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박형준 기자] 세상 살기 어려울 때, 빚이 산더미처럼 쌓여 옴짝달싹도 못할 때, 말 못할 고민이 있을 때. 이런 일들은 나열만 해도 마음이 다 갑갑해진다. 이렇게 마음이 갑갑해지면, 우리는 이따금씩 용하다고 소문난 '도령님'이나 '도사님', 아니면 '보살님'을 찾아갈 때가 있다. 어떤 도사님은 얼굴만 보고도 이 사람이 무엇 때문에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아맞히는 도력을 발휘하신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들을 찾아가보기에 앞서, 먼저 확인하는 뭔가가 있다. 그게 뭘까? 그건 바로 '손금'이다.

'손금(Flexion crease), 국어사전에는 "손바닥의 살결이 줄무늬를 이룬 금"이라고 설명돼 있다. 우리는 그렇듯 손바닥에 새겨진 눈에 잘 띄는 3개의 주름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사소한 주름까지 살펴보면서 그 사람의 운명을 짐작해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 사람의 운명을 정확하게 이야기할 때가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더 놀라운 것은 '손금'은 주기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

전세훈과 전인호의 만화 <손금>은 '손금' 때문에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주인공을 이야기하면서 손금의 모든 것을 그려나간다. 심심풀이 땅콩으로 보든, 심각하게 보든, 어쨌든 흥미롭기 그지없는 손금. 그 심오한 세계로 들어가 보자.

들어는 봤나, 천경전수상
 
 

 
▲ 전세훈&전인호의 만화 <손금>의 표지. 전 26권이며, 성인판 외전도 3권이 출시돼 있다.
ⓒ2006 삼양출판사
만화 <손금>은 하릴없이 시간만 죽치던 한심한 군상 '나동태'가 주인공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는 선천적으로 손금이 없는 '천경전수상(天鏡傳手相)'을 타고난 인물이라는 것.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미친개에게 물려 죽을 운명의 '손금'과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을 운명의 '손금'이 동시에 나타나 급살을 맞으면서 만화는 탄탄하게 이야기를 연결하기 시작한다.

무당이었던 그의 할아버지는 급살 맞은 손자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드디어 금단의 주술을 그에게 불어넣게 된다. 다시 살아난 그는 이제 100명의 운명을 바꿔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면서, 다른 사람의 손이 닿으면 손금이 그대로 옮겨져,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해 운명을 바꿔놔야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세상 살기 참 어렵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게 되는 것이다.

<손금>은 그런 '나동태'가 다양한 사람들의 손금이 옮겨져 생각지도 못했던 인생을 살게 되는 이야기들을 그려나간다. 아이들에게 무시당하는 여고 수학 선생님은 기본이고, 살인범의 손금이 복사돼 경찰의 추격을 받을 때도 있으며, 기가 막힌 사기극을 벌이기도 한다. 심지어는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돼 수백억원의 당첨금을 탄 이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때도 있다.

이 만화의 주인공 '나동태'는 다른 사람의 기구한 운명을 바꿔놔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사명을 견딜 수 있게끔 낙천적이고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로 그려졌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일은 어떤 상황이든 헤쳐 나갈 수 있는 자신감과 끈기, 순간순간의 재치가 중요한 법이다. 한편으로는 남의 인생을 대신 살면서 그 사람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돼, 많은 것을 깨닫는다는 것도 중요한 설정. 하지만 '나동태'가 기적적으로 그 기구한 운명을 바꿔놓을 때쯤에, 다시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가끔씩 안타까울 때도 있다.

만화 <손금>은 구체적으로 손금을 보는 방법과, 그 손금에 대한 자세한 풀이가 인상적이다. 에피소드마다 부록으로 유명 인사들의 손금을 그려놓고, 그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보장하며, 이 만화가 연재될 당시에는 독자들의 손금을 편지로 전달받아 앞으로의 운명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줄 때도 있었다. 이 만화를 보면, 새삼스레 손금을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이 변하니? '손금'도 변해

<손금>의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손금이 설명해주는 그대로 그려나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손금은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틈틈이 이야기한다. 주인공 '나동태'가 그렇듯 기구한 남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도 결국에는 '손금은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인 듯하다.

손금이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미리 내다본 운명을 절대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실제로 작가는 자신에게 손금을 편지로 보내준 독자들에게도 '노력하면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만이 간직하고 있는 불굴의 투지와 끈기는 정해진 운명도 언제든 뒤바꿀 수 있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제 아무리 손금이 좋으면 뭐하나? 그것만 믿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좋은 손금은 그대로 죽어버리는 것이다. 이 만화에 수록된 성공한 이들의 손금도, 성공을 위해 기울인 그 사람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손금'은 그저 '맛보기'일 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화려한 성공을 보장하는 손금도, 혹은 비참한 실패를 암시하는 손금도, 결국에는 그 사람의 각성과 전환을 요구하는 운명의 잠언일지도 모르는 것이다. 손금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노력하는 삶을 산다면 언제든 빛을 보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작가가 손금에 대해 펼쳐놓는 해박한 지식과 여러 가지 재미있는 설정도 궁극적으로는 그런 건강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인 듯하다. 현실이 답답하다면, 이따금씩 손금에 대해 풀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은 확실하다. 다만 어디까지나 각성의 계기로만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좋겠다. 손금뿐만 아니라 '도령님'이나 '도사님', '보살님'의 기가 막힌 점괘도 마찬가지다. 운명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의 의지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