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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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 박상률 소설집 <너는 스무살, 아니 만 열아홉 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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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 사계절 |
"너는 갔다.
그래서 너의 목소리는 지금 여기에 없다.
그러나 너는 다시 여기에 있다.
어머니의 기다림과 함께.
기다림은 모든 걸 같이 있게 한다.
기다림.
숱한 세월 동안 무수한 사람들이
버리고 싶으면서도 놓아버리지 못하는 끈 같은 것.
아니, 밧줄 같은 것.
지금 너의 어머니는
그 밧줄에 매달려 있다."
-10쪽, '빛과 어둠 사이, 기다림' 몇 토막1980년 5월 광주.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광주 고립작전과 무차별 살육 때문에 순하고 착한 시민들이 자신들과 가족, 친지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을 들고 시민군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공수부대의 무차별 총격에 의해 하루아침에 피바다가 되어버렸던 그 슬픈 도시 광주….
해마다 5월은 싱그러운 초록빛과 함께 다가온다. 검붉게 피어나는 흑장미보다 더 검붉은 피바람이 불었던 그 잔인했던 광주의 5월도 어김없이 다가온다. 어떤 이들에게는 5월이 어린이의 달, 가정의 달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5월이 끔찍스럽고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피의 달, 제사의 달이기도 하다.
1980년 5월 광주, 그로부터 26년이란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천민자본주의가 날뛰면 날뛸수록 5월 광주의 뼈아픈 사건이 자꾸만 빛이 바래져 가는 것만 같다. 그때 그 자리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국군에 의해 까닭 없이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의 곡소리와 그 유가족들의 눈물이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그 어떤 아픈 일에 대해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만 같다. 자신과 주변에 당장 그 어떤 위협이 닥쳐올 때에는 냄비처럼 뽀르르 끓어오르다가 그 어떤 위협이 한 발짝 물러나 있다 싶으면 얼른 그 아픈 기억을 잊고 싶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번 저질러진 끔찍스런 일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지가 않는데도 말이다.
"1980년 5월, 그 해 봄날 이후 빛고을 광주 사람들 가운데에선 삶의 물줄기가 바뀐 이들이 많다./ 가장 많이 바뀐 이는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람들이고, 다음으론 그 곳에 아직 살아도 그 때의 깊디깊은 상처 때문에 현실의 삶에서 밀려난 사람들이고, 마지막으론 그 해 봄날의 일을 견딜 수 없어 빛고을을 떠나 다른 데에서 삶의 터를 다시 닦은 사람들이다." - '작가의 말' 몇 토막 지난 1980년 오월 광주의 속내를 차분히 더듬은 소설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사계절)을 펴낸 작가 박상률(48)은 말한다. "나로선 그 도시의 바람과 햇살과 냄새를 참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라고. 그래서 5월 광주 뒤 빛고을을 허우적허우적 빠져 나와 삶의 터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하지만 작가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든, 어느 한 순간이라도 1980년 5월 광주의 피바람과 ‘피햇살’과 ‘피내음’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사실, 그때에는 5월 광주란 도시를 빠져 나왔다고, 이제는 그 아픈 기억을 잊을 수 있겠노라고 여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게 아니었다. 그는 등에 5월 광주를 엎고 그 도시를 빠져 나왔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그때 그 5월 광주를 잊지 못한다. 눈만 감으면, 어쩌다 그 도시에 가서 새롭게 바뀐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에도, 그해 그 5월 광주가 자꾸만 떠오른다. 광주의 겉모습이 아무리 바뀌었어도 작가의 기억은 사반세기 앞의 시간에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이다.
"아이고, 내 새끼야! 아이고, 내 새끼야! 니가 뭣 땜시 요로코롬 누워 자빠져 있어야 헌단 말이냐. 퍼뜩 일어나거라, 이 놈아! 어서 집에 가야 쓸 것 아니냐? 젊으나 젊은 것이 뭣 땜시 이러고 있냔 말이여?"
월산댁은 아들의 관을 끌어안고 뒹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 한숨을 쉬며 고개를 돌리거나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살만큼 산 늙은이도 아니고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어 가는 생때같은 젊은이가 죽었으니 뭐라고 할 말을 찾을 수가 없는 거였다.
그것도 아프기를 했나, 남에게 해코지하기를 했나, 그저 날마다 지나다니던 길가다 영문도 모르고 죽었으니...... / 보다 못해 옆에 서 있던 산역꾼 하나가 나섰다.
"아짐씨, 인자 그만 고정하쇼. 마지막 가는 길, 조용하게 보내주는 게 좋다 안 하요." - 12∼13쪽, '너를 묻다' 몇 토막'
5·18 민주화운동' 제26주년에 맞추어 나온 이 소설은 지난 1980년 5월, 광주에서 저 세상으로 떠난 대학 1학년생 청년과 그 청년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이야기가 피멍처럼 박혀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소박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던 한 청년 영균의 꿈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폭력과 압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꺾이는가를 조목조목 짚어낸다.
'5·18 기념재단' 지원도서이기도 한 이 소설집은 우유배달을 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야간대학에 합격해 철물점에서 학비를 벌며 대학을 다니던 스무 살 청년 영균의 영문 모를 죽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영균의 어머니 월산댁은 야간대학에 들어간 아들이 자신의 학비까지 벌어가며 학교에 다니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다. 영균은 비록 몸은 고되지만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그 동안 갖은 고생을 다하며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 나아가 자신의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에 철물점의 고된 일조차 마냥 즐겁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광주에 들이닥친 국군들에 의해 그 모든 꿈이 무참하게 잘려나가고 만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영균의 죽음을 지켜본 월산댁은 절규한다. 영균이 죽음으로써 이제 그 모든 희망이 송두리째 꺾여버린 것이다. 월산댁은 아들을 산에 묻고 돌아온 뒤에도 계속 "내 새끼 살려내라"고 울부짖다가, 어느 순간 '아들이 절대 죽지 않았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형이 죽다니...... 아닌 게 아니라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사실 어머니 못지 않게 자신도 마음속으론 형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형을 산에다 묻고까지 왔지만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악몽을 꾸고 있거나 잠깐 도깨비에 홀린 것 같기만 했다.
꿈이라면 어서 깨어나 버렸으면 했다. 도깨비에 홀린 거라면 놀랄 만큼 놀랐으니 이제 도깨비한테서 놓여났으면 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도깨비에 홀린 것이 아니었다. 형은 진짜로 죽은 것이다.
월산댁은 가슴에 품고 있는 사진틀을 방바닥에 내려놓은 뒤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행여라도 영균의 웃음이 일그러지기라도 하면 안 된다는 듯 조심스런 손놀림이었다. 어쩌면 영균의 웃음을 두 손에 가득 담고 있는 지도 몰랐다." -23∼24쪽, '검정교복' 몇 토막 그때부터 월산댁은 성치 않은 몸으로 아들 영균이 다녔던 대학으로, 영균이 일하던 철물점으로, 영균이 묻혀있는 무덤으로 마구 돌아다니는데….
<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은 5월 광주 뒤 태어난 청소년들에게 5월 광주의 속내를 사실 그대로 알려주기 위해 씌어진 1980년 오월 광주의 자화상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입시 위주 교육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청소년들에게 오월 광주의 아픈 역사를 같은 또래의 영균과 영균의 어머니 월산댁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려준다.
문학평론가 김이구는 "이제 '광주'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이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할 만큼 한 세월이 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한 청소년 독자를 의식해 쓴 이 작품이 "'오월 광주'를 역사교과서의 한 갈피에서 만나는 미체험 세대에게 문학 고유의 방식으로 말 걸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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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그득한 울음으로 쓴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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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상률은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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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박상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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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빛고을을 떠나온 이가 사반세기 넘도록 그 도시를 등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가슴속에 그득한 울음으로 쓴 이야기이다. 지금은 그 도시의 겉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나는 눈만 감으면, 아니 어쩌다 그 도시에 가서 바뀐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에도, 그해 봄날의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 '작가의 말' 몇 토막
시, 희곡, 소설, 동화 등 쟝르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 박상률은 1958년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1990년 월간 <한길문학>에 시 '진도 아리랑', <동양문학>에 희곡 '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진도 아리랑> <배고픈 웃음> <하늘산 땅골 이야기>가 있으며, 희곡집 <풍경소리>, 소설집 <봄바람> <나는 아름답다> <밥이 끓는 시간>이 있다.
동화집으로는 <바람으로 남은 엄마><까치학교> <구멍 속 나라> <미리 쓰는 방학 일기>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가 있다.
1996년 희곡 '풍경소리'로 '불교문학상' 받음. / 이종찬 기자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