뜯어보면 경이로움이 배가된다. 현장만큼 좋은 스승은 없다.-.쪽
리틀 따 쁘롬, 스몰 바욘, 미니어처 반띠아이 끄데이라고 이름 붙여도 좋을 곳이 따 솜Ta Som이다. 밀림의 거목이 사원을 비틀어 짜듯이 휘감고 있는 따 쁘롬, 거대한 인면상이 우뚝우뚝 솟아 있는 바욘, 정교한 조각의 극치를 보여주는 반띠아이 끄데이. 그것을 조촐하게 한 곳에 모아둔 곳이 따 솜이다. 휙 둘러본다면 30분이면 족한 작은 사원이다. 그러나 눈도장만 찍는 순례가 무슨 의미가 있으랴.
복원 공사 현장을 곁에서 지켜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이곳의 복원 공사는 우리와 다르다. 천막을 두르고 출입금지 표시로 위협하는 공사현장이 아니다.(물론 그런 곳도 있다) 인부들은 방문객의 따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흩어져 있는 돌들에게 자기 자리를 찾아주는 데 여념이 없다. 보석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돌을 대하는 그들의 작업은 마치 정교한 퍼즐을 맞추고 있는 것 같다. 무너져 폐허 상태인 것을 1930년 프랑스인 앙리 마르샬이 1차 복원했다. 지금도 남은 작업량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쪽
문명과 도시는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다. 앙코르 제국이 그곳에 터를 잡은 것은 똔레삽 호수Tonle sap가 있기 때문이다. 똔레삽 호수는 씨엠리업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 있다. 전지 크기로 된 4천만분의 1인 세계지도에도 표시되어 있을 만큼 동양 최대의 담수호다.-.쪽
괴팍하고 모난 성격을 고치려면 인도로 가라.왜소한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면 중국으로 가라.국화와 칼을 동시에 보고자 한다면 일본으로 가라.인간과 우주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넉넉한 사색과 너그러움을 얻고자 하거든, 또 뿌뜻한 긍지를 누리고자 하거든 앙코르로 가라. 멀지 않은 곳에 앙크로르가 있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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