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이한우기자]
스튜어트 홀은 20세기의 대표적인 신좌파 문화연구가다. 국내에서도 이미 그의 저서나 논문들이 폭넓게 읽히고 있고 그에 관한 소개서도 다양하게 나온 편이다. 그럼에도 프록터의 이 입문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간의 난해한 이론개념 중심의 해설에서 벗어나 초보자들도 알기 쉽게 홀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는데 있다.
홀의 문화연구는 기본적으로 좌파진영 내부의 노선싸움과 깊이 관련돼 있다. 전통좌파는 문화를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에도 종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문화의 독자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반면 홀은 문화 자체를 정치적인 행위로 파악한다. 헤게모니 개념을 통해 정치투쟁에서 문화가 가는 의미를 간파했던 20세기초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와 맥을 같이 한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홀과 그람시는 좌파들 사이에서 90년대말 큰 붐을 일으켰다. 어쩌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좌파들이 경직성을 털고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문화연구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홀은 무엇보다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를 허문 사상가다. 그는 대중문화를 저급하게 보지 않는다. 대중문화는 그 자체로 타협과 저항이 긴장을 형성하는 영역이자 하나의 국면이다. 더불어 홀은 거대한 이론체계를 믿지 않았다. 그 때 그 때의 국면과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이론가 본연의 일이라고 여겼다. 프록터는 홀이 이렇다 할 단행본을 남기지 않고 잡지기고나 짧은 논문을 통해 주로 발언했던 것도 단행본이 갖고 있는 체계성과 완결성을 홀이 혐오한 때문이었다고 분석한다.
사실 홀의 글을 현재의 시점에서 읽어보면 이미 낡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드라마 광고 영화 등 대중문화의 현장에 대한 분석은 그의 초창기 연구를 바탕으로 해서 훨씬 정교해지고 수준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결성보다는 개방성을 중시했던 그이기에 스튜어트 홀은 여전히 지적 자극을 제공한다. 여기에 좌나 우는 의미가 없다. 사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임을 고집하면서도 혁명을 꿈꾸지 않았고 마르크스조차도 마르크스주의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던 열린 사상가였다. 90년대에는 영국의 현실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도 던졌다.
좌파의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곤혹스러웠던 대처의 시대가 끝나고 노동당 출신 블레어가 등장했을 때 그는 이렇게 논평했다. “블레어는 몇 개의 노랫말은 배운 것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음악은 잊어버렸다.” 홀이 보기에 블레어는 좌파적 파편은 갖고 있을지언정 혼(魂)을 가진 좌파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블레어의 신노선을 ‘제3의 길’이라고 찬양하던 무렵의 일이다.