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고작 중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실마릴리온(The Silmarillion)》은 톨킨이 세상을 떠난 직후에 출간되었다. 복잡한 장편소설인 이 책은 한 세상을 만드는 데서 시작해서, 그 세계에서 펼쳐지는 선과 악의 문제, 용맹과 창조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 《반지의 제왕》과 비교할 때 이 소설은 상당히 난해한 것으로 알려져 크게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를 통해 《반지의 제왕》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다. 톨킨은 어느 한 부분도 소홀히 하지 않고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판타지 세계를 '실제 세계'처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언어와 등장인물, 그리고 줄거리라는 소설의 도구를 적절하게 활용해서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누가 세상을 만들었고, 그 세상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으며, 세상에 악과 고통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종교적 믿음에 크게 의지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이런 주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요즘에도 이런 문제를 다루는 작가는 적지 않다. 닉 혼비(Nick Hornby)의 가볍고 사실적인 희극, 아니타 브루크너(Anita Brookner)의 우아한 낭만주의, 이언 매큐언(Ian McEwan)의 음울한 상상력 등도 현대 세계를 올바로 이해하려는 독자에게 상당한 교훈을 준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는다. 물론 톨킨이 그런 문제에 해답을 제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톨킨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그의 곁에 나란히 서서 그처럼 세상을 보고 궁금증을 품으며 의문을 제기해볼 수 있다.?
=>실마리온을 읽어보고 싶게 하네요.-.쪽
《반지의 제왕》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면
톨킨을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당연히 《반지의 제왕》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중간계에서 펼쳐지는 역사를 탐구할 준비가 미처 안 되어 있다면, 좀더 쉬운 문체로 훨씬 짧게 쓰인 서너 편의 단편소설을 먼저 읽어도 상관없다. 그 글들은 중간계의 언어와 역사들이 뒤엉킨 복잡한 세계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지 않으면서도 톨킨의 문학세계와 사상을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 그 글들에서는 특별한 일을 하도록 숙명적으로 선택받은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이런 점은 《반지의 제왕》의 핵심 주제이기도 하다. 예컨대 《우튼의 스미스 소령(Smith of Wootton Major)》은 마법의 세계에 우연히 맞닥뜨린 인간에 대해 말하면서, 권력에 연연하지 말고 정의로운 사람들에게 권력을 양도해야 하는 필연성을 역설한다. 한편 《햄의 농부 자일스(Farmer Giles of Ham)》는 거인과 용을 물리쳐 왕과 그 기사들에게 창피를 안겨준 유쾌한 사내가 결국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니글의 잎새(Leaf by Niggle)》는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동안 화가로서의 재능과 이웃으로서의 결함을 드러낸 한 사내의 모습을 통해 예술적 재능과 공동체가 조화롭게 결합되어야 하는 이유를 탐구한다. 그 사내의 그림이 천국문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 세 인물에는 톨킨의 철학이 면면히 녹아 있다. 따라서 이런 이야기들을 읽는 것도 톨킨의 장편을 읽기 위한 준비로 적합하다고 말할 수 있다.
=>반지제왕의 성공은 그의 다른 작품을 접할 기회를 갖게 하네요.-.쪽
톨킨은 문헌학자였다. 문헌학(philology)은 요즘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다. 근래 언어를 학문으로 연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학문을 언어학(linguistics)이라고 칭하기 때문이다. 톨킨은 언어와 그 의미에만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다. 영국과 북유럽에서 사용되던 언어들의 역사적 변천, 또한 그런 언어들로 쓰인 문학작품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대학에서 그는 고대 영어(혹은 앵글로색슨어)와 중세 영어(초서 시대의 영어)를 주로 가르쳤다.-.쪽
톨킨에게 '신화'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톨킨에 따르면 신화적 요소들에는 땅, 하늘, 풍경, 그리고 그곳에 사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했다. 또한 그 모든 것을 만들어낸 창조주, 악의 세력이 세상에 끼어들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도 있어야 했다. 물론 역사적으로 확인 가능한 시대 이전에도 여러 왕조와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지리적으로 인식 가능하게 설명하는 신화이어야 했다. 게다가 기독교의 기원이 시간과 공간에서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었기 때문에 옛 선조들을 기독교인이라 주장하지는 않더라도 기독교 정신을 부인하지 않는 신화이어야 했다. 요컨대 그리스 신화나 스칸디나비아 신화처럼 영국의 신화도 그리스도가 이 땅에 도래하기 이전의 세계를 그려야 했다.-.쪽
《실마릴리온》은 이런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 북유럽 신화에서 크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다. 하지만 조지 맥도널드와 E. R. 에디슨의 작품을 비롯해 19세기와 20세기에 쓰인 판타지 소설들이 없었더라면 《호비트》 이후 톨킨의 다른 이야기들도 탄생하지 못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톨킨은 이런 원전들을 훌쩍 뛰어넘었다. 톨킨은 어떤 한 작품의 모방작(pastiche)을 쓴 것도 아니었고, 기존의 판타지 소설들을 짜깁기한 것도 아니었다. 《호비트》와 《반지의 제왕》에서 톨킨은 자기만의 고유한 신화를 재창조해냈다-.쪽
톨킨의 독자들은 일찍부터 환경 정책에 대한 교훈을 그의 책에서 끌어내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톨킨의 책에서 그런 쟁점에 주목하기 시작하기 훨씬 전이었다. 물론 톨킨의 독자들은 지금도 이런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이른바 '생태비판'에 대한 관심이 점점 고조되고 있어, 앞으로 톨킨의 작품이 문학 텍스트의 정전(正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조너선 베이트와 같은 평론가들은 19세기 초 워즈워스와 윌리엄 블레이크로 시작해서 19세기 말의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톨킨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작가)를 거쳐, 20세기의 테드 휴즈(Ted Hughes)와 존 파울즈(John Fowles)에 이르기까지 영국문학에서 환경문제는 전통적으로 중요한 쟁점이었다고 주장한다. 톨킨이 어떻게 생태 사상가로 읽힐 수 있는가를 증명하기란 조금도 어렵지 않다. 풍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 나무의 아름다움에서 얻는 기쁨, 엔트 등과 같은 새로운 생명체의 상상, 무엇보다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황폐함에 대한 분노는 톨킨을 환경 문학의 기수로 손꼽기에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쪽
이런 문학적 전통을 인식할 때 우리는 톨킨을 완전히 다른 방향에서 읽어갈 수 있다. 즉 커리의 주장처럼 톨킨을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작가로 해석하는 방향이다. 급진적 환경주의는 어떤 면에서 보수주의일 수 있다. 환경보호론자는 세상을 나쁜 방향으로 개악시키기보다 그대로 보존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의 이익보다 자본의 성장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세상에서 환경보호론자는 정치적으로 급진주의자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이런 식의 평론은 독자들에게 톨킨을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평가하게 만든다.-.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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