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정민호 기자] 서울대학교 규장각 학예연구사로 재직 중인 신병주가 쉽지 않은 일을 해냈다. 해동제국기, 경국대전, 표해록, 난중일기, 홍길동전, 지봉유설, 성호사설, 택리지, 준천사실과 준천계첩, 열하일기, 한중록,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의궤 등 조선 시대 최고의 명저들 14개를 한 자리에 모아 조선 시대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는 반가운 기회를 마련한 것이다.

 
▲ <조선 최고의 명저들> 겉그림.
ⓒ2006 휴머니스트
그 동안 <조선 최고의 명저들>에서 소개된 책들은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알려진 것들이다. 때문에 이토록 반가워할 까닭이 없어 보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조선 최고의 명저들>에서 저자는 단순히 조선 시대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입장에서 그것들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짚어주고 있다. '명저'라는 것의 지식을 알려주는 수준에서 한걸음 나아가 시대를 초월한 작품들이 오늘날 어떤 교훈을 주는지를 정확하게 꼬집어주는 것이다.

그럼 간략하게 작품 속을 들여다보자. 첫 번째 작품으로는 '해동제국기'가 언급됐다. 해동제국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유감스럽게도 평소에 관심을 둔 이가 아니라면 작품이 생소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을 텐데 해동제국기는 신숙주가 쓴 이른바 '대일 외교의 지침서'다. 신숙주는 세조의 왕위 등극과 관련해 나약한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데 저자는 신숙주가 실상 '조선 전기 지성을 대표하는 학자'라고 평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 어학, 외교, 경제 등에서 맹활약했기 때문인데 해동제국기는 신숙주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세종 25년(1443년), 27세의 신숙주는 왕의 명을 받들어 일본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7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외교적인 목적을 달성하고 오는데 신숙주는 이 기간 동안 일본의 풍속은 물론이고 일본인들의 특성까지 파악해 '해동제국기'를 집필하고 그것으로써 경계와 교린의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해동제국기의 월등함이 얼마나 뛰어난지 후세는 물론 일본에서까지 구해볼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해동제국기는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질문은 해동제국기,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하는 질문이 답을 대신할 수 있다. 저자는 해동제국기는 물론 뒤에 나오는 최부의 '표해록'을 함께 언급하며 "우리는 네덜란드인 하멜이 쓴 '하멜 표류기'나 19세기 무렵 서양인 선교사들이 쓴 조선 기행문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것에 무심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세계를 운운하면서 좋은 우리네 것을 내버려두고 외국의 눈에 맞춰 세계를 보려 했던 우리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니 가슴 뜨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어떨까? 저자는 다루는 항목만 3435조에 달하고 가능한 전거를 밝혔다는 것과 인용한 서적이 348가이며 유교 경전부터 최신자료까지 폭넓게 활용한 지봉유설은 알려진 것과 달리 '조선시대 문화백과사전의 효시'를 이루는 저술이라고 지적한다. 그런데 지봉유설은 동남아국가는 물론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의 나라들까지 언급하는 것은 물론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서양의 국방력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우리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는데 이수광이 기본적으로 성리학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러한 해설은 뜻밖으로 여겨진다.

성리학자하면 중국의 학문을 갖고 아등바등하던 이들로 여겨지지 않았는가? 저자는 지봉유설이 당시 내우외환을 조기에 극복하기 위해 우리 것에 애정을 갖고 세계를 열린 시각으로 바라본 작품이라면서 되레 큰 메시지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것을 버리고 몇몇 국가에 휘둘리며 세계를 편협하게 보는 작금의 현실을 질타하는 말일 게다.

준천사설과 준천계첩은 어떤가? 영조는 도성에 물이 넘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한성부민을 동원해 준천의 역사에 참여했는데 준천사설과 준천계첩을 통해 공사의 전말을 정리하고 기록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자신의 업적을 후세에 남기기 위한 것일까?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세에 도움을 주기 위한 지혜의 방편이기도 했고 자신감이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위험할지라도 돈을 위해 부실 공사하는 것이 횡행하는 지금, 누가 이렇게 영조처럼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겠는가. 기술만 발전했을 뿐, 되레 정신이 후퇴한 것이 아닌가 하는 뼈아픈 반성을 하게 한다.

조선왕실의 행사를 기록한 '의궤' 또한 그 의미가 크기는 매한가지다. 의궤는 일종의 행사보고서로서 모범적인 전례를 만들어놓고 이를 참고해 후대에 범할지 모르는 잘못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그 의도와 실현성이다. 저자는 의궤가 행사가 투명하고 떳떳하게 치러졌음을 밝히는 것이라며 전직 대통령의 통치자료마저 소실되어 역사적 사실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한 요즘의 세태를 비추어 볼 때 의궤의 기록이 주는 메시지를 결코 가벼이 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정확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한중록이나 택리지, 열하일기나 홍길동전 같은 작품들은 워낙에 유명한지라 어느 정도 익숙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은 다들 생소하다. 그런 이유야 굳이 따지지 않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터인데 그런 만큼 <조선 최고의 명저들>은 조선 시대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귀한 기회가 된다.

1866년 강화도를 침공했던 프랑스 해군장교 주베르가 "자존심이 상하는 한 가지는 아무리 가난한 집에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라고 고백했던 조선시대, 그 시대의 최고 작품들만 뽑은 <조선 최고의 명저들>, 편견과 선입견을 뒤로하고 조선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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